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화가/佛,스페인화가

구름에 달가듯이 2015. 6. 28. 08:31

수잔 발라동의 작품세계Ⅰ[1892~1920] - Suzanne Valadon

(프랑스 화가 1865~1938)

 

 

19세기 말 파리 몽마르트, 그곳은 불운한 예술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득실거리던 파리의 뒷골목이었다. 이 시기 몽마르트는 인상파라고 불리워진 일군의 화가 군단과 음악가들을 배출해냈다.

르느와르와 로트렉, 드가 등의 화가들이 몽마르트 뒷골목의 싸구려 술집에서 압상트 술을 앞에 놓고 내일 먹을 거리와 자신의 예술이 나갈 바에 대해 고민하며 취해갔다. 그들의 귓전에는 무명의 음악가였던 에릭 사티의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곳에 한 여인이 이었다. 그녀는 몽마르트에 모인 모든 예술가들의 유일한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화가들의 모델이었고, 음악가들의 벗이었으며, 모든 예술가들의 뮤즈이기도 했다. 남자들이 군림했던 19세기 말 예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그 스스로가 뛰어난 화가가 된 여인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95~1938)' 이다.  

 

 

 

 Renoir - Portrait of Suzanne Valadon,  1885 , OIl pon canvas

 

 

파리파, 에꼴 드 파리(l'Ecole de Paris)와 몽마르트(Montmartre)

 

'19세기의 회화는 오로지 프랑스에서 프랑스인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밖의 회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20세기 회화는 스페인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라고 말한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말처럼 20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모든 미술운동의 중심에는 '파리파(에꼴 드 파리)' 가 있었습니다.

 

파리에서도 몽마르트 언덕은 세기말의 혼돈 속에서 방황하는 예술가들의 고향이었습니다.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 빈민촌, 환락가였던 몽마트르는 많은 화가들과 시인들, 음악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 시기 몽마르트는 우리가 인상파라고 부르는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화가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수 많은 화가들 중 ’몽마르트의 화가’로 불리는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몽마르트에서 태어났고, 몽마르트에서 자랐고, 몽마르트를 그렸고, 죽어서도 몽마르트에 묻혔습니다. 그의 이름은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1955)’ 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가 바로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1895~1938)' 이지요.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1865~1938

 

르느와르와 로트렉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여인, 약간 사팔뜨기 눈에 풍만한 몸매, 삶의 고통을 송두리째 알아버린 듯한 표정의 여인, 그녀는 몽마르트 언덕 화가들의 단골 모델 쉬잔 발라동이다. 가난한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살에 파리로 흘러 들어와 공장 직공, 식당 종업원, 서커스 곡예사로 전전하다가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화가들을 만나 직업모델이 되었다.

르누아르, 로트렉, 샤반느, 드가 등 기라성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다. 작가의 취향에 따라 그녀의 모습은 몽실한 관능성을 드러내기도 하고, 강한 자의식을 나타내 보인다.

 

발라동은 최하류층의 여인이었습니다. 18세에 그녀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출산한다. 바로 아들인 모리스 위트릴로 이다. 그녀는 그 아이를 에스파냐인 기자 미겔 위트릴로의 양자로 입적 되어 위트릴로라는 성을 가지게 하였다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잔은 마담 르누아르가 빗자루를 들고 내쫒기 전까지 그녀는 르누아르의 모델이자 정부이기도 했고, 로트렉과는 잦은 스켄들로 좁은 몽마르트 거리를 시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이 불구의 백작과 결혼하기 위해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했다지요.

 

수잔 발라동이 어울린 예술가들은 오늘날 예술사에서 후기 인상파로 알려진 화가들이었다. 그녀를 특히 많이 그린 사람들은 르느와르와 로트렉, 샤반 등이었다. 그녀는 그들 모두의 모델이자 애인이기도 하였지만 특히 로트렉과 음악가 에릭 사티와의 사랑은 각별했다.

 

로트렉은 그 누구보다 수잔을 많이 그렸습니다. 르느와르가 그녀의 겉모습을 아름답게 그린데 비해 로트렉은 수잔의 신산스러운 삶을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그 자신이 불구였던 로트렉은 그 누구보다 쉬잔을 잘 이해했으며 그녀의 성장을 돕기 위해 애썼죠. 로트렉의 그림 속에 수잔은 아름답지는 않으나 삶의 깊이를 아는 여인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편 한평생을 가난 속에서 무명의 음악가로 살았던 에릭 사티는 수잔과 6개월간의 짧은 동거생활이라는 사랑을 나누었고 그 사랑을 한평생 간직하며 살았다. 수잔 발라동은 그들의 애인이자 영감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간직한 예술적 혼을 나누어주기도 하였다.

 

 

 

 

 

Suzanne Valadon, Maurice Utrillo, and Andre Utter  all famous artists of Montmarte,

enjoy some vermouth as they pause from their work on their paintings.

 

 

그리고 화가들과, 예술가들과 조우하면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숨겨져 있던 예술적 재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델일을 하면서 자신을 그리는 화가들의 어깨 너머로 데생을 배웠나갔다. 그런 그녀의 실력을 처음 알아본 이는 로트렉이었고, 그 재능을 키워준이는 드가였다.

 

로트렉은 수잔을 드가에게 소개한다. 대담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으로 그려진 그녀의 작품을 본 드가는 그녀의 예술적 재능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리고 로트렉과 함께 수잔이 화가로 일어 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수잔은 서두르지는 않았다. 오랫동안의 수련을 거쳐 그녀가 발표한 그림들은 이미 아마추어의 수준을 넘어 서 있었다. 수잔 발라동은 정물화와 풍경화의 단계를 거쳐 인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여성화가에게는 사회적으로 금기시되어 있던 누드화, 그녀는 남성 화가들이 여성 누드를 바라볼 때의 탐미적인 관점과는 달리 여성의 눈으로 여성의 몸 속에 녹아 있는 여성의 삶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싸구려 모델의 자리를 떠나 그녀가 모델로 서주었던 화가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누는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성장한다.

 

한 남자에 정착하지 않고 자유로운 보헤미안을 꿈꾸었고, 또 그런 삶을 살았던 수잔, 하지만 젊음도 미모도 시들해지자 수잔은 부르주아의 안전한 삶을 찾고자 했다. 한 시절 에릭 사티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녀는 사티의 친구인 은행가 뿔 무시와 결혼을 한다. 비로소 경제적 안정을 찾고 작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된 수잔, 하지만 그녀가 새로운 연인, 우터를 만나게 되면서 관계는 십년 남짓 만에 깨져버렸다.

 

 

 

 

수잔 발라동과 그의 아들로 몽마르트 화가로 유명한 유트릴로

 

우터는 아들의 친구였다. 어느 날 창 밖에서 어슬렁 대던 그를 불어들여 초상화를 그린 수잔은 마침내 그를 벗게 만들어 태초의 누드 남녀 <아담과 이브>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을 한다. 그녀 나이 마흔 여섯, 스물 셋의 남편과 스물 아홉 아들의 공존, 몽마르트르의 주정뱅이인데다 정신병까지 앓고 있던 아들 위트릴로와 그의 친구이자 양아버지, 발라동 등 세 화가의 기묘한 동거를 당시 사람들은 ‘저주받은 삼위일체’라고 불렀다.

 

한편 외가에서 키워지던 아들 위트릴로는 열 세살부터 알콜에 빠져 들었고, 수잔은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에게 림을 그리도록 권유한다. 알콜중독은 고쳐지지 않았지만 위트릴로에게 그림은 절망에 비친 하나의 빛 줄기였고, 위트릴로가 그린 그림은 세 사람을 그래도 살데 만들어주었다.

 

늘 버림 받았음을 탄식하는 아들의 질투와 젊은 여인을 포기할 수 없었던 어미, 그들의 동거는 늘 위태로웠다.  후에 바람난 우터는 그녀를 떠나갔지만, 이 모자의 작품에 주목하기 시작한 화상들 덕분에 두 사람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잔은 아들 위트릴로가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곁을 떠난 지 3년만에 술이 원인이었을 병을 얻어 숨을 거두고 영원한 고향 몽마르트에 묻혔다.  

 

이렇게 세속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삶을 살았던 발라동이 죽었을 때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 당대의 화가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꽃을 던졌다고 한다.

 

19세기말 서양예술사는 산업혁명이후의 사회적 혼란과 세기말이라는 정신적 불안 속에서 위태롭지만 새로운 사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 정점에 파리 몽마르트의 예술가들이 있었다. 수잔 발라동은 그 예술가들의 가운데 서서 그들과 함께 예술과 자유를 만끽하고 스스로도 화가로 우뚝 선 19세기말 예술사의 히로인이었다.

 

 

Pierre Auguste Renoir 가 그림  Suzanne Valadon을 모델로 한 그림들

 

 

Suzanne Valadon, Pierre Auguste Renoir , 1885 , oil on canvas , Private collection

 

 

 

 Renoir-Profile portrait of Suzanne Valadon,1885.oil on canvas , 41.3 cm X 31.8 cm

National Gallery of Art - Washington DC  (United States - Washington)

 

 

 

Renoir Girl Braiding Her Hair:Suzanne Valadon 1885

 

 

 

Renoir  Dance at Bougival , 1883, Oil on canvas, 180 cm X 98 cm,

Museum of Fine Arts - Boston  (United States - Boston)

 Woman at left is painter Suzanne Valadon

 

 

도시에서의 춤 1883, Oil on canvas,

 

Suzanne Valadon (1865-1938)은 프랑스 리모주 근방의 한 마을의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도움없이 스스로를 부양해야 했던 그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파리로 오게 된다.

 

이후 서커스단에서 곡예사로 일하다가 공중에서 떨어지게 되어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생활이 어렵게 된 그녀는 몽마르트의 예술인들과 교류하면서 화가들의 모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모델일을 그만두고 1892년 화가로 첫 출발을 하게 되는데.그녀의 후원자이자 그림 선생님을 자처한 찬도메네기와 드가의 격려가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한 

 

로트렉과 발라동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그는 귀족물 뚝뚝 떨어지는 이름에서 보듯 그는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역시 사촌간이었던 부모의 근친혼 때문일까 유전적인 질병을 지니고 태어나 뼈가 잘 부러지고 다리가 자라지 않는 병이었지. 그는 장성해서도 키가 150센티를 겨우 넘었고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그냥 앞으로 고꾸라지는 가련한 신세였어. 아버지는 이런 자식을 꼴도 보기 싫어했고 평생 외면했다고 해. 로트렉이 서른 일곱 살 되던 해 1901년의 9월 9일 세상을 뜰 때 얼굴을 비칠 정도였다니. 

귀족 가문의 일원으로서 경제적으로 곤궁함은 없었지만 “내가 다리가 조금만 길었더라면 그림 따위는 그리지 않았을 거야.”라고 로트렉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장애는 그에게 좌절의 저주와 예술혼의 축복을 동시에 안겨다 주었지. 그가 보통의 귀족 청년이었다면 평생 우아한 파티와 귀부인과의 로맨스로 점철된 삶을 살았겠지만 창녀와 무희와 광대를 소재로 생생한 그림을 그릴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물랭 루즈의 인상 깊은 포스터들도 남기지 못했을 테고 아울러 내가 그를 기억할 일도 없는 거 아니겠어. 

아울러 고흐같은 불우한 청년과 영혼을 나누는 친교를 맺지도 못했겠지. 어떤 모임에서 로트렉은 고흐에게 독설을 퍼붓는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애걔걔 그 몸으로!) 만용을 부릴 정도였다고 하니까 그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겠지? 아 결투를 했냐고? 아니. “로트렉이 이 결투에서 변을 당한다면 내가 복수하겠다!”고 나서준 떡대 친구 덕에 무사했어. 

그의 그림에는 많은 여인들이 등장했다. 우리가 아는 캉캉춤을 개발했다고 알려진 라글뤼, 물랭루즈의 유명한 무희 잔 아브릴을 비롯해서 많은 여인들이 그녀의 모델이 됐지. 하지만 그 모델들은 우아하게 포장된 게 아닌라 질릴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됐어. 아니 오히려 추하게. 왜 그렇게 모델을 예쁘게 그려내지 못하고 오히려 추하게 표현하느냐는 질문에 로트렉의 대답은 냉소 그 자체. “실제로 추하니까.” 로트렉은 그렇게 여자들을 즐겨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원하면서도 그 짧은 다리로 걷어차는 흉내를 내기를 잘했다. 자존심이었을까 자괴감이었을까. 그의 그림 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한 여인이 있었어. 수잔 발라동, 

그녀는 로트렉과는 정반대의 출신 성분이었어. 사생아로 태어나 청소부였고 직공이었고 심지어 곡예사까지도 두루 섭렵했으니 당시 사회의 맨 밑바닥을 쓰는 인생이었던 셈이지. 곡예 중 몸을 다쳐 새롭게 찾은 직업이 모델이었어. 거친 삶을 헤쳐나온 그녀는 화가들에게 뭔가 새로운 영감을 준다. 우아하지는 않으나 건강한, 아름답지는 않으나 강렬한 그녀의 모습은 드가나 르느와르나 로트렉, 심지어 반 고흐에게도 어필하게 됐지. 그리고 동시에 모두의 정부이기도 했다. 발라동은 사생아를 낳는데 그 아버지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그녀를 모델로 삼았던 모든 화가들이 들먹여지니까. 

그런데 그녀는 모델 일을 하면서 데생을 익히게 되는데 꽤 재능을 발휘해. 화가 샤반의 경우 그녀가 건방지게 화가를 흉내낸다고 엄청나게 화를 냈고 그녀가 르느와르에게 가게 만들지. 르느와르는 그녀를 참 예쁘게, 아름답게 그려낸 화가였어. 물론 애인이었고. 르느와르의 아내가 발라동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낼 때까지 말이지. 그리고 만난 게 로트렉. 발라동은 로트렉의 그림에서 또 다른 자신, 아니 자기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발견하게 돼. 우아한 무도회에서 춤추는 자기가 아니라 낡아빠지고 다 해진 옷을 입고 있으나 삶에 대해 고개를 쳐들고 있는 모습, 피곤하지만 결코 지치지 않는 눈동자.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내민 강렬한 턱. 

발라동은 로트렉을 사랑하게 돼. ‘몽마르뜨의 뮤즈’라고 불리울 정도로 뭇 화가와 음악가의 사랑을 받았던 이 미인은 아니지만 강렬한 인상의 여인은 로트렉에게 올인한다. 뭐랄까 묘한 동병상련도 느끼지 않았을까? 운명과 맞서 헤치고 나와야 했던 자신과 타고난 신분을 거슬러 살아야 했던 예술가를 보면서 말이지. 그녀에게 ‘수잔’의 이름을 붙여 준 것도 로트렉이었지. 수잔은 로트렉에게 청혼해. 그러나 로트렉은 완강히 거절한다. 심지어 수잔이 자살 소동을 벌여도 로트렉은 외면하지. 왜 그랬을까. 로트렉의 유일한 사랑이라 일컬어지는 수잔, 그리고 뭇 화가들의 우상같은 애인이었던 수잔을 왜 거절했을까..... 

많은 이들도 그렇게 여기지만 나 역시 자격지심이었을 것 같다.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여자와 행복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여자의 아이의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그 아이는 행복할까.” 그 모든 대답에서 로트렉의 대답은 ‘농’이었겠지. 오히려 그녀를 사랑할수록 더 멀어지고 싶고 그녀를 사랑할수록 자신의 다리가 원망스러웠겠지. 계단에서 데굴데굴 굴러 목이라도 부러지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여자들이 추하니까” 추하게 그린다던 그는 어쩌면 남루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여인들의 노골적인 모습 속에 자신을 투영했는지도 모르고 괴로움과 허전함이 뒤섞인 마음을 채우기 위해 술을 있는대로 들이켰을 거야. 결국 알콜릭과 폐결핵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가느다란 신음을 토하며 마지막이나마 아들 얼굴 보자고 찾아온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리고 자신을 끝까지 돌보고 사랑했던 어머니를 돌아보면서 로트렉은 이렇게 말하고 세상을 끝맺는다. “엄마. 당신 밖에 없군요. 죽는 건 너무 괴로워요.” 

후일 수잔 빌라동 역시 화가가 됐고 (그녀의 그림을 본 드가는 “당신도 이제 우리 부류군!”이라고 환호했다지) 그의 사생아 역시 화가가 된다. 그 아들의 이름은 모리스 위트릴로라고 하는데 그는 10대에 벌써 알콜릭이 될 정도로 막나가는 친구였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붓을 든 후 화가로서 제 구실을 하게 됐다고 하네. 그즈음 수잔이 남겼다는 한 마디는 어쩌면 19세기말 20세기 초를 잇는 몽마르뜨와 물랑루즈에서 종횡무진으로 그어진 예술가들의 슬프고도 비루한 사랑과 예술을 잘 정리해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로트렉의 유언에 댓구라도 되는 듯한 말이야. “예술은 우리들이 증오하는 삶을 영원하게 만든다.” 

 

로트렉이 그린 수잔 발라동과 수잔를 모델로 한 작품들

 

 

 

 Portrait of Suzanne Valadon, by Henri de Toulouse-Lautrec 1885

 

 

 

 Toulouse-Lautrec "The Hangover" (Portrait of Suzanne Valadon) 1888 


빨간 머리의 화장하는 여인  1896, Oil on paper, 54 cm X 64 cm, 빠리 루브르박물관

1896년 초에 로트렉은 색채 석판화 연작을 제작했고 그 해 5월에는 그것들을 <여자들>이란 판화집으로 출간했다. 한 장의 예외-샤 위 카오의 초상-가 있기는 하나 석판화들은 석판화들은 모두가 침대위에 있다든가 목욕하는 여자들을 그린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사창가'에서 이미 제작했던 소묘들에 기초한 것들로 보여지며 드가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음이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석판화 작업은 로트렉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의상과 잠면 효과 따위를 잊어 버리게끔 하였고 그 대신에 인체의 해부학적인 구조에 관심을 쏟을 수 있게 했으리라 여겨진다. 어쨌든 1896년에 그는 이 작품을 포함한 여러장의 습작을 제작했는데, 이것들은 그를 위해 작업실 안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던 여인들을 그린 것이다.이 시기에 그린 다른 그림 -<쉬고 있는 모델> (베르넹 소장)-에서도 같은 모델이 포즈를 취하고 있으며,동일한 실내가구를 확인할 수 있다.


기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그림은 로트렉의 '습작'화 중 가장 완결 된 것 중의 하나이다.  또한 얼굴 표현에 관심을 두지 않은 드문 작품들 중의 하나란 사실도 특이하다. 로트렉이 대단히 존경해마지 않았던 드가식의 기법으로 그린 습작이라고 추측된다.

 

 

세탁부(The Laundress), 1889, Oil on canvas, 93 x 75 cm ,

아마도 이 그림은 로트렉 자신이 기법 수련의 과제에서 그린 습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이 그림의 주제는 드가에게서 빌어온 것이지만 로트렉은 그것을 매우 다른 수법으로 다루고 있다. 드가는 세탁부를 다룬 그림에서 다림질을 하거나 무거운 바구니를 운반하는 여인들의 딱딱한 동작과 복잡한 명암대비 효과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로트렉의 그림은 일을 쉬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에는 슬픈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그렇지만 로트렉은 우리에게 육체적 피로와 우울을 알려주기 위해 <뚱뚱한 마리아>에서처럼 모델의 얼굴에 초점을 맞출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강인하고 튼튼한 팔과 물결치듯이 휘어져있는 등의 윤곽선이 서로 대조를 이루는 육체 자체에 그러한 표현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Self-Portrait, 1883

 

 

 

Portrait of Erik Satie,1892.  oil on canvas, 22 x 41 cm

Centre Pompidou -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France - Paris)

 

피아니스트며 작곡가인 에릭사티 가난뱅이와  독신으로  퍙셍을 살다 사후 38년에 알려진 그가 사랑했던 수잔 발라동이 그린 에릭 사티의 초상화이다. 그가 발라동을 처음 본것은 술집에서 로트레크와 춤을 추고 있었는제 그때 사티는 절대로 겁을 먹을 것 같지 않은 발라동을 보고 '야생의 냄새를 풍기는 그녀를 보고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깨물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로트레크,르노아르, 퓌바 드 샤반의 모델이고 연인이고 했던 그녀를 에릭 사티로 사랑했다. 발라동의 아들인 위트릴로와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고 한다.. 사티와 발라동이 사귈때  위트릴로는 사티가 좋아했던 떠돌이 개를 죽여 상자에 담아 집 문앞에  높아두기까지 했다고 한다 훗날 부자와 결혼을 앞둔 발라동을 두고 사티가 몽마르트를 떠날 때 위트릴로는 함께 가게해달라고 사티에게 매달리던 소년이었다고 한다.

 

발라동은 아들 위트릴로를 냉대했으나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림도 그녀에게서 배웠다. 사티는 발라동과 반년동안 동거했고 , 발라동과 사랑을 나누는 중 맞은 편 거울에 벌거벗은 일곱 살 때 북은 어머니 모습을 보고, 발라동과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위트릴로는 어머니 발라동을 사랑했고, 발라동은 사티를 사랑했고 사티는 어머니를 사랑했디.

 

사티의 초상화를 완성한 발라동이 ' 이걸 그릴 때 내 몸과 마음이 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어쩐지 이건 내가 그린 게 아니라 내 몸 속에 들어온 당신 어머니가 그린것 같아요' 헤어지도 두달 뒤 사티는 발라동에게 편지를 쓴다 .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소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했소, 이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오,' 그리고 그 후 사티는 슬픈 음악을 계속 작곡했고 압셍트라는 독한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한다.59세로 죽은 사티의 집에서는 발라동에게 부치지 않은 편지 안 묶음이 발견되었고 30년 세월이 후른 뒤에 사티에게 61세의 발라동에게 전달 되었다고 한다. 

 

평생 단 한번의  27살 때의 연애를 간직하고 평새을 독신으로 죽음을 앞둔 사티는 '나는 진실 되지 못한 음 하나도 쓰지 않았다' 고 했다. 사티는 장 콕도의 참여로 발족한 프랑스 6인조의 창작 세계의 방향을 설정해 준 장본인으로도 평가되며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으나 근대 프랑스 음악의 실험 정신에 좋은 자극으 주었다고 평가 된다. 1919년 사티의 음악을 접한 스트라빈스키는 '프랑스 음악은 비제,샤브리에, 사티 외에는 업사'라고 말 했다고 한다

 

"나는 이 낮고 낮은 땅에 외 왔을까 즐겁기 위해서?, 형벌로?, 우언가 알 수 없는 임무를 띄고 ?, 휴식삼아?, 아니면 그냥 우연히?, 나는 태어나 얼마 안도니아이일때 부터 내가 작곡한 음들을 흥얼거리고 노애 불렀지, 그래 내 모든 불행은 거기서 시작된 거야-- <에릭 사티 일기 중에서>

 

 

 

My Utrillo at the Age of Nine, 1892, crayon on paper

 

 

Maurice Utrillo Playing with a Sling Shot, 1895, crayon on paper

 

 

Utrillo Nude Sitting on a Couch, 1895,  crayon on paper

 

 

Woman Preparing for a Bath, 1895, crayon on paper

 

 

My Son, 1896, crayon on paper

 

 

After the Bath,  1908, pastel on  paper

 

 

Mother and Daughter After the Bath II, 1908, pastel on  paper

 

 

Nude Getting into the Bath beside the Seated Grandmother , 1908,   crayon on paper

 

 

The Bath. 1908, pastel on paper, 60 x 49 cm, Musée de Grenoble (France-Grenoble)

 

Woman with a Double Bass, 1908 ,oil on canvas ,

Musée du Petit Palais - Geneva  (Switzerland - Geneva)

 

 

Adam and Eve, 1909, oil on canvas  , 131 x 162 cm

Centre Pompidou -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France - Paris)  

 

수잔 발라동의 ‘아담과 하와’는 독특합니다. 우선 아담과 하와의 표정이 확실히 구분됩니다. 대조적이지요. 두려움 없는 여자와 두려움으로 비겁해진 남자! 시간이 저절로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이끌리는 무구한 여자와 원하는 것조차 제 손을 더럽혀서는 얻지 않으려 하는 야비한 남자! 유혹할 의도 없이 유혹적인 여자와 유혹당하면서도 제대로 사랑할 줄은 모르는 남자!

수잔 발라동, 그녀는 19세기 파리에서 미혼모의 딸로 태어납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는 손가락질과 칼바람 같은 가난을 겪으며 그녀는 곡예사로, 세탁부로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그런 여인이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이 되면서 그림을 배우고 그림을 배우면서 자기 삶을 성찰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녀가 르누아르, 로트렉, 드가와 같은 세계적인 화가들의 모델이 되어 그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일까요, 운명일까요?

그녀를 보면 가혹한 운명 앞에서 무릎을 꺾고 울지 않고 오히려 운명을 스승 삼아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구나 싶습니다. 그녀가 그린 아담의 몸짓을 보십시오. 하와는 두려움 없이 인식의 나무 열매를 따려하는데, 아담은 그 열매를 따려는 하와의 손목을 잡고 있습니다. 아담은 열매를 따는 하와를 도우려는 걸까요, 아니면 따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는 걸까요? 아담은 선악과 앞에서 하와를 부추기며 억누르며 나중을 위한 변명을 만드는 치사하고 비겁한 몸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수잔 발라동이 성서의 아담을 제대로 해석한 것 같지 않습니까? 결국은 선악과를 먹었으면서도 내가 먹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주신 여자 때문에 먹게 되었다고 변명하는 존재가 창세기 속 아담입니다. 여자는 변명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매 순간 마음을 다해 사랑할 줄 모르는 남자, 사랑할 때도 도망갈 길을 마련하는 남자에게 어찌 마음을 열겠습니까? 아니, 마음을 닫아버리지요.

저 아담과 하와를 보면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는 하와입니다. 발라동은 순수한 사랑 앞에서도 한없이 복잡해지는 비겁하고 비루한 남자들을 거치며 성숙한 여인으로 성숙해간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하와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채 벌거벗고 있는데 아담은 가리고 있지요? 아담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 불안이 생기고 허세가 생기지 않나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거지요? 그런데 여자들은 안 그런가요? 나는 내게 묻습니다. 너는 있는 그대로의 너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으냐고? 사실 생긴 게 부끄럽고, 배우지 못한 게 부끄럽고, 가난한 부모가 부끄럽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끄러우면 우리는 저 그림 속 아담인 겁니다. 그나저나 아담과 대조되는 그림 속 하와가 참 예쁘지 않나요? [이주향의 그림으로 읽는 철학 중에서]

 

 

Nude at the Mirror, 1909 , oil on canvas

 

Self-Portrait,1909.

 

 

Trois nus à la campagne, 1909

 

 

Nude from the Back, in Front of a Mirror, 1910 ,pastel on paper, 

58.4 cm X 48.3 cm , Private collection 

 

Self Portrait with Family (André Utter, Madeleine Valadon and Maurice Utrillo), 1910

 

 

Portrait of her Son Maurice Utrillo, his Grandmother Madeleine and the Dog, 1910

 

 

Church at Belgodere, Corsica, 1913 , oil on canvas, 74 cm X 92 cm,Private collection 

 

 

Marie Coca and Her Daughter, 1913 ,   oil on canvas ,130 x 161 cm

Musée des Beaux-Arts, Lyon, France

 

 

Woman at Her Toilette, 1913 , oil on canvas 

 

 

Casting the Net,1914 , oil on canvas ,

Centre Pompidou -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France - Paris) 

 

 

Roses in a Vase, 1914, oil on board ,  38.5 cm X 26.5 cm, Private collection 

 

Road in the Forest, 1914" oil on Canvas,

Musée Fabre, Montpellier, Languedoc, France. 

 

 

In the Woods, 1915 ,oil on canvas, 73 cm X 54 cm,   Private collection ,

 

 

Self-Portrait, 1916, oil on cardboard on canvas, 43.1 cm X 34 cm, Private collection 

 

 

 Self-Portrait, 1917  

 

 

여기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체를 내어놓고도 차분하지만 당당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한 여인이 보인다. 흔히 벗은 여체를 그린 그림 속 여성들은 꿈꾸듯 애매한 눈빛으로 관찰자를 사선으로 비껴보곤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그림 속 여성은 자신이 자기 몸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수잔 발라동, 그리고 그림 속의 여인도 발라동이다. 그녀는 이 그림에서 자신을 전혀 예쁘게 그리지 않았다. 특히나 이 때 그녀는 방금 아이를 낳은 상태였다고 한다. 방금 아이를 낳은 여인의 몸은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즉 에로틱한 제재로는 적당하지가 않죠. 어느 남자도 늘씬한 처녀의 몸 대신 아이를 낳고 방금 몸을 푼 여인의 몸을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아이를 낳은 발라동의 몸은 결코 남성들의 눈길, 그들의 성욕의 대상이 아니다. 그 몸은 여성인 화가의 자기 주장일 뿐이다.

 

게다가 그녀가 남성화가들의 성욕의 대상이 되었던 여성누드화 속에 나오는, 바로 그 모델출신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그림을 그려낸 그녀가 더 놀랍게 여겨진다. 풍만하고 아름답고 유혹적이고 무방비한 모습으로 다소곳이 남성 화가들의 시선을 버텨낸 그림 속의 벌거벗은 여인이, 그림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을 그리기 시작한 것 자체가 전례에 없던 일이었다.

 

 

 

Still Life with Bouquet of Roses and Bowls of Fruit, 1917,

oil on canvas  , 46 cm X 55 cm  Private collection  

 

Le Sacré-cœur, 1917

 

Portrait de Gaby, 1917

 

 

Farm Montcorin, 1918

 

 

L'Église d'Irigny (Rhône), 1918  , oil on board , 62 cm X 50 cm , Private collection  

 

Portrait of Madame Coquiot, 1918

 

 

Self-Portrait, 1918, Oil on canvas , Private Colle

 

 

 

A Road in the Countryside,  1918 ,

Oil on paper on canvas , 39.3 cm X 52.3 cm , Private collection  

 

Study of a cat, 1918

 

 

Two Cats, 1918  

 

 

Vase of Flowers on a Table, 1918,

Oil on paper on canvas, 64.8 X 49.8 cm, Private collection 

 

Woman Reclining on a Sofa, 1917-1918, oil on canvas, 65.4 X 92.7 cm,  Private collection

 

Apples, Pitcher and Teapot, 1919, oil on canvas, 50.4cm X 65.4 cm, Private collection

 

 

Cat Lying in front of a Bouquet of Flowers, 1919,

oil on canvas, 66.4 cm X 35 cm, Private collection 

 

 

Nude Reclining on a Sofa, 1919,oil on canvas, 50.2 cm X 65.4 cm , Private collection 

 

Nudes, 1919  , oil on cardboard , 45 x 31 cm

 São Paulo Museum of Art, São Paulo, Brazil

 

 

Nude Woman with Drapery, 1919 , oil on canvas

 

 

드가의 도움으로 그녀가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공개했을때, 사람들은 기존 남성화가들의 그림들과 전혀다른 초상화와 누드를 볼 수 있었다. 인물의 내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표현해낸 초상화들, 그리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여인의 나신들을 말이다.

 

이전에 남성 화가들이 그린 여성의 누드가 그저 욕망의 대상으로 미화된, 보여지는 사물로서의 여성이었다면, 그녀의 벌거벗은 여인들은 전통적인 미의 기준과는 상관없이 평범하고 다소 살찌고 억센 몸매에 삶의 고뇌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여성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듯 자신의 일이나 생각에 몰두해 있는 여성들이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가난하고 억세었던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여인의 육체이고 삶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자신의 그림을 통해 포착하고자 한 것은 단순한 외관이 아니라 그러한 육체에 배어 있는 신산스럽고도 절실한 삶의 감정이었다.

 

 

 

Still LIfe with Bowl of Fruit, Flowers and onions, 1919, 

oil on canvas  , 50 cm X 73 cm, Private collection

 

Flower vase on a round table, 1920,

 

 

Gilbert, Nude Fixing Her Hair, 1920,

oil on cardboard, 92.1 cm X 73.3 cm,Private collection

 

Louson and Raminou, 1920,  oil on canvas , 61 cm X 50.2 cm , Private collection  

 

 

Nude on the Sofa, 1920,

 

 

Raminou sitting on a cloth, 1920

 

 

Still LIfe with Fruit Bowl, 1920, oil on canvas , 61 cm X 50.2 cm , Private collection

 

 

Woman Looking at Herself in the Mirror, 1920 , pastel  on paper
 

 

Portrait De Femme, oil on Canvas ,

 

Portrait Of Utrillo, oil on Canv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