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사적/능원,고분

구름에 달가듯이 2014. 11. 22. 09:25

고구려 고분 벽화 Ⅱ

  

석벽에 채색  

 

각저총은 무용총과 같이 길림성 집안현 여산 남쪽 기슭에 있는 고구려의 벽화 고분이다. 구조는 직사각형[장방형]의 앞방과 시신을 안치하는 정사각형[방형]의 널방, 그리고 이 두 방을 연결해주는 널길로 이루어진 두방무덤[二室墳]이다

 


- 중국 길림성 集安縣 오괴분 4,5호묘, 7세기 무렵

 

고구려 고분 벽화는 대략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인 4, 5세기 무렵에는 주로 고분 주인공의 생활 장면이 주를 이룬다.  중기인 6세기 무렵에는 풍속화적인 장면 묘사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불교 사상의 영향으로 불교적인 요소가 많이 눈에 띈다.



중국 길림성 集安縣 오괴분(五塊墳) 4호묘 달의 신




중국 길림성 集安縣 오괴분(五塊墳) 4호묘 해의 신



그러다가 후기인 7세기 무렵에는 도교적인 영향으로 무덤을 소우주로 생각하고 많은 별자리며 해와 달 등 천상의 모든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오괴분은 후기에 속하는 고분으로 무덤의 형태는 간소해지면서 천상 세계를 나타내는 해와 달 등이 매우 선명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해를 나타내는 붉은 원 안에는 다리가 세 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가, 달을 상징하는 노란 원 안에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고대 신화에서 본래 태양은 부상나무라고 하는 나무에 열 개가 달려 있었다. 열 개의 태양이 번갈아 뜨게 되어 있었는데, 어느 날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뜨자, 가장 활을 잘 쏘는 예라는 사람을 시켜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그러자 한 개의 태양만 남아서 지금처럼 알맞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태양이 떨어진 곳을 보니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가 화살을 맞고 죽어 있었다고 한다. 태양의 신을 그린 이 벽화는 고구려인의 끝없는 우주적인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벽면을 이루는 화강암에 직접 그린 것으로, 천 년이 넘은 오늘에도 색채가 무척 선명하고 표현이 아름답다.

오괴분 벽화는 7세기의 전형적인 양식에 따라 〈사신도〉가 네 벽면에 그려져 있고, 천장의 받침돌에는 일월신(日月神)과 농사의 신, 철을 다루는 신, 바퀴를 만드는 신 등 설화성이 풍부한 여러 신들과 나뭇잎 문양 등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중국 집안의 고구려 고분벽화  오괴분(五塊墳)4호 묘의 용(黃龍)


이 달의 신은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를 이고 있는 해의 신과 마주 보는 형태이다. 주변에는 나무와 함께 악기를 연주하는 선녀들이 있고, 천장의 중앙에는 왕을 상징하는 황룡(黃龍)이 있다. 선명한 색채와 힘찬 선묘(線描)로 고구려 문화의 활달함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다.


오괴분의 벽화에는 천상을 상징하는 일월성수(日月星宿)뿐 아니라, 나무 위로는 구름이 떠 있고, 그 사이로는 학이나 용을 탄 신선(神仙), 주악천녀(奏樂天女) 등 도교사상(道敎思想)을 반영하는 여러 신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 표현이 자못 자연스럽다. 그 가운데서도 학을 탄 신선은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여 매우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중국 길림성 集安縣 오괴분(五塊墳) 4호묘 학을 탄 신선


흰 날개를 펼쳐 신선을 등에 업고 날아가는 학이나, 노란 색 깃을 댄 갈색 옷에 흰 모자를 쓰고 그 학을 타고 가는 신선의 모습에서 우아하고 세련된 필치와 색채 감각을 느낄 수 있다.
1,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안료를 만들어 썼던 선조들의 지혜가 놀랍기만 하다.  

 

 

-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강서대묘 현무도, 7세기무렵

 

강서대묘가 있는 평남 남포의 삼묘리는 크고 작은 3기의 묘가 있어서 삼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 묘를 각각 강서 대묘, 중묘, 소묘라고 부른다.이들 고분은 고구려 후반기인 7세기 경에 조성되었다. 이때는 도교의 영향으로 무덤에는〈사신도(四神圖)〉가 주제가 되어 네 벽을 채우는 경향이 있었다.


사신은 네 방위를 맡은 신으로 상징적인 동물로서 표현되는데, 동쪽은 청룡(靑龍), 서쪽은 백호(白虎), 남쪽은 주작(朱雀), 북쪽은 현무(玄武)가 그려진다.그 중 강서대묘의 〈사신도〉는 훌륭한 구도와 선명한 채색으로 여러 〈사신도〉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이다.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강서대묘 현무도 7세기 무렵


이 현무도는 달리는 거북의 몸을 뱀이 휘감고 있는 모습으로, 거북이나 뱀의 세부 표현도 사실적일 뿐만 아니라 이들이 이루는 유연한 듯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으로 고구려인의 힘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의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진호(鎭護)하는 상징적인 동물을 그린 그림이다. 사신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말한다.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강서대묘 백호도 7세기 무렵



평남 남포시 강서구역 삼묘리 강서대묘 주작도 7세기 무렵


사신에 대한 사상이나 도상(圖像)이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중국의 전국시대(戰國時代)에서 진한시대(秦漢時代)에 걸쳐 정착된 것으로 보이며, 오행설(五行說)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분 벽화에서 최초로 나타나며, 이러한 사상이 계속해서 전해 내려와 조선시대의 민화(民畵)에서까지도 보인다. 사신도의 형상은 시대에 따라 양식상의 차이는 보이지만, 청룡은 본래가 상상의 동물로서 몸에는 뱀의 비늘로 문양을 넣고 머리에 뿔이 한두 개 돋아 있고 불을 내뿜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백호는 호랑이 얼굴에 몸에는 호피문(虎皮文)이 표현되며 날개가 달려 있고, 혀를 내밀어 위용을 나타내었다. 주작은 봉황의 모습과 유사하다. 현무는 거북과 뱀으로 표현되는데, 뱀이 거북을 휘어 감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강서대묘 청룡도, 강서대묘 주작도, 강서대묘 백호도가 사신도이다



강서대묘 청룡도


 


청룡도, 6-7세기 고구려, 평안남도 강서군 우현리 강서대묘




 

사신총 북벽 현무도 




사신총 북벽 현무도. - 역시 고구려 전성기의 기운찬 모습의 현무도이다.


사신총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에 있는 석실무덤으로 분구의 밑변 한변이 27m, 높이 8m의 고분이다. 이 현무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현무도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되는 그림이다.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거북과 뱀의 모습을 섬세한 선으로 매우 실감 있게 그렸다. 색의 배합이 매우 뛰어나다




사신총 동벽 청룡도




사신총 남벽 주작도



강서중묘 백호도

 



강서중묘 백호도 6-7세기 고구려, 평안남도 강서군 우현리 강서대묘



강서중묘 현무도

 



강서중묘 백호도 6-7세기 고구려, 평안남도 강서군 우현리 강서대묘


 

강서중묘 주작도 


 



주작도, 6-7세기 고구려, 평안남도 강서군 삼묘리 강서중묘

 


안악 3호분 무덤의 주인공(王) 초상 (부분도) 



안악3호분 무덤 주인 부부 좌상(남편), 고구려, 357년경,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3호분 무덤 주인 부인 좌상(부인),과 시녀들 고구려, 357년경,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3호분 무덤 주인 부인 좌상(부인 부분) 고구려, 357년경,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3호분 무덤 주인 부인 상의  시녀, 고구려, 357년경,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3호분 무덤 서쪽 곁칸 남벽의 부인 좌상의 시녀들 고구려, 357년경,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



안악 3호분 대 행렬도



안악 3호분 대 행렬도. 황해남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위치한 고구려벽화고분.


안악 3호분은 황해남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위치한 고구려시대의 벽화고분이다. 1949년에 처음으로 발견된 이 무덤은 현무암과 석회암의 큰 판석으로 짜여진 돌방무덤이다.


높이 2미터, 길이 10이터에 달하는 회랑의 ㄱ형벽면에 도합 250명의 기병, 보병, 악사 등이 꽉 들어차게 그려진 웅장한 대행렬도(고구려 지배층의 행차 모습)이다. 이 행렬도는 벽화의 규모와 복잡하고 다채로운 내용 때문에 고구려 벽화 무덤 중 최대의 벽화이다


행렬도는 수레를 탄 왕(무덤 주인공)을 호위하는 중배와 그 앞을 가는 전배만을 그리고 있다 도판의 선두에는 홀을 든 기마인물이 서고 이어서 긴 깃발을 가진 기수들, 왕의 '어승마', 메는 북이나 메는 종을 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 좌우로는 창, 환도, 도끼, 활 등을 가진 보병등과 개마무사 등이 정연히 행진하고 있다. 왕이 탄 수레의 뒤쪽에는 의장 기수, 시녀, 기마문관, 기마고취악대가 열을 이어 간다.



위풍 당당한 이 행렬도는 조선 시대의 '능행도'나 '거동반차도'를 상기시키지만 그것에 비할 바 없이 율동적이고 자유로우며 생기발랄하다. 말 그대로 왕이 거느리고 있는 웅장한 대행렬에 상응한 벽화라고 해야할 것이다 .


김유신이 죽었을 때 왕이 내린 고취악대 인원이 100여명 정도였다고하는것을 보면 200여명에 이르는 고취악대를 거느리고 행진 할 수 있는 인물은 고구려의 왕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북한 측의 주장이다



 

덕흥리 고분 묘주도 및 13군 태수 하례도 



덕흥리 고분 묘주도 및 13군 태수 하례도.

고구려 초기 무덤 양식을 보여 주는 덕흥리벽화분 속 벽화. 중국 영향을 강하게 받은 벽화로 무덤 주인공의 위상을 과장되게 묘사한 화풍이 눈에 띈다

덕흥리 고분은 안악 3호분(동수묘) 다음으로 연대가 확실한 고분이다. 평양 서북방 대안시 덕흥리에 있다. 묵서명에 의해 오늘의 북경 지방인 신도현 출신으로 유주자사를 지냈고 불교신도이며 고구려에 와서 국소대형의 관작을 받고 호태왕(好太王, 광개토대왕) 영락(永樂) 18년(408)에 별세한 사람의 무덤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고분의 경우도 벽화의 내용은 안악 3호분과 같으나 견우직녀, 수렵도 등이 있다. 이 사진은 주인공에게 그 예하의 13군 태수가 하례하는 장면이다

  

오회분 4호묘 천정 해신과 달신 



오회분 4호묘 천정 해신과 달신, 7세기, 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



오회분 4호묘 천정의 달신, 7세기, 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



오회분 4호묘 천정의 해신, 7세기, 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


고구려 사람들은 까마귀를 길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그 이유는 잘 모름), 해 속에는 까마귀가 살고 달 속에는 두꺼비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까마귀는 왕을 상징하고 두꺼비는 왕비를 상징한다

 

무용총 수렵도 


무용총  서벽의 수렵도



무용총  서벽의 수렵도(부분)


무용총의 서쪽 벽에 그려져 있다. 기마 무사들이 호랑이, 사슴, 토끼 등을 사냥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고구려의 벽화무덤들은 90기에 가깝다. 압록강 대안인 통구 일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 유역 일대, 황해도 안악 지방에 이르기까지 분포되어 있다. 이 무덤들은 대체로 돌을 쌓고 벽면에 곱게 회를 바른 다음 벽화를 그렸는데, 부분적으로는 화강석 혹은 대리석으로 벽을 만들고 돌로 된 벽면에 직접 그린 것들도 있다


무용총은 통구 평야의 여산 남쪽 기슭에 있다. 무용도는 중앙의 오른쪽에, 수렵도는 무용총의 서쪽 벽에 그려져 있다. 기마 무사들이 호랑이, 사슴, 토끼 등을 사냥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기복이 있는 산악은 어두운 자색 또는 누런 갈색 바탕에 물결 모양의 평행 먹선을 여러 줄 그어서 나타냈고 윗산 뒤에서는 달아나는 두 마리의 사슴을 잡으려고 말 탄 무사가 휜 활에 화살을 끼워 힘껏 당기고 있다.


앞산 근처에서는 호랑이, 사슴, 토끼를 말 탄 무사가 사냥하려고 한다. 활을 겨누며 말을 달리는 기마 인물들이나 사력을 다해 달아나는 산짐승들이 모두 힘찬 운동감에 휘말린 상태로 표현되어 있다.


굵고 가는 파상선만으로 이뤄진 상징적인 산들조차도 그림 전체의 율동에 맞추듯 그려져 있어 한층 힘찬 느낌을 자아낸다. 우리 나라나 다른 나라의 어느 수렵도보다도 생동감 있고 힘찬 모습을 보여준다.

 

 

집안(集安) 고구려벽화 - 무용총 무용도 부분 


무용총 무용도 (영상복원)



무용총 무용도(부분), 1910년 대 사진


춤과 음악이 있는 연회가 벌어졌다. 한쪽 뜰에서는 남녀 혼성의 춤사위가 벌어졌다. 고구려 인들의 남녀 의상과 가무를 즐겼다는 고구려인들의 멋스런 풍류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무용총 무용도이다.


집안(集安) 무용총 수렵도(최근의 화보) - 무용도 부분


무용총은 통구 평야의 여산 남쪽 기슭에 있다. 무용장면은 중앙의 오른쪽에 전개되는데 모두 14인의 무용수와 악사가 상하로 그려져 있다. 무용총은 벽면에 회를 여러 차례 발라 바탕을 평평하게 만든 후 벽화를 그렸다.


이런 경우 회벽에 안료가 쉽게 스며들어 제작에는 용이하나 문제는 습기에 약해 외부와의 온도차로 습기가 차면 회벽이 떨어나가는 박락(剝落)현상이 심하다. 무용총은 개봉후 많은 부분이 떨어져 나가서 이제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많이 훼손되었다

 


각저총 씨름도  



각저총 씨름도 1910년대 사진


사진의 왼편에는 비껴 자란 나무 한 그루 서 있고 그옆에서 두 장정이 쌑바를 잡고 씨름을 하고 있다.오른쪽에는 한 노인이 지팡이를 빞고 구부정한 자세로 심판을 보고 있으며나무가지 위의 새들도 목을 빼고 씨름을 구경하고 있다.이 한폭의 벽화를 통해 우리의 전통경기인 씨름이 이미 고구려때에도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각저총 씨름도 최근의 화보


각저총 현실 동벽에 씨름 그림이 그려져 있다. '각저'란 힘을 겨루어 기예를 보이던 유희의 일종으로 씨름을 뜻한다

 씨름도의 현재 사진을 보면 역시 벽화가 많이 훼손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당국이 녹슨 철문에 자물통 채워 출입을 막아놓기는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회손 상태가 더해가고 있다. 더구나 보존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쉽게 미칠 수 없은  만주땅에 있기에 더욱 안타깝다.



고구려의 힘’ - 尙武정신 · 병기서 나왔다

 

“고구려 사람들은 걷는 것이 뛰는 것과 같다. 싸우기를 좋아하고 성질이 거칠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기사다. “고구려인들은 산을 의지해서 싸우므로 쉽게 함락시킬 수 없다” (구당서)는 기록은 고구려에 대한 중원의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고구려의 비결은 무엇일까.


김성태 기전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은 12일부터 ‘고구려 유적 발굴과 유물’을 주제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고구려연구회 주최)에서 ‘고구려의 병기에 대한 연구’를 발표한다. 출토유물과 고분벽화를 토대로 하여 고구려 병기체제를 화두로 던지면서 고구려가 왜 막강 전력을 갖추었는지 검토하는 자리라 주목을 끈다. 그에 따르면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고구려 병기는 중국의 것도 수용하면서 발전한다.


짧은 칼(小刀), 긴 창, 그리고 당대 최고로 쳤던 고구려 특유의 맥궁(貊弓) 등으로 무장하면서 특히 기마전에 능했다. 그러다가 3세기 후엽~6세기 전엽까지의 싸움에서는 보병·기마병이 세트로 움직인다.


기마전에 적합한 창의 길이는 3m가 넘었을 것으로 보이며 보병들도 최소한 2m의 창으로 백병전을 벌였다. 말에서 떨어지는 적장은 소도(50~70㎝)로 목을 베었다. 쇠뿔과 나무를 합성한 각궁의 대표주자인 맥궁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고구려 화살은 철적(鐵的·철 과녁)을 관통했다.


특히 5세기 무렵엔 사람과 말 모두가 찰갑(札甲·얇은 철판을 이어놓은 갑옷)으로 완전히 두른다. 정예부대로 치러지던 전쟁은 6~7세기가 되면 국가전의 양상으로 치닫는다. 산성(山城)을 놓고 치열한 각축을 벌였기에 장거리 무기가 필요했다.


수나라 기술을 훔친 쇠뇌(弩·석궁)를 발달시켰다. 경기 연천 무등리 2보루에서 발견된 고구려 대형 철촉은 길이 21㎝에 무게만 해도 75g이나 된다. 이 화살은 1,000보 날아갈 수 있는 쇠뇌로 쏘았을 것이다. 투석기인 포차(抛車)도 눈에 띈다.


고구려 병기는 신라·가야에 그대로 이식되었고 조선시대 전기까지 한반도 병기체제의 근간을 이루었다. 김성태 실장은 동아시아 최강 고구려의 비결을 대략 6가지로 나눈다. 우선 창·칼·활·촉의 기능이 철저하게 분화되어 다양화됐다는 점이다.


 철촉만 해도 보통의 화살촉인 유엽형은 물론 검신형(칼처럼 날카롭고 길게 만든 것), 삼익형(소리나는 화살 앞에 날개를 단 것) 등 다양했다.


둘째는 개방성과 실용성. 중원으로부터 도(刀·외날 칼)의 도입이 제일 빨랐으며 중국으로부터 수입된 긴 칼을 고구려 실정에 맞게 기마전에 강한 소도로 재창조했다. 또 소환두대도(素環頭大刀·고리는 있으나 장식이 없는 칼)가 칼의 주종이었다. 신라에 많았던 장식대도가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만큼 실용적이었다는 걸 나타내준다.


셋째, 산이 많은 고구려는 산성을 활용한 전략·전술에 능했다. 성을 견고하게 지키면서 기동성있게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에 능했다. 특히 기병과 보병이 각각 횡으로 늘어서 일제히 공격함으로써 적의 기를 꺾었다.


넷째, 고구려인의 ‘헝그리 정신’. 땅이 척박했던 고구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소식(小食)할 수밖에 없었다. 성격 또한 거칠고 용감했으며 불굴의 인내력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반면 보급에 애로를 겪는 중원의 원정군은 고구려군이 성에서 버티면 버틸수록 불리했다.


다섯째, 상무정신. 지금으로 치면 시골 중·고교격인 경당에서도 활쏘기를 가르쳤을 정도로 무예를 숭상했다. 석전(石戰)을 국가적으로 장려했으며 군왕·장군의 자질을 말 잘 타고 활 잘 쏘는 것으로 판단한 것은 군사제국 고구려의 특징이었다.


여섯째, 이른바 ‘더러운 전쟁’에도 능했다는 점이다. 수나라의 쇠뇌를 수입하기 위해 기술자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기록(구당서)과 244년 위나라 관구검이 쳐들어오자 유유(紐由)가 거짓 항복을 청하고 위 진영에 들어가 음식을 올리면서 칼을 식기에 감추어 두었다가 방심한 적장을 베었다는 기록(삼국사기)도 있다.


또 유명한 을지문덕 장군 역시 “신하의 예를 갖추겠다”고 거짓으로 항복하여 적진에 들어가 적정을 살피고 돌아온 뒤 수나라군을 전멸시킨 점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기환기자)   [출처] : 경향신문

 

 

 

위대한 우리문화! 고구려 고분벽화

 

고구려 장군총

 

고구려 장군총의 전경. 고구려 옛 수도 집안에 있는 장군총은 초기 피라미드형과 아주 유사하다.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1호분

 

 

 장천 1호분 전실 서쪽벽을 가득 채웠던 생활풍속도 부분. `두차례의 도굴로 고구려 생활사 연구의 보고라던 장천1호분 전실 벽화들이 완전히 뜯겨져 나가 백지상태가 됐다`고 지안시 박물관 관계자들이 밝혔다.

중국 지안시 장천1호분 벽화 중 전실의 귀부인 나들이 모습.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1고분 삼삭형 천장 받침돌의 모습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 1호분 전실 왼쪽 벽의 생활 풍속도.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묘실 정면의 천장으로 올라가는 부분. 탑 모양으로 차츰 좁혀 올라가는 다섯개의 계단에 온 세상을 담은 듯, 각종 동식물과 인물 형상이 가득 그려져있다.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수렵도.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천장 밑 층급받침돌 벽화의 용을 탄 신선도와 태양의 상징인 세발 까마귀, 소머리 형상을 한 농사의 신 등이 그려져 있다.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의 벽화 그림.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천장 벽화중에 말 그림. 오른쪽에 세계의 선으로 연결된 것은 별이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고구려인들의 습속을 그린 그림의 한장면인데 화살촉이 석류처럼 생겼다.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①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천장 밑 층급받침돌 벽화의 용을 탄 신선도와 태양의 상징인 세발 까마귀, 소머리 형상을 한 농사의 신 등이 그려져 있다.

 

 

 

 

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천장 밑 층급받침돌 벽화의 용을 탄 신선도와 태양의 상징인 세발 까마귀, 소머리 형상을 한 농사의 신 등이 그려져 있다.

 

 

 

 

 

 

 

 

 

 

 

 

 

 

 

 

 

 

 

 

 

위대한 우리문화! 고구려 고분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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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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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장군총의 전경. 고구려 옛 수도 집안에 있는 장군총은 초기 피라미드형과 아주 유사하다.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1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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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장천 1호분 전실 서쪽벽을 가득 채웠던 생활풍속도 부분. `두차례의 도굴로 고구려 생활사 연구의 보고라던 장천1호분 전실 벽화들이 완전히 뜯겨져 나가 백지상태가 됐다`고 지안시 박물관 관계자들이 밝혔다.


<left>중국 지안시 장천1호분 벽화 중 전실의 귀부인 나들이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1고분 삼삭형 천장 받침돌의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장천 1호분 전실 왼쪽 벽의 생활 풍속도.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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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묘실 정면의 천장으로 올라가는 부분. 탑 모양으로 차츰 좁혀 올라가는 다섯개의 계단에 온 세상을 담은 듯, 각종 동식물과 인물 형상이 가득 그려져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벽화에 등장하는 수렵도.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천장 밑 층급받침돌 벽화의 용을 탄 신선도와 태양의 상징인 세발 까마귀, 소머리 형상을 한 농사의 신 등이 그려져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의 벽화 그림.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천장 벽화중에 말 그림. 오른쪽에 세계의 선으로 연결된 것은 별이다.


<left>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 고구려인들의 습속을 그린 그림의 한장면인데 화살촉이 석류처럼 생겼다.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①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천장 밑 층급받침돌 벽화의 용을 탄 신선도와 태양의 상징인 세발 까마귀, 소머리 형상을 한 농사의 신 등이 그려져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천장 받침돌 그림. 학과 용을 타고 승천하는 신선과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묘실 벽면의 부채를 든 귀부인의 인물도.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천장 받침돌의 용그림. 용의 몸뚱아리가 적-황-청의 보색대비로 그려져있으며 비늘은 지금도 선명하다.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 ②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묘실 천장 받침돌에 그려져있는 달의 신.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수레바퀴 만드는 신의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하늘을 나는 신선의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4호묘의 고구려 벽화 중 `해의 신.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 천장 밭침돌 벽화에 등장하는 농사의 신. 소머리에 벼이삭을 들고 질주하고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의 묘실 천장과 계단식 천장받침돌 벽화. 오회분 4-5호묘는 사신총과 함께 7세기 고분에 속한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오회분 5호묘의 묘실 입구로부터 묘실 전체를 담은 사진. 무덤의 구조와 벽화의 배치상태 등이 잘 나타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①



 


 

<left>삼실총 제1실 남쪽벽의 행렬도.


<left>삼실총 제1실 천장 고임면에 있는 주작(남쪽을 지키는 신) 그림.


<left>도굴당한 뒤 고분 입구에 두껍게 시멘트를 바른 중국 지린성 지안시의 삼실총의 최근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벽화의 신수 백호의 머리부분과 용의 몸통부분이 결합된 형상.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에 삼실총에 나오는 새 그림.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②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의 고구려 여인의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의 인물상.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제3실 서쪽 입구 벽의 역사(力士)상.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긴 칼을 찬 무장이 묘실의 무덤 주인을 보호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행렬도의 남자 인물상. 11명으로 구성된 행렬도의 10번째 위치하는 것으로 봐서 평민으로 보인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삼실총 행렬도의 평민 복장 여인. 오늘날의 애교머리를 닮은 특이한 헤어스타일이 재미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저고리와 통이 넓은 바지는 고구려 평민들의 전형적인 복식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총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사신총의 묘실에서 연도 쪽을 바라다 본 면의 그림. 삼각형 천장 받침대가 만나는 부분을 귀면 판석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벽화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벽화. 저고리와 바지를 입은 전형적 옷차림의 고구려여인 모습.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의 벽화. 쪽구들에 앉은 부인들과 맨바닥에 의자를 놓고 걸터앉은 남편이 상위에 차린 음식을 즐기며 담소하고 있다.


<left>집안 고구려 고분벽화 각저총 묘실 왼족 벽면의 말과 마부. 말의 등에는 안장이 놓여있고 마부의 손엔 채찍이 들려있다.


<left>서역인과 고구려인이 씨름하는 모습을 그린 각저총 벽화.





[고구려 고분벽화] 북한 송죽리 고분




 

<left>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1600여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고구려인의 모습.


<left>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에서 발굴된 고구려 벽화.


<left>북한 황해도 연탄군 송죽리에서 발굴된 고구려 벽화.부리부리한 눈의 고구려 호랑이.훼손으로 인해 주위는 떨어져나갔다.


[고구려 고분벽화] 쌍영총




 

<left>평남 남포시 쌍영총의 8각기둥과 주두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제1호분




 

<left>황해도 안악 제1호분 벽화의 주두.


[고구려 고분벽화] 덕흥리 고분




 

<left>평남 대동군 덕흥리 고분의 주두.


<left>현재 북한에 있는 덕흥리 고분 전실 벽화.왼쪽에 묘지 주인공이 꽃무늬로 장식된 화려한 방에 앉아 있는 보습을 그렸다.위에는 주인공의 신상을 기록해 놓았는데, 이에 따르면 그는 이름이 진이고, 요동태수와 유주 자사 등을 지냈으며 77세에 죽었다.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 제3호분




 

<left>현재 북한에 있는 안악 3호분의 마구간 그림. 주인공의 생활 면모를 그린 동쪽 측실 벽화 가운데 하나다.마구간 구유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말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대륙을 달리던 고구려인들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left>수산리고분 현실 북쪽 벽에 그려진 귀신 얼굴모양 부채. 묘지 주인공 부부의 시종들이 들고 있던 것으로, 부채 혹은 햇빛가리개의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귀신밑으로 S자 비슷한 손잡이까지 달려있는 것이 특 징. 고구려 벽화에서 보는 유일한 형태이다


<left>안악 3호분 전실 동쪽 벽면에 있는 수박놀이하는 역사(力士) 그림. 상투를 머리 뒤로 묶고 아랫도리 일부만을 가린채 금방이라도 한번 맞붙을 기세다. 역사들의 체구와 몸짓을 다소 희화적으로 과장되게 그렸다.


<left>고구려 안악 3호묘 왕비복식


고구려 유물들 ①




 

<left>금동여래입상


<left>평양 동암리 고구려 고분벽화에 의복그림일부로 보이는 파편조각.


<left>고구려 유물.


<left>일본 나라 박물관 특별전에 전시된 고구려 승려화가 담징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법륭사 금당벽화 비천도 진본.


<left>서기 756년 일왕 성무(聖武) 사후 작성된 법륭사 헌물장의 일부.왼쪽에서 네번째 줄 아랫부분에 "고구려 비단(高麗錦)"이란 구절이 보인다.


고구려 유물들 ②




 

<left>1940년 평양에서 병기창공사를 하던 중 발견한 고구려 "금동미륵반가상"(왼쪽)과 6세기쯤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반가사유상"


<left>1998년 7월의 호국인물로 선정된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의 흉상. .


<left>고구려와 발해의 피지배층이었던 말갈족 주거지로 추정되는 마리아노브카 토성에서 나온 삽 등 철제 유물들


옛 고구려 영토였던 중국 동북평원의 왼쪽에 위치한 대싱안링의 고구려시대 흔적인 돌절구.


일제 어용학자들이 식민사관에 근거로 이용한 광개토대왕비, 일본인들이 비문을 조작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



복제품 진품운 평양박물관




경복궁내 신축한 국립중앙박물관이 1996년 12월 13일 개관을 앞두고 6일 미리 공개됐다. 사진은 고구려실에 전시한 금동투조장식 복제품. 진품은 평양 진파리 1호분에서 발굴돼 현재 평양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높이 14cm, 너비 23cm. 고구려하면 대륙적이고 강인한 것만을 연상하지만, 이 유물은 고구려가 얼마나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을 지닌 국가였는가를 보여주는 명품이다.


보장왕21년(서기662년) 고구려의 실권자 연개소문은 평양 부근 사수에서 방효태가 이끄는 당군을 격파했다.

 

 고구려 소수림왕의 삽화.


<갑주를 입은 고구려 보병의 복장을 고증을 거쳐 재현한 모습.


[출처] 고구려 고분 벽화|작성자 ohyh45


수신-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님귀중
제목-국민연금가입에대한 연장사유서 제출외
저작권-이차성 650213-1117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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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관리공단

1.민원내용
본인은 국민연금으로부터 연금가입기간이지나 재가입권유우편물 받았습니다.
매번 소득이 없어 연금가입이 곤란해서 현금이 아닌 다른방법으로
연금 재가입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공단찿아서 창구에 설명곤란해서 미리 방문전 설명을 드리는것입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에게 현금만을 받습니다.
현금을 받아서 국민연금이 주식에 투자를 하는것으로 알고있는데
본인이 제시하는 방법도 현물이 아닌 방법으로 국민연금납부를
대납을 하려고 하는것입니다.
본인이 대남을 하려고 하는것은 금석문을 번역한 고서와 같습니다.
인터넷에 금석문 번역내용의 일부를 공개를 하였습니다
현재 문화재거래는 법령위반이되고 저작권에 걸려서 판매가 불가능하지만 ..
본인이 제작한 고서번역서는 순한글로 제작을 하여.문화재보호법보다는 저작권에 가까워
연금을 현금대납을 하려고 하는것입니다.
역사지식보다는 건설기술자의 경험으로 제작을 하였는데
왕릉공사시방서와 같습니다.
측량 토목 건축 환경+알파를 더한 건설공사 시방서 작성요령과 비슷한
방식으로 금석문을 번역해서 잉크개발, 활자체를 제작을 하여
신문에 탁본방식의 인쇄를 한것은 위변조를 방지를 위해서 ,,
저작권침해를 원천 방지를 위해서입니다.

본인이 금석문의 한문을 번역한 방식을소개하면.
한국내에서 통용되는 한문번역방식은 모두 국제표준식의 한문번역방식을 사용합니다.
가로쓰기방식이거나 세로쓰기의 방식의 별개로 분리하는 한문번역방식..으로서
비전통적인 방식이라고합니다.중국식의 한문번역이 방식이라고 ,,
신문이나 대학 또는 고등한문학과에서는 모두 국제표준식의 한문을 사용을
문법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방식이 건축 토목등 구조계산을 하지않는
표준식한문번역방식입니다.

본인이 한문을 번역하는 방식은 비표준방식의 한문번역방식입니다.
신라향가식/ 이두식의방식으로 사용을 하며 문법적인 요소는 배제한
측량 견적 적산.건축 도면이해가 가능하며 건설실무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본인이 만든것은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를 동시에 기록된 번역물입니다.
한문을 구조계산을 해서 지문을 대조해서
건축물의 도면 치수도 정확하게 모두일치를 시키는 번역방식입니다.
국민연금공단에 현금대신 대납을 위해서
본인만든 번역물을 감정을 받으려고 하니
한국내에서 본인이 만든 번역물 감정이 가능한곳이 없어
공개를 하였고
번역물의 일부를 소개를 합니다.

2.고려왕릉고분군(25대-31대)금석문 번역일부소개
韙歟韓國諱仁姓鄭氏高麗운하河동편에에거주를 東임금이郡고려주인인人贈숭양서원에서崇실록을작성祿大왕의자리夫遼陽等處정동행성行中書省平章政事柱國고추는 追봉토소유封1개의韓國공신이며公考諱性良기증을贈자선을해서資善大夫운하의河남대문이南江北等處정동행성이있고行中書省左丞上지방토호護군권을소유한軍고추가追봉토를소유하고封영화누려榮陽임금이郡公妣포씨가匏氏追封榮陽郡夫人祖諱공신이公윤허를받아允贈中능봉이奉大夫준령에嶺北等處行中書省叅知政事上지방토호가護군구넝을소유한軍追封榮陽郡公妣최태원씨가崔氏追봉토소유하고封영화를누리고榮陽郡夫人복부인도媲夫人이건희회장님도李氏봉토소유하고 군권을누리고封韓國太夫人男5명이五人長윤씨도允和官至正尹次允琦官至護軍次禿만월대를滿達卽아름답게徽政公也次天佐官至들판에判봉납을하여內府시주기부를 해서寺공사를하고事次某不봉사도仕여성도女三人孫男女노약자도若한량도幹人初大언덕에德庚子휘황하게徽政生十一고려1대歲왕의표지1고리以봉납을內시주를기부를侍從충렬왕이忠烈王입국을 하여서入覲因유학을留공사를事대궐을闕정원공사를庭개성첨성대공사를지휘成숭양서원도宗愛기준삼아其穎悟壬寅적석소를詔入학습원도學齒冑習書禮旣通大意충렬왕이운명을하자命결합을하여給공사를事인종의능지근처에仁宗잠저에潜邸至大己酉拜典寶감실을마련監丞시신을관을官능봉우리에奉訓大왕묘를조성夫俄遷典瑞大監洎陞監능자리에사원을짓어爲院六轉爲使加자선을하여資善大夫攝利用인종감실監충령왕감실監金玉府其被仁廟所以愛遇고려25대능지之內臣無出其右天曆初移章珮卿已而復使典瑞又四遷光祿大夫徽政使延慶使提調掌謁司事其在徽정렬政也26대목과孜17대목종孜以薦進賢能爲巳任故士論翕然歸고려27대능지之穀嘗爲屬官得公고려28대능지之深知公고려29대능지之詳敢叙其大略云韓國年七十九元統癸酉十二月十二日卒于家明年而疏恩封太夫人旣29능지나가封고려30대능지之六年至元己卯七月十九日卒壽七十有四우기로공사가지연되니又七年而作祠堂時고려31대능지至正五年乙酉三月也

3.공민왕릉천장벽화 -별그림에 대해서
정인사당기번역을 신라향가식으로하면
정씨개인의 분묘기록이 아닌 공민왕릉벽화 천장부를 설명을 한것입니다.
별이란 =왕을의미합니다. 왕능과같아요
개성시에 칠릉떼가 있습니다. 7명의고려왕능이 분포되어있는데.
고려31대공민왕의 천장에는 8개의 별이있습니다.
고려왕릉 고분군 금석문을 설명을 보면 고려 28대왕릉과 29대왕릉이 서로 붙어있습니다.
공민왕릉의천장별을 보면 별2개 가 붙어있는 ,,
공민왕릉의 천장에 별은 결국 9개가 되어요(붙은 별을 추가계산을)
정인사당기를 번역을 하면 별그림의정확한 왕능의배치를 알아요
고려 25대능지 아래에 7대능지 자리하고있고
고려 26대능지 아래에 17대능지가 자리하고있습니다.

거꾸로 별을 31대- 30대왕릉-29.28-27대- 26대 -25대
26대와 7대가 교차하는곳에 25대왕능이 존재를 한다는

기존의 25대왕능은 14대왕능이되는데 (별도설명)

위와같은 신라향가식으로 금석문 모두를 번역을 하면
모든 금석문이 번역을 할수있고 모든 왕릉의주인을 규명이 가능하다는
4.
위와같은 방식으로 신라향가식으로 금석문을 번역을 하면
고구려집안고분군- 모두루묵서(1대-19대영락왕릉)
고구려평양고분군-점제비(20대-28대)
신라고분군- 창녕비문(시조-30대)신성비(31-56대까지)
백제경우-정림사지금석문(1대-31대)
고려고분군-정림사당기(1대-31대)
조선경우-권희정비문(1대-27대)

5.을지문덕장군능
위와같은 신라향가식 방식으로 한문을 번역을 하면
점제비는 덕화리 고분군의벽화를 설명한것입니다.
점제현신사비로는 평양지역고분군에 대한 설명이부족합니다.
평양지역에 해당되는 금석문이 없다면
저작권때문에 북한의영토권을 주장을 못해요
점제비의 글이 짧아서 주변국과 시비만 벌이는원인이
저작권이 부족해서
기존에 발견된 금석문을 신라향가식으로번역을 하면
평양지역고분군의 금석문을 찿았고
신라향가식으로 한문을 번역을 하면
을지문덕장군의 능지도 찿았는데 을지문덕장군의 능은
인터넷에 공개않고 국민연금공단직원에 설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