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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2014. 9. 24. 11:08

영월 詩仙 金삿갓 蘭皐 先生 遺蹟地

 

 

 

김삿갓 유적지 가는 길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에 있는 계곡.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하여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를 지나 와석리로 흘러 계류를 이루며 옥동천을 지나 단양·충주·여주로 흐른다. 인근에 방랑시인 김립(속칭 김삿갓)의 묘가 있어 유명해졌다. 김립이 생전에 무릉계라 불렀을 만큼 경치가 빼어나며 오염이 안된 청정지역이다. 이 일대는 크낙새(내리계곡), 딱따구리(법흥사), 수달(동강과 서강) 등이 사는 생태보고이기 때문에 영월군에서는 이 계곡과 내리계곡을 해마다 번갈아가며 한 곳씩만 개방하고 있다. 주변에 장릉·청령포·영월고씨굴(천연기념물 219)·김삿갓묘·조선민화박물관 등 관광명소가 많다.

 

난고 김병연의 행적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 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김삿갓은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 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는 시험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하며 벼슬길을 포기하였다.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방랑 걸식하였다.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는데, 그 곳 명소 "적벽(赤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훗날 그의 차남이 영월 고향 땅으로 이장하여 이곳 김삿갓묘에 안치하였다.


김삿갓과 관련된 유적은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경계지대에 분산되어 있는데 남대천(南大川)을 사이에 두고 북쪽 영월군 하동면 어둔리  선래골(선락동)에는 집터가 있고, 근처 와석리 노루목에는 묘소가 있다. 그리고 냇물 건너 단양군 영춘면 접경에는 기념시비가 세워졌다.


최근 김삿갓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지역을 찾는 등산객, 답사여행객이 증가하여 대야리 - 인근 마대산(해발1,052m, 강원도,충북, 경북 3도의 접경을 이루는 산)-김삿갓생가터-김삿갓묘역을 연결하는 등산로가 개발되고 있으며, 곰봉(곰의 모양을 한 봉우리)도 탐방이 잦아지고 있다.


와석리는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조촐한 오지 마을로서 옛 시골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김삿갓 계곡은 김삿갓이 생전에 "무릉계"라 칭했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지녔다. 관광지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오염이 안 되고 보존이 잘 되어 청정 지대임을 자랑한다.


인근 내리 계곡의 크낙새와 법흥사 적별보궁 오르는 길의 딱따구리, 그 외 동강과 서강이 기암을 돌아 흐르는 곳에 사는 수달, 수리부엉이, 비오리, 검독수리, 작은소쩍새, 올빼미, 황조롱이, 오리떼 등은 이 지역이 과연  있는 그대로의 생태박물관임을 입증한다. 영월군은 이 계곡과 내리계곡등 인근의 계곡을 번갈아가며 휴식년제를 취하고 있으므로 확인 후 출발해야 한다.


대중교통 : =====================================================================

              구분       타는곳   내리는곳   운행시간    배차간격    소요시간

           ---------------------------------------------------------------------

            직행버스     동서울     영월                    5회     3시간

            새마을호     청량리     영월      17:00         1회     3시간

            무궁화호     청량리     영월   22:00, 23:00     2회     3시간 30분

           =====================================================================

                                     

도로안내 : 영동고속도로 → 남원주IC → 중앙고속도로 →신림IC →신림 삼거리 →

           주천, 영월(지방도 88호선) → 고씨동굴 (지방도 88호선) → 김삿갓계곡

            (군도 8호선) → 김삿갓유적지



주변명소 :          16km       11km       3km       2km    0.5km      3km

            김삿갓묘 → 고씨동굴 → 관풍헌 → 청령포 → 장릉 → 보덕사 →  선돌 


               20km           16km                     10km

                →  책 박물관  →  요선정, 마애여래좌상  →  법흥사


 

< 김병연(金炳淵)이 삿갓을 쓰고 방랑시인이 된 내력 >

조선 순조 11년(1811년) 신미년에 홍경래(1780-1812)는 서북인(西北人)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에 대한 반감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분개가 폭발하여 평안도 용강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홍경래는 교묘한 수단으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민심의 불평 불만을 잘 선동해서 조직한 그의 반란군은 순식간에 가산, 박천, 곽산, 태천, 정주 등지를 파죽지세로 휩쓸어 버리고 군사적 요새지인 선천으로 쳐들어갔다. 이 싸움에서 가산 군수 정시(鄭蓍)는 일개 문관의 신분이었지만 최후까지 싸워서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한편 김병연의 조부 김익순(金益淳)은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였다.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김익순에게는 물론 그 가문에도 큰 치욕이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고 하지만 국법의 심판은 냉혹하여서, 이듬해 2월에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3월 9일에 사형을 당하였다.

 

그 난리 때 형 병하(炳夏)는 여덟 살, 병연은 여섯 살, 아우 병호(炳湖)는 젖먹이였다. 마침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從僕)에 김성수(金聖秀)라는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다. 그 뒤에 조정의 벌은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고, 두려워하던 멸족(滅族)에는 이르지 않고 폐족에 그쳤으므로 병하, 병연 형제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여주, 가평으로 이사하는 등 폐족의 고단한 삶을 살다가 부친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였다.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년),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 시제(詩題)인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을 받아 본 그는 시상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젊은 피는 충절의 죽음에 대한 동정과 찬양을 아끼지 않았고, 김익순의 불충의 죄에 대하여는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였다.

 

김병연이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어머니가 그 동안 숨겨왔던 집안의 내력을 들려 주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명문거족이었다. 너는 안동 김씨의 후손이다. 안동 김씨 중에서도 장동(壯洞)에 사는 사람들은 특히 세도가 당당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들을 장동 김씨라고 불렀는데 너는 바로 장동 김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네가 오늘 만고의 역적으로 몰아 세워 욕을 퍼부은, 익자(益字) 순자(淳字)를 쓰셨던 선천 방어사는 네 할아버지였다. 너의 할아버지는 사형을 당하셨고 너희들에게 이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느라고 제사 때 신주를 모시기는커녕 지방과 축문에 관직이 없었던 것처럼 처사(處士)로 써서 너희들을 속여 왔다... 병연은 너무나 기막힌 사실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반란군의 괴수 홍경래에게 비겁하게 항복한 김익순이 나의 할아버지라니...

그는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집문당 발행 <방랑시인 김삿갓 시집> 참조.

蘭皐平生詩 난고평생시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獨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독자상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尤人不可怨天難 歲暮悲懷餘寸腸 우인불가원천난 세모비회여촌장

          初年自謂得樂地 漢北知吾生長鄕 초년자위득락지 한북지오생장향

          簪纓先世富貴人 花柳長安名勝庄 잠영선세부귀인 화류장안명승장

          隣人也賀弄璋慶 早晩前期冠蓋場 인인야하농장경 조만전기관개장

          髮毛稍長命漸奇 灰劫殘門飜海桑 발모초장명점기 회겁잔문번해상

          依無親戚世情薄 哭盡爺孃家事荒 의무친척세정박 곡진야양가사황

          終南曉鍾一納履 風土東邦心細量 종남효종일납리 풍토동방심세양

          心猶異域首丘狐 勢亦窮途觸藩羊 심유이역수구호 세역궁도촉번양

          南州從古過客多 轉蓬浮萍經幾霜 남주종고과객다 전봉부평경기상

          搖頭行勢豈本習 口圖生惟所長 요두행세기본습 구도생유소장

          光陰漸向此中失 三角靑山何渺茫 광음점향차중실 삼각청산하묘망

          江山乞號慣千門 風月行裝空一囊 강산걸호관천문 풍월행장공일낭

          千金之子萬石君 厚薄家風均試嘗 천금지자만석군 후박가풍균시상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빈髮蒼 신궁매우속안백 세거편상빈발창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귀혜역난저역난 기일방황중로방

난고평생시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나 가슴 아파라.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 리 길 다니며

물처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으로 여겼지.

 

남을 탓할 수도 없고 하늘을 원망할 수도 없어

섣달 그믐엔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넘쳤지.

초년엔 즐거운 세상 만났다 생각하고

한양이 내 생장한 고향인 줄 알았지.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렸고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지.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 축하하고

조만간 출세하기를 기대했었지.

 

머리가 차츰 자라며 팔자가 기박해져

뽕나무밭이 변해 바다가 되더니,

의지할 친척도 없이 세상 인심 박해지고

 부모 상까지 마치자 집안이 쓸쓸해졌네.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끈을 맨 뒤에

동방 풍토를 돌아다니며 시름으로 가득 찼네.

마음은 아직 타향에서 고향 그리는 여우 같건만

울타리에 뿔 박은 양처럼 형세가 궁박해졌네.

 

남녘 지방은 옛부터 나그네가 많았다지만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이나 되었던가.

머리 굽실거리는 행세가 어찌 내 본래 버릇이랴만

 입 놀리며 살 길 찾는 솜씨만 가득 늘었네.

 

이 가운데 세월을 차츰 잊어 버려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해라.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천만이나 되었건만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일세.

 

천금 자제와 만석군 부자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신세가 궁박해져 늘 백안시 당하고

세월이 갈수록 머리 희어져 가슴 아프네.

 

돌아갈래도 어렵지만 그만 둘래도 어려워

중도에 서서 며칠 동안 방황하네.

 

 

 

김삿갓 사적 공원

 

 

 

 

시선 김삿갓 난고 선생 유적비

 

 

 

 

꼬마 신랑

嘲幼冠者 조유관자

畏鳶身勢隱冠蓋 何人咳嗽吐棗仁 외연신세은관개 하인해수토조인

若似每人皆如此 一腹可生五六人 약사매인개여차 일복가생오륙인

 

갓 쓴 어린아이를 놀리다

솔개 보고도 무서워할 놈이 갓 아래 숨었는데

누군가 기침하다가 토해낸 대추씨 같구나.

사람마다 모두들 이렇게 작다면

한 배에서 대여섯 명은 나올 수 있을 테지.

 

* 어린 꼬마 신랑이 갓을 쓰고 다님을 조롱했다. 솔개를 무서워할 나이에 몸을 가릴 만큼 큰 갓을 쓰고 몸집은 대추씨 처럼 작은데 벌써 새 신랑이 되었음을 표현했다.

 

 

 

회갑연 還甲宴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彼座老人不似人

                              아마도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일 테지                       疑是天上降眞仙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基中七子皆爲盜

                              서왕모의 선도 봉숭아를 흠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偸得碧桃獻壽筵

 

 

'길주명천'(吉州明川) 시비 앞에 놓여 있는 청동 굴비 밥상  

      

               吉州吉州不吉州      길주길주불길주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고장

               許可許可不許可      허가허가불허가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하는 것은 없네.

               明川明川人不明      명천명천인불명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漁佃漁佃食無漁     어전어전식무어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가 없네

 

 

 

김삿갓 묘 입구에 있는 성황당

 

 

 

  소슬바람에 나뭇잎이 우수수 소리없이 떨어지니

       산골짜기에도 쌓이고 시냇물 위에도 떨어지누나

       새처럼 아래위를 훨훨 날다가는

       바람결 따라 저마다 동과 서로 흩어지네

       본디 잎새야 푸르르건만 누렇게 병들어

       푸른빛 시샘하는 서리를 맞고 가을비에 더욱 애처롭구나

       두견새야 너는 어찌 그다지도 정이 박약하여

       지는 꽃만 슬퍼하고 낙엽에는 안 우느냐

 

 

 

自詠 자영

 

  寒松孤店裡 高臥別區人   한송고점리 고와별구인

    近峽雲同樂 臨溪鳥與隣   근협운동락 임계조여린치

 銖寧荒志 詩酒自娛身     치수영황지 시주자오신

得月卽帶憶 悠悠甘夢頻   득월즉대억 유유감몽빈

 

스스로 읊다

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에

한가롭게 누웠으니 별세상 사람일세.

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같이 노닐고

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하찮은 세상 일로 어찌 내 뜻을 거칠게 하랴.

시와 술로써 내 몸을 즐겁게 하리라.

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며

유유히 단 꿈을 자주 꾸리라.

 

*세속에 물들지 않고 시와 술로 근심을 잊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풍류객의 모습을 그렸다.

 

 

 開城人逐客詩                   개성인축객시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읍호개성하폐문 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子獨秦   황혼축객비인사 예의동방자독진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고을이름은 개성인데 어찌 문이 굳게 당혔으며

산이름은 '소나무가 많다'는 송악산인데

땔 나무가 없다는 게 웬말인가

석양에 나그네를 쫓는 것은 사람의 인사가 아닐진데

예의 동방의 나라에는 그대만이 진나라 진시왕이더냐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白髮汝非金進士   백발여비김진사

我亦靑春如玉人   아역청춘여옥인

酒量漸大黃金盡   주량점대황금진

世事縡知白髮新   세사재지백발신

 

허연 머리 너 김진사 아니더냐

나도 청춘에는 옥인과 같았더라

주량은 점점 늘어 가는데 돈은 떨어지고

세상 일 겨우 알만한데

어느새 백발이 되었네

 

 

 

 

 

시선 난고 선생 사적 [김삿갓묘]

 

 

김삿갓 묘 안내판

 

 

 

눈 덮힌 김삿갓의 묘 [詩仙 蘭皐 金炳淵之墓]

 

 

 

詩仙 蘭皐 金炳淵之墓

 

 

난고당[蘭皐堂]

 

 

김삿갓 주거 유적지

 

울림으로 남는 글의 <김삿갓  김병연 시 모음>과 <영월 김삿갓 문학관을 가다>에서 김삿갓의 시를  볼수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