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지혜/길따라 발길따라

구름에 달가듯이 2014. 9. 24. 10:05

아차산에서 용마산을 거쳐 망우산까지 걷다.
                                  
 

                                                     -고구려 유적의 보고(寶庫) -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아차산((峨嵯山)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한강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287m의 야트막한 산으로 산세가 험하지 않아 인근 시민들이 가벼운 산행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1973년 5월 25일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한눈에 한강을 훤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아차산(峨嵯山, 혹은 阿且山)의 원래 이름은 ‘아단(阿旦)’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선조에 태조 이성계의 이름에‘단’(旦)자가 들어있어, 이 글자와 비슷한 ‘차(且)’로 변경해서 ‘아차’가 되었다는 유래도 있고, 혹은 《삼국사기》에서 보듯‘차’와‘단’이 서로 섞여 쓰이다가 어느 틈엔가 ‘차’로 정착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중랑구 신내동에 돌출된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산(281m, 공동묘지 지역)과 용마봉(龍馬峯, 348m) 등의 광범위한 지역 모두 아차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차산은 야트막한 산이지만, 삼국시대의 전략요충지로 백제와 고구려 간의 세력 다툼의 현장이기도 하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차산성은 백제에게도 고구려에게도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백제는 개로왕 20년(474)에 아차산성에서 고구려 3만여 군과 힘겨운 전투를 벌였다. 백제와 고구려의 치열한 공방이 오고간 끝에 백제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개로왕은 아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고구려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로써 백제는 한성을 포기하고 웅진으로 천도하게 되었다.

  한편 당시 고구려군은 고구려 평원왕(559~589)의 딸 평강공주의 남편인 온달 장군이 이끌고 있었는데, 그는 그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이러한 내용은 <삼국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라 불리는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이 있다. 

          

  특히 아차산 일대에는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보루 20여개가 있는데, 발굴조사 결과 고구려 군사유적으로서 알려졌다. 이것은 곧 한강을 놓고 백제와 고구려 간에 치열하게 공방이 전개되었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이곳에서 발견된  고구려, 통일신라 토기와 기와조각, 철기류와 철제 무기류, 여러 건물터와 우물, 배수구, 연못 등이 이곳에서 발굴됨으로써 2004년에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우리 일행은 아차산 탐방도 할 겸 트레킹에 나섰다. 아차산 등산로는 여러 코스가 있지만 우리는 아차산관리사무소 부근에서 친수계곡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이어 낙타고개를 거쳐 고구려정, 해맞이광장, 아차산 정상을 올라 용마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오르기로 했다.  

          

  아차산역에서  아차산 공원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영화사가 있다. 입구에는  아차산 안내판과 이곳에서 출토한 유적들을 알리는 표지판들이 즐비하다. 키 높은 소나무 숲길 사이로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오르면 길을 잡아 올라가다 아차산 관리사무소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 친수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길목에 잠시 쉬다 갈 수 있는 정자도 있고 약수터도 있다. 아차산을 오르자니 문득 이병기의 시조 <아차산>이 떠오른다.

                          
고개 고개 넘어 호젓은 하다마는
                          풀섭 바위 서리 빨간 딸기 패랭이꽃.
                          가다가 다가도 보며 휘휘한 줄 모르겠다.

                          묵은 기와 쪽이 발끝에 부딪히고,
                          성을 고인 돌은 검은 버섯 돋아나고,
                          성긋이 벌어진 틈엔 다람쥐나 넘나든다.

                          그리운 옛날 자취 물어도 알 이 없도,
                          벌건 메 검은 바위 파란 물 하얀 모래,
                          맑고도 고운 그 모양 눈에 모여 어린다. 


  이 시조는 작가가 국토 순례를 하면서 쓴 작품으로, 그 옛날 백제와 고구려를 떠올리며 세월의 무상함과 아울러 회고(懷古)의 정을 읊은 것이다.  나 역시 그리운 옛날 자취를 물을 이 없지마는 발끝에 부딪히는 기와나 이끼 낀 돌이라도 있으면 그 옛날 우리 조상네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졸졸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웅덩이도 보이고 돌무더기도 남아 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도 당시의 유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는 유구와 토루 등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돌계단을 잠시 따라 올라가니 나지막한 능선이다. 산줄기가 낙타처럼 굽어있다 하여 낙타고개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낙타고개에는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능선은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마치 서울시와 구리시가 경쟁이라도 하듯 갖가지 안내판을 설치해 놓아 어지러울 정도다.   

          
          

  이곳에서 좌우를 둘러보니 올라온 쪽으로는 광진구 일대가 보이고, 그 반대편이 한강줄기 너머 암사동 선사유적지 일대와 그 뒤로 예봉산, 검단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수려하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아차산성으로 이어지는 길이며, 아차산 정상은 북쪽으로 오르는 길이다. 백제 시대에 건축된 아차산성(阿嵯山城, 阿且山城)은 한강 너머 풍납토성과 마주보고 있다. 백제가 광주에 도읍하였을 때 고구려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돌로 쌓은 큰 성이다. 길이는 약 1.1km, 높이는 10m 정도이다.

          
          
          
          

  능선을 따라 아차산 정상 쪽을 향하여 가파른 계단을 잠시 올라가면 좌측 넓은 바위 암반 상층부에 2층으로 된 정자가 우뚝 서있다. 고구려의 기상을 풍기는 듯한 우람한 고구려정이다. 2층에 올라서니 광진구, 성동구 일대와 훤히 보이고 멀리 남산 일대가 자욱한 안개에 가려 희미하다. 나는 고구려정에 올라 시 한 편을 중얼거려 본다. 

                             
          
          
          

                                  
맑은 계곡물을 건너고
                                   가파르고 넓은 바위를 지나서
                                   숨을 고르며 고구려정高句麗亭에 오른다

                                   푸른 소나무 숲 사이로 보이는
                                   진달래꽃은 더욱 붉기만 하고
                                   저 멀리 한강물이
                                   햇살에 빛나며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발을 신고
                                   밥을 빌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러 다니던
                                   바보 온달에게 찾아와서
                                   고구려 명장으로 만든
                                   평강공주의 펄펄 끓는 뜨거운 사랑이여

                                   신라 군사와의 치열한
                                   아차산성阿且山城 전투에서 화살을 맞고 전사한
                                   온달장군의 관棺이 움직이지 않자
                                   영혼을 달래어서 떠나게 했다는
                                   평강공주의 통곡의 바위
  
                                   천오백년 전에 흘린
                                   평강공주의 눈물이 얼마나 진했길래
                                   이 봄에도 핏빛 진달래꽃으로 다시 피어나는가

                                                                   -김윤호의 시 <아차산峨嵯山>


  여기서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를 따라 나무계단과 암반을 거쳐 올라간다. 이곳 암반 사이에는 자생한 진달래가 붉은 꽃을 피우고 우릴 맞이했다. 시인은 진달래 붉은 꽃잎을 평강공주의 못 다한 사랑의 눈물자국으로 본 것이다. 또 바위 사이에 뿌리를 박고 자란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치열한 역사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온 우리네 삶을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쁜 숨을 쉬고 머문 자리는 광진구에서 지정한 해맞이 광장이다. 그리 넓지 않은 암반 위에 일출조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젊은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새맞이광장 포토아일랜드에서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올라가니 아차산 제1보루가 눈앞에 나타난다. 

          
          
          
          
          

  보루(堡壘)는 성곽의 일종이지만, 규모가 작은 일종의 참호 같은 군(軍) 시설로서, 이것은 고구려 남진정책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한 셈이다. 1996년 발견된 아차산 보루는 한강과 임진강 유역 등에 산재한 고구려성 중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이 배치된 건물지와 성벽의 구조가 밝혀졌다. 1보루에서 5, 2, 6, 3보루는 바위와 흙으로 덮인 채 봉긋한 언덕으로 남이 있다. 

          
          
          

  보루가 이어지는 능선에는 암반 사이에서 자란 강인한 소나무들이 즐비하다. 비록 키는 그리 크지 않아도 그 기상이 나무랄 데가 없다. 그 중 품새가 빼어난 것은 명품 소나무라 명명하여 탐방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전망이 좋은 자리에는 조망 포인트를 설치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보루 중에서 제4보루는 구리시에서  건물지를 보존하기 위해 새로이 흙을 쌓고, 둘레 249m의 성벽을 복원했으며, 건물지, 저수지 등 구획을 정해놓고, 등산객에 의한 훼손을 막기 위해 보루 위쪽에 별도의 탐방로를 개설하여 탐방하도록 배려했다.  

                              
          
          
          
          
          

  제4보루에서 용마산 정상까지 가는 길까지는 계단을 이용하여 깊은 계곡을 내려갔다가 능선 위에 마련된 제2헬기장까지 급경사 길을 오르내려야 한다. 아차산 탐방길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다. 숨을 몰아쉬며 2헬기장까지 올라 용마산 정상까지는 왼쪽 능선을 타고 가야 한다. 3헬기장을 거쳐 용마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용마산은 아차산의 최고봉으로, 그 산자락에 시민휴식공간인 용마폭포공원을 품고 있다.

                              
          
          
          
          
          
          
          
          
          
          

  용마산 정상까지 온 우리는 계획을 수정했다. 용마산 정상에서 용마산 팔각정을 거쳐 중곡지구로 하산하지 않고 내킨 김에 망우리공동묘지까지 답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망우리 추모공원에 안장한 애국지자와 문인들의 묘를 찾아 추모할 수 있고, 명실공히 전체 면목동을 거쳐 망우동까지 이어지는 전 능선을 완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마산 정상 삼각점 표지대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고 제2헬기장까지 되돌아 나와 우리는 망우동 추모공원 쪽으로 좌회전하여 계속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여유롭게 용마산 5보루, 제1헬기장을 지나면서 용마산 보루가 표시된 지도와, 망우리의 유래를 기록해 놓은 표지판도 읽었다. 그런데 여유도 잠시 343계단이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을 걸어 내려가야 했다. 얼마나 힘들고 숨이 찼으면 ‘깔딱고개’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계단 가운데  경관조명장소를 마련한 것은 긴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사람들이 잠시 발을 멈추고 머물러 쉴 수 있도록 한 배려이리라. 

          
          
          
          
                              
          
          
          

  계단을 내려서니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한용운의 ‘사랑하는 까닭’이란 글를 새긴 시비가 서있다. 뜬금없이 한적한 곳 덩그렇게 시비 하나를 세운 것도 깔딱고개를 오르는 사람에게는 시를 음미하여 잠시 쉬게 하려는 의도일 뿐더러 사가정공원으로 내려가는 길목의 표지석이 되고 있다. 옆에 세운 표지대를 보니 용마산 정상에서는 1.1㎞를 걸어온 셈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거리는 3㎞ 정도 남은 셈이다. 

          
          

  데크로 된 계단을 올라가서 널찍한 언덕이 망우산 제1보루였다. 계속 길을 따라 이어지는 망루2, 3 보루길은 탐방객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도 소나무는 간 곳이 없고 잡목뿐이다.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터벅터벅 걸다보면 곧 묘역에 이르고 곧 독립운동가 묘역을 알리는 표지판도 보인다. 망우산 일대에는 서울시립장묘사업소 망우묘지가 있다. 
   
          
          
          
          

   1933년에 공동묘지로 지정된 망우묘지에는 아동문학가인 소파 방정환과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인 독립운동가인 오세창, 한용운 그리고 천연두 보급의 선구자인 의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선생 등이 안장되어 있다. 이후로도 시인 박인환, 문일평, 서병호, 서옹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교육가 오긍선 등 여덟 분의 연보비가 추가로 설치되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에 공적을 남긴 이들의 묘소를 돌아보며 이들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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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망(北邙)이래도 금잔지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초루(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죽음읫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이 시는 청록파의 한 분인 박두진의 <묘지송(墓地頌)> 전문이다.  북망산北邙山은 중국 하남성 낙양땅 북쪽에 있는 작은 산 이름이지만 일반적으로 무덤이 많은 곳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묘지라면 음산하고 무섭고 허망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런 통념을 뒤집어 묘지를 밝고 환하게 빛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주검에 대한 찬미가 이 시의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검에 대한 찬미가 어디서 연유하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주검에 대한 찬미라면 자칫 삶의 포기를 뜻할 수도 있어 궁극적으로 염세주의로 이어질 수도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이 시는 어디까지나 삶의 폭 넓은 긍정,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들 묘지가 있는 망우리공원 내의 순환도로 5.2km는 아스콘 포장하여 산책로를 만들었으며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하여 1998년 5월‘사색의 길’로 정하여 불리고 있다. 묘소 참배와 아울러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관찰로를 만들었으며 나무정자, 약수터 등의 시설이 있다.

  마침 이 묘역 일대는 봄을 맞아 노란 개나리꽃으로 뒤덮여 있다. 깔끔하게 단잔됨 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묘들도 많이 있다. 자손들이 조상의 묘에 어느 정도 관심을 두고 있는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준비해간 간식으로 점심을 대신한 시간을 합쳐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에서 5시간 동안 묘역을 참배를 하고 걸은 셈이다. 망우리묘역을 나온 우리는 교문리사거리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2호선 강변역으로 gi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광장사거리방향으로 가다가 삼일주유소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아차산길로 들어선 다음 계속 직진한다. 약 500m 쯤 갔을 때 나오는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200m 정도를 가게 되면 동의초등학교가 보이고, 그 옆길로 아치산 돌비가 서 있다.

  자가용 승용차 운전자는 광장동 4거리에서 워커힐 쪽으로 들어가는 골목으로 진입하여 200m에 이르면 워커힐 호텔과 아차산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주차장은 아차산 생태공원 바로 아래쪽에 있다. 그 곳에서 생태공원과 함께 아차산성, 고구려정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함께 아차산과 망우리독립운동가 묘역을 답사하였던 시솔길 님의 < 아차산에서 용마산을 거쳐 망우산까지 걷다.>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군더덕이인 제가 찍은 사진을 추가하여 올렸습니다. 깔끔한 시솔길님의 원문을 임의로 변경시켜 누를 끼쳐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