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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2014. 11. 22. 07:01

의성(義城) 김씨(金氏) 천전종택(川前宗宅) 


 

 의성 김씨 천전종택

 
안동 시내에서 영덕으로 가는 34번 국도를 타고 반변천을 따라 계속 가면 임하댐 보조댐이 나오고, 여기서 1.5km 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으로 고풍스러운 기와집들이 자리 잡은 마을이 나타납니다.

마을 입구에는 사람 키보다 더 큰 자연석에 마을을 알리는 '내앞'이라고 쓴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이 마을이 바로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반변천 앞이라 하여 한자로는 '천전(川前)마을', 우리말로는 '내앞마을'이라 합니다. 이 마을 기와집들 가운데 가장 웅장한 집이 의성(義城) 김씨(金氏) 천전종택(川前宗宅)입니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양반과 선비가 살 만한 영남의 4대 길지의 하나로 이곳을 꼽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말한 4대 길지는 안동의 도산, 하회, 천전, 봉화의 닭실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곳은 '육부자등과지처(六父子登科之處)'로 소문이 났습니다.
 
 

 
평면도
 
 
먼저 의성 김씨 천전종택의 평면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전체적인 집의 구조를 이해하기에 좋습니다.

행랑채에 난 출입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口'자 형태인 안채가 자리하고 있고, 왼쪽으로 '一'자 형태인 사랑채가 자리하였습니다. '口'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가 행랑채 및 다른 건물과 이어져 전체적으로는 '巳'자형 평면을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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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사랑채 역할을 한 별채
의성 김씨 천전종택은 처음 지었던 집이 조선 선조 때 불타 없어지자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이 16세기 말 북경에 사신으로 갔을 때 그곳 상류층 주택의 설계도를 가져와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이 집에서는 대문 역할을 하는 솟을대문이 따로 없습니다. 대신에 행랑채 대문 오른쪽으로 행랑이 있고, 왼쪽으로는 작은 사랑채 역할을 하는 별채가 있습니다.

사랑채는 왼쪽을 돌아들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옆쪽 행랑채와 사랑채를 연결해 주는 건물로, 작은 사랑채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사랑채와 옆쪽 행랑채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커다란 사랑 대청과 사랑방·침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방문객이 행랑채의 대문을 거치지 않고 곧장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남자 주인의 거처인 사랑채의 기능이 아무래도 약해 보입니다. 거기에다 사랑채를 안채보다 오히려 더 깊숙이 배치하였습니다.
 
 
 옆쪽 행랑채와 별채

-사랑채에 이어지는 옆쪽 행랑채는 완전한 2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위층은 서고(書庫)로 사랑채 대청과 이어지고, 아래층은 헛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 안뜰에서 바라본 앞쪽 행랑채

대문 안을 들어선 안뜰에서 바라본 앞쪽 행랑채의 모습입니다.


- 안뜰에서 바라본 옆쪽 행랑채와 사랑채

대문 안을 들어선 안뜰에서 바라본 옆쪽 행랑채와 사랑채의 모습입니다. 안뜰에서 사랑채로 통하는 돌계단이 보입니다.


 
- 안채 측면
집 앞에서 볼 때 지붕의 측면만 보이는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이 안채입니다.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맡았던 안채는 다른 집과 달리 안방이 바깥쪽으로 높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안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윗상방·아랫상방)과 헛간 등으로 되어 있으며, 안방의 앞면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두었습니다.


 
- 작은 사랑채 역할을 한 별채
의성 김씨 천전종택을 둘러보면서 건물 배치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문 가까이에 있기 마련인 사랑채가 대문과는 거리가 먼 외진 곳에 있고,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야 할 안채가 오히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있습니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건물 배치는 건물 배치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근래에 출입문을 지금의 자리로 잘못 내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무라야마 치준(村山 智順)이 쓴 <한국의 풍수(朝鮮の風水)>에 실린 1930년대의 천전종택 사진을 보면 그런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무라야마 치준의 당시 사진에 의하면, 지
금의 출입문 앞으로 담장을 둘렀고, 외부에서 천전종택으로 출입하는 길 또한 지금과는 달리 담장과 나란히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출입문의 위치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는데, 출입문이 사랑채와 연결된 별채 앞으로 나 있었습니다. 즉, 사랑채가 앞쪽에, 그리고 안채가 출입문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건물 배치 구도가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 천전종택 역시 사대부가의 통상적인 건물 배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