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삼국이전

구름에 달가듯이 2014. 12. 5. 07:36

반구대 암각화 옛 선인들의 삶을 담다

 

 

 

반구대암각화의 구성 단계

 

발견이후 지속적으로 분석된 반구대암각화(국보 285호)는 그간의 연구에 힘입어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유적으로서, 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그것은 아마도 그 시대 신성지역에 깃든 내밀했던 삶의 형태일 것으로 짐작된다.

 

반구대암각화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또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하는 것을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아울러 여러 표현물에 반영된 그 성격을 살펴보기로 하자. 유적의 환경면에서 바위구조는 암각화의 바로 동쪽으로 암벽이 ‘ㄱ’자로 꺾여 있고, 위는 처마처럼 튀어나와 있어서 풍우에 잘 보존되는 구조이다. 하지만 1965년의 사연댐 건설이후 년 중 대부분 물에 잠겨, 봄의 갈수기 때에만 그 모습을 잠깐씩 드러내고 있어서 보존에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유적의 방향마저 북향으로서 갈수기라 할지라도 일몰시간대에만 아주잠깐 햇살이 비춘다. 그래서 일조량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간 수행된 3차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분석된 암각화의 내용은 대부분 동물로 구성된다. 그 동물과 동물사이에 사람이나 배, 그물과 같은 것이 있고, 덫이나 부구浮具와 같은 도구도 있다.

 

표현물의 수는 조사자 사이에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조사방법과 표현물의 형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형상이 분명하게 인지되는 것만 약 232점 정도가 확인되었다. 그 속에는 고래를 비롯한 해양성 동물 69점, 육지성 동물 97점 이상이 있고 사람과 인면, 가마우지와 같은 조류, 배를 비롯하여 수렵도구와 함께 내용을 알 수 없는 기호와 같은 것도 있다.

 

여기에 형태에 대한 분석이 곤란한 동물류 38점을 포함하면 모두 232점 정도이다. 그런데 이곳의 모든 표현물이 어느 한 시기에 일률적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반구대암각화가 여러 시기에 걸쳐 제작되었다고 보는 것은 다수 연구자의 공통된 시각으로서 인정되는 것이지만, 이 순차별 제작 단계를 분류해 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의 연구 분석에 따르면 반구대암각화는 대략 5개의 단계에 걸쳐서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첫 단계는 작살과 배와 같은 것이 조사되는 걸로 봐서 아무래도 신석기시대 후기로 보이고, 전반적으로는 청동기시대의 여러 단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암각화의 새김법으로서 제작시기를 살펴보고자 하는 연구도 있어왔다. 반구대암각화의 새김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채택되었다. 첫 번째의 기법은 표현물의 형태에 따라 전체를 고르게 긁어내거나 쪼아서 나타내는 면 새김 방법이고, 나머지는 표현대상 또는 거기에 나타난 생태적 표현과 같은 것을 선으로 묘사하는 선 새김이 그것이다.

 

그러나 제작기법으로 시기를 구분한다는 것은 필자의 입장에서는 수긍하기 어렵다. 반구대에서 한 개의 표현물에 반드시 하나의 기법만 채용된 것도 아니고, 표현의도에 따라 두 기법이 혼용된 것이나 서로 상반되는 현상도 있기 때문에 기법으로 암각화 제작의 선후를 구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저 고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반구대에서 조사된 암각화는 주변 북아시아의 암각화유적에 비하여 수적으로 비교될 수 있는 양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표현물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만큼 특징적이게 한다. 그것은 아무래도 고래와 같은 해양성 동물이 조사되기 때문이다.

 

세계 암각화유적에서 고래가 발견된 곳은 백해White sea주변과 시드니의 구링가이Kuringgai,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오제떼Ozette 등지가 있지만, 고래가 그렇게 쉽게 조사되는 표현물은 결코 아니다. 반구대에서 조사된 고래 수는 전체에서 27%나 되는 약 62마리이다. 따라서 고래는 반구대암각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심표현물임에 틀림이 없다.

 

고래에 대하여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고래는 전면에서 좌측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에는 위·아래에 각각 남녀로 보이는 사람이 있고, 그 사이에 고래가 모여 있어서 서술적 화면구성을 잘 보여준다. 고래 20마리여는 하늘을 향하고 있는 양상으로, 물새와 3마리의 거북이가 함께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것과 같은 부감법俯瞰法에 의한 화면구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보다 실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이 부분은 그 어느 곳보다도 반구대암각화의 조형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곳이기도 하다. 고래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는 이 부분의 화면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래는 모두 하늘을 오르는 것과 같은 구도로 표현되었으며, 거기에는 작살을 맞은 고래도 있고 고래잡이배에 잡힌 고래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면모는 어쩌면 이 고래무리들이 이미 죽임을 당한 고래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더구나 고래무리의 맨 앞에는 이들을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것처럼 구성된 거북이와 물새가 함께 있어서 전반적인 성격을 어느 정도 암시하고 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거북이나 물새는 그 생태적 능력에 의해 초월적인 양성체兩性體, amphibians동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끌려가는 것처럼 묘사된 고래는 아마도 이미 죽은 고래의 혼령으로서, 애니미즘적 사고에 의하면 반구대암각화의 고래무리의 대부분은 고래의 혼령을 위무하기 위하여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하단의 사지 벌린 사람도 이와 관련하여 고래의 혼령에 대한 위무와, 또 고이 저세상으로 보내기 위한 의식을 진행하는 샤먼으로서,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것과 같은 형태묘사로 봐서는 귀천의식歸天儀式 중의 망아忘我현상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풍요를 전하는 동물들

 

반구대암각화의 표현물 중에는 고래만큼이나 많은 숫자로 조사된 동물도 있다. 사슴이나 호랑이, 멧돼지, 개과 동물과 같은 육지성 동물이 97마리 분 이상이나 조사되고 있어서, 이러한 동물도 반구대암각화 이해의 중요한 표현물의 하나일 것이다.

 

그 중에서 또 반을 차지하는 사슴이 반구대에서도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반구대암각화 역시 북아시아의 여러 암각화와 표현상 같은 이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게 한다.  사슴은 선사시대 사람들의 고유한 조형전통을 지닌 동물로서, 사슴이 암각화로 표현되는 이면에는 온순하여 쉽게 얻어지는 식량원이었을 뿐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영적 동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구대암각화를 말하는 데 있어서 사슴과 함께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단연 동물표현에서 격자문과 같은 선 새김이 있는 동물이다. 이것은 3마리의 멧돼지와 사슴 한 마리, 그리고 호랑이 두 마리에게 한정해서 나타나는 것으로, 그간 이러한 선각이 있는 표현을 X-ray양식으로서 내부기관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거나 동물의 분배를 나타낸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같은 표현양식으로 잘 알려진 호주 다윈Dawin의 암각화에서 나타나는 기법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는 것을 볼 때, 이를 X-ray양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6마리로 조사된 이러한 동물의 신체적 특징은 배가 볼록하게 나와 있다. 그래서 모두 새끼를 밴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점을 볼 때 격자문의 선각표현은 동물증식의 풍요와 관련하여 새끼 밴 동물을 신성시하는 데서 나온 문양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인근지역의 예, 즉 알타이나 몽골, 내이멍꾸, 연해주와 바이칼, 그리고 호주 로울라 등지와 같은 곳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신성시되는 존재에 대한 공통적인 특징'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과 비교하였을 때 반구대에서 격자문의 시문은 '이 동물은 잡아서 안 된다'고 하는 사냥에서 금기와 신성동물을 나타내는 표식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왜 바위에 그림을 새겼을까?

 

반구대암각화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밝히기 위한 작업의 또 다른 하나는 인근지역에서 조사된 암각화와의 비교분석작업이다. 연관성이라든지 표현물의 양식, 조형성, 상징이나 성격과 같은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이러한 작업의 결과로서 얻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연구자에 의해 조사되거나 소개된 인근 암각화유적 중에는 아직 직접적인 비교자료와 검토의 대상이 드러나지 않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원류나 연관성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다소 정돈되지 않은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무비판적으로 시베리아기원설이 나오거나 반대로 전혀 관련성이 없다는 무관설과 같은 견해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자료수집과 정리가 좀 더 진행되어야 가시적이고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우리는 반구대암각화의 성격을 이해하기 위하여 몇몇 표현물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구대암각화 전체를 폭넓게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우리가 반구대암각화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왜 선인들은 바위에 그림을 새겨서 남기게 되었을까?' 하는 가장 원론적인 질문에 먼저 대답하는 것이 순서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기에 대한 답으로는 '예사롭지 않은 바위가 영혼의 부활을 가능하게 하며, 영혼의 안식처로 숭배되었다'라고 하는 러시아 연구자 데블리트Девлет М.А의 견해로서 잘 정리된다고 하겠지만.   


글·사진 | 이하우 문학박사, 한국선사미술연구소장
사진제공·문화콘텐츠닷컴, 연합포토, 엔싸이버
 

 

[출처: 문화재청>문화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