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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달가듯이 2016. 12. 2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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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지전경(문화재청 사진)

 사천왕사지(금당터)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사적  제8호.경북 경주시  배반동 935-2 )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있는 신라의 절터로 신문왕릉 옆 ·선덕여왕릉 아래에 있다. 신라 문무왕 14년(674)에 중국 당나라는 신라가 그들의 도독부(계림도독부)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50만 대군을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려 하였다. 이에 문무왕이 명랑법사에게 적을 막을 계책을 구하자, 이곳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짓고 부처의 힘을 빌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의 침략으로 절을 완성시킬 시간이 없게 되자, 비단과 풀로 절의 모습을 갖춘 뒤 명승 12인과 더불어 밀교의 비법인 문두루비법을 썼다. 그러자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풍랑이 크게 일어 당나라 배가 모두 가라앉았다. 그후 5년 만에 절을 완성(679)하고 사천왕사라 하였다. 이곳은 원래 신유림이라 하여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곳이다.『삼국유사』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죽으면서 도리천에 묻어줄 것을 유언했는데, 그곳이 낭산 남쪽이라 하였다. 여왕이 죽은 지 30년만에 왕릉아래 사천왕사를 짓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여왕의 예언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불교에서는 수미산을 세상의 중심으로 보고 그 중턱은 사천왕이 지키며 꼭대기에는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이 있어 불국토가 시작되는 곳이라 믿었다. 이 설화를 통해 낭산을 수미산으로 생각했던 신라인들의 불국토사상을 엿볼 수 있다. 절터에는 머리부분이 없어진 귀부 2기와 비신, 그리고 당간지주 1기가 남아있다. 특히, 절 동쪽에 남아있는 귀부는 사실적인 표현수법과 등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으로 신라시대의 뛰어난 작품임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가장 먼저 지은 사천왕사는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 배치로 신라 호국불교의 성격과 신라인들의 불교관·우주관을 잘 보여주는 절이다. 경덕왕 때 향가인‘도솔가’, ‘제망매가’를 지은 고승 월명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문화재청 자료)

 동탑지

 사천왕사지당간지주

 

 목탑지(서) 심초석

 목탑지(서) 주춧돌

 사천왕사지 귀부(동)

  사천왕사지 귀부(서)

 

사천왕사지 귀부(서쪽)

금당지

목탑지 녹유소조상 노출상태

목탑지 녹유소조상 노출상태

 사 천 왕 사 지   출 토  유 물

 문무왕비

 귀부머리

 녹유소조상

 

 

 

 

 

 

 

 

 

 

  

 

 

 

 

 

 

 

 

 

 

 

 

 

 

 

 

 

 

 

 

 

 

 

 

 

 

 

 

인동무늬암막새

 

 

 

 

 연꽃무늬연목와

 

 녹유연꽃무늬부연와

 타원형연꽃무늬수막새

 마루수막새

 

 치미

 

 

 

 

 

수달모양 토우기 붇은 항아리 

 

경주 사천왕사지(사적 제8호) 학술발굴조사 중 남쪽 귀부(龜趺) 주변에서 소형 배수로 위에 설치된 통일신라시대의 석교가 발견됐다. 발견된 석교는 조선시대 건물지의 하층보다 앞서 축조된 배수로(폭 60㎝, 깊이 50㎝ 내외) 위의 동서 양편 2개소에 있다. 모양은 약간의 아치형을 이루고 있는 작은 돌다리다. 중문지에서 남쪽으로 40m 지점의 양편 약 3.6m 거리에 각각 만들어져 있다. 석교는 평교(보다리, 널다리)의 형식으로 귀틀석, 청판석, 엄지기둥으로 구성된 너비 290㎝, 길이 120㎝의 규모로 너비가 큰 모습이다. 다리 바닥을 형성하는 청판석은 3개로 구성돼 있다. 가운데 부분은 약간의 아치형이나 양단은 편평한 모습이다. 귀틀석(길이 130㎝, 너비 30㎝)은 1매의 석재로 가운데 부분이 약간의 아치상을 이루고 있다. 석교의 양끝과 가운데에 있고, 가장자리 귀틀석 남북 양 끝에는 엄지기둥이 위치한 결구홈이 있으며, 부러진 8각의 엄지기둥 1매가 배수로에서 확인됐다.(문화재청 자료) 

1328년전 문무왕 비석 조각 바로가기

http://blog.daum.net/kinhj4801/15960042

경주 사천왕사지에서 사적비 일부 발견 바로가기

http://www.beopbo.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83&no=65107

출처 : 내일의 어제
글쓴이 : 내이름은아무따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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