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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2015. 1. 2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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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은 불법·무효" 고종 친서 등 역사 증거 생생

[을사늑약 100년] 독립기념관 특별전시회 개최
15일부터 서대문형무서 역사관서 개최
개막 앞서 강연·진혼굿춤 공연도


을사늑약 한국어본 첫 장. 고종 황제의 비준이 없을 뿐 아니라 조약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조약문 제목이 들어가야 할 자리가 아예 비어 있다.

고종이 1906년 1월29일 작성해 영국 신문 트리뷴의 더글러스 스토리 기자에게 전한 국서. 을사늑약이 무효인 이유가 조목조목 명시된 이 문서를 받은 스토리 기자는 일본의 암살 위협까지 받았으며, 결국 1907년 1월13일자 트리뷴에 국서 전문을 공개했다.

을사늑약 체결 전후의 서울 풍경. 경복궁으로 보이는 궁궐 주위에서 일본군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일본인이 그린 것인데, 작자와 제작 연도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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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삼웅 독립기념관장


제국주의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해 한반도를 강점할 결정적인 계기로 삼은 을사늑약(乙巳勒約ㆍ을사오조약)이 17일로 체결 100년을 맞는다.

 

덕수궁 중명전에서 한규설 등 일부 대신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적(五賊)’을 앞세워 강제한 이 늑약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곧 열릴 독립기념관 전시회 자료로 되돌아본다.

독립기념관이 15일부터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을사늑약 100년, 풀어야 할 매듭’을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연다.

12월11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는 일본이 무력을 동원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전시회에서는 당시 대한제국과 우호통상조약을 맺은 9개 나라에 보낸 고종의 친서 등 을사늑약 관련 자료들이 선보여 눈길을 끈다.

서울대 김기석 교수(교육학)가 제공한 이 자료들에서 고종 황제는 ‘1905년 11월 18일에 대한제국과 일본 간에 체결된 것으로 알려진 을사오조약이 불법, 무효임을 선언한다’고 친서를 통해 밝혔다. 이때가 1906년 6월 22일이다.

고종은 이날 자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밀사’인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를 특별위원으로 임명하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및 중국의 국가원수에게 친서를 전달하도록 밀지를 내렸다.

하지만 제국주의 팽창의 야욕을 불태우던 여러 나라들에게서 힘을 빌리기는 어려웠다.

특히 1905년 7월 29일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필리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양해를 얻고, 대신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용인한 미국은 1882년 조미수호조약의 ‘알선조항’(상호방위조약)을 무시하고 대한제국을 ‘배신’했으며, 이후 고종의 무효화 호소에도 갖은 핑계를 대며 등을 돌렸다.

이번 전시에서 을사늑약을 전후한 사정을 담은 자료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기념관은 ‘흔들리는 조선’ ‘1905년 11월17일 중명전’ ‘침략의 마수를 드러내다’ ‘을사늑약의 주연과 조연’ ‘꺼져가는 불꽃’ ‘풀어야 할 매듭’ 등 8부로 나눠 20세기 조선의 역사가 얼마나 피눈물 나는 망국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일제 식민통치 자료와 을사조약 체결과정을 담은 삽화 등을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전시회 개막에 앞서 오전 10시30분부터 독립공원 내 독립관 강당에서 학술강연회도 연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이 ‘을사늑약 무효 선언과 이후의 과제’를, 이태진 서울대 교수가 ‘메이지 일본의 한국 침략사’를 강연하고, 북한의 천도교 청우당 강철원 부위원장이 보내온 ‘1905년과 2005년’이라는 글이 소개된다. 이어 이애주 서울대 교수가 ‘영령맞이 진혼굿춤’을, 안숙선 명창이 ‘안중근 열사가’를 공연한다.

사진제공= 독립기념관




1905년 11월17일에서부터 18일 새벽까지 무력을 동원해 을사늑약을 강제한 상황을 묘사한 풍자화. 연도는 미상이고 '코리언 뉴스페이퍼'(Korean Newspaper)라는 신문에 실렸다.

고종이 러시아 을사늑약의 불법, 무효를 선언하는 친서들. 헐버트를 특별위원으로 임명한 뒤 러시아 황제와 프랑스, 이탈리아 원수(왼쪽부터)에게 발송했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입력시간 : 2005/11/10 18:54
수정시간 : 2005/11/10 21:08

출처 : 살맛 나는 세상이야기들...
글쓴이 : 크레믈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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