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전라권

애기 2006. 6. 25. 18:27

[지리산 성삼재-천왕봉 1박2일 종주산행기]

0 산행일자
  2005.10.8 토-10.9 일(1박2일)  날씨 맑음
0 산 높이
  해발 1,915m
0 산행 종주코스(총길이 35.5킬로미터)
  지리산 성삼재-노고단대피소-화개재(뱀사골대피소)-연하천대피소-벽소령대피소(1박)-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지리산 정상 천왕봉-장터목대피소-백무동계곡 주차장

0 산행소요시간  총19시간(휴식포함)
  1일차(성삼재-벽소령대피소) 8시간3분
  2일차(벽소령대피소-천왕봉-백무동) 10시간50분

0 산행 함께 한 사람
   아내와 함께 둘이서 도란도란
0 시간대별 산행코스
  -1일차
   08:15 성삼재 출발-09:05 노고단대피소-10:15 임걸령샘터-10:55 노루목3거리-11:25 삼도봉-
11:50 화개재(뱀사골대피소)-12:35 토끼봉-13:55 연하천대피소(중식)-16:18 벽소령대피소 도착 1박(석식)

  -2일차
   06:10 벽소령대피소 출발-06:57 선비샘(조식)-08:20 칠선봉-09:25 세석대피소-09:47 촛대봉-11:00 연하봉-
11:18 장터목대피소-12:20 천왕봉 정상 도착(중식)-13:40 장터목대피소 도착 20분간 휴식후 14:00 출발-
망바위-참샘-17:00 백무동계곡 주차장 도착 종주완료

0 배낭속의 1박2일간의 살림살이
  내 것: 각종 잡동사니 포함하여 8.5킬로그램
  아내 것: 옷가지등 포함하여 3킬로그램


[머릿말]


등산 홈피에서 한국인의 기상이 발원 되었다는 백두대간의 시발점인 지리산의 종주산행 경험담을 접하며 10여년전 
중산리에서 천왕봉 정상을 다녀온 이후 정상은 아니지만 10여차례 지리산 경험을 해봤던지라 나도 과연 종주를 
할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도전해보려는 마음이 꿀떡 같았다.

내 체질로서는 단일종주는 불가능하고 천상 하룻밤을 지리산에서 자야하는 1박2일 산행을 결심하고  15일전부터 
인터넷만으로 받는 예약은 그리 쉽지 안했다.
예약시간이 개시되기가 무섭게 단 몇 분만에 끝나버리는 예약을 느린 거북이 인터넷으로 하기는 불가능하여 한번의 
실패를 경험삼아 전송속도가 빠른 집앞 피시방에 가서 10.2일 벽소령대피소 예약을 하였는데 갑작스런 사무실 
출근으로 취소되고 다시 10.8일자 예약을 하여 드디어 종주산행이 성사되었다.(만약에 대비 10.15일 
예약도 해 놓았음)

전문 산악인도 아닌 나로서는 힘이 든다는 종주산행은 어찌보면 건강산행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체력한계를 시험하고 
극복해보려는 자기와의 싸움과 아집이 다분하다고 생각되어 진다.
누가 오르지 안해도 뭐라 나무랄 사람이 없는,자기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기에 힘들고 고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산행한다면 그 누구도 할수 있는 인생의 멋진 추억이 될듯 싶다.


[산행기]

# 1일차(성삼재-노고단-화개재-연하천대피소-벽소령대피소) 16.6킬로미터  8시간3분소요

  이른새벽인 06:20분 집을 출발 남원시내 아파트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다른 승용차편을 이용하여 아내와 난 
산행출발점인 성삼재에 내렸다.
주차장에는 10여대의 승용차들만이 주차되어 있는것으로 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오른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아내와 화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08;15분 발걸음을 옮겼다.
전날 비가 내렸던 탓으로 노고단을 향하는 산길목은 아직 아침 안개가 얕게 또는 짙게 바람따라 드리워지면서 여리게 무르익어가는 산 봉우리를 
감싸돌고 있었다.

50여분만인 09:05분에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사람들과 전날 이곳에서 숙박한 사람들이 
늦은 아침을 먹고 짐을 꾸리는 모습들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얼마 떨어지지 않는 노고단 정상 돌탑(원래 이곳이 노고단 정상은 아님)에 도착하니 차가운 
기운의 짙은 안개가 지리산 일대를 애워싸고 있어 저멀리 보여야 할 지리의 조망이 불가능하였다. 

이곳 노고단에서부터 천왕봉을 향하는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본격적인 종주산행이 시작되었다.
온갖 형태의 돌 너덜길과 흙길을 따라 굽이쳐 오르고 내리고 펼쳐지는 등산로,지리산이 좋아 찾아드는 무수한 
산객들이 밟아 지나치는 길이기에 잘 닦아져 있고 더욱 반질거리고 있었다.

옛날 돼지들이 원추리뿌리를 캐먹기 위해 많이 나타났다는 돼지평전을 지나 10:15분에 지리산에 제일 물맛이 좋고 
가뭄,장마때나 수량이 변함없다는 임걸령 샘터(해발 1,320미터)에 이르러 오염되지 않은 생수를 들이키며  우린 
서서히 지리의 품안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엄걸령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도적의 두목이라고도 하고 유명한 장군의 이름이었다는 설도 있으며 원래 '물두덩이'라고 
불렀으며 화랑들의 연마도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한단다.

샘물을 마시고 잠시 쉴 틈도 없이 안개기운에 찬기가 감돌아 곧장 일어나 발걸음을 내 딛었다.
10:55분 반야봉과 화개재를 향하는 노루목3거리(해발 1,490미터)에 도착하니 고지대여서 단풍이 하나둘씩 짙게 
물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할수 있었다.
이곳 3거리에서 반야봉을 갔다오는데는 한시간여 거리로 배낭을 이곳에 놔두고 다녀오기도 하는 곳이기도 하다.

6년전 남원에서 근무할 당시에 직원들과 성삼재에서 이곳을 거쳐 반야봉을 경유 묘향대(암자)를 지나 사진작가들의 
모델이 되어주는 실비단 이끼폭포를 구경하고 뱀사골계곡으로 하산한 기억이 떠 올랐다.

노루목이란 뜻은 노루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라는 뜻도 있지만 지형지세가 노루모양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말들 한다.
노루목3거리에서 숙박을 해야할 벽소령대피소까지는 아직 멀었고 또한 천왕봉까지는 21킬로미터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산꾼들 눈에 보여주며 우뚝 서 있다.

잠시 간식을 먹고 우린 열심히 또 걷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좀 쌀쌀한 탓인지 수건을 꺼내어 땀을 훔쳐야 할정도의 더위는 느끼지 않아 다행이었다.
11:25분 경상남도,전라북도,전라남도의 경계지점인 삼도봉(해발 1,510미터)에 도착하였다.
봉우리에는 3개도를 상징하는 놋쇠로 만든 삼각뿔을 박아 놓았는데 오르는 사람들마다 마르고 닳도록 만져서 번쩍번쩍 햇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우리 또한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안아보기까지 하였다.

삼도봉을 지나 11:50분에 뱀사골대피소가 바로 아래 있는 화개재(해발 1,315미터)에 이르렀다.
마침 국립공원 소속의 묵직한 헬리콥터 한대가 이곳 헬기장에 태풍을 일으키며 앉아 대피소 교대근무자 2명을 내려주곤 
저 멀리 사라졌다.
 헬기타고 출근하는 팔자좋은 사람도 있나보다 속으로 웃음지었다.

화개재에서 200여미터 아래에는 뱀사골대피소가 있으며 그쪽 방향으로 뱀사골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 있었다.
화개재는  교통도로가 없었던 옛날 경남 화개장터에서 등짐을 메고 이곳을 넘어 남원쪽으로 넘나들었던 지리산 재중에서 
제일 낮은 곳이라고 한다.
40여분만에 토끼봉(해발 1,534미터)에 도착하니 토끼한마리 구경 못하고 검은 까마귀 울음소리만 고요한 지리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넘었지만 한시간 남짓 더 가야할 연하천대피소에서 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등산로 주변 숲속에 짙은 코발트색  가을하늘 아래 펼쳐지는 오색 단풍의 물결과 산 봉우리마다 물 들어가는 단풍의 
형상들은 막 그려낸 한폭의 가을 수채화도 같았다.

13:55분에 연하천대피소에 들르니 이미 도착한 산객들이 저마다 담아온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모습들이 모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우리도 3천원을 주고 컵라면을 하나 사 중식용으로 사온 깨순이김밥 3줄과 함께 고픈 배를 채우고 좀더 쉬려하니 
국립공원 직원 한명이 나타나 산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 대소변통을 헬기로 옮기는 작업을 할 예정으로 냄새가 
날터이니 이해하라기에 서둘러 30분도 못쉬고 3.6킬로미터 떨어진 오늘의 숙박장소인 벽소령대피소를 향했다.

시간은 벌써 성삼재를 출발한지 어언 7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기에 난 아직 컨디션이 괜찮은데 아내의 
몸 상태를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며칠전 쿳션좋은 등산화 깔창을 갈았고 아침에 일어나 안티프라민으로 발맛사지를 해준 탓인지 그리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해 보였다.

또 오르고 내리고.. 산길따라 연거푸 이어지는 너덜길을 헤치고 지나 16:18분 이윽고 하룻밤을 묵어야 할 
벽소령대피소(해발 1,320미터)에 당도하였다.
해는 아직 서산에 기울기는 좀 이른 시간인 성삼재에서 출발한지 딱 8시간3분만이다.
무릎과 발바닥이 얼덜덜 거림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닌듯 싶다.

대피소 입구에 서있는 나무로 만든 빨간 우체통이 아주 인상적으로 눈에 띄었다.
이 높은 곳에 어느 우편배달부가 이곳까지 올라와 편지를 넣고 갈리 없겠지만 영화의 한 장면속에서나 나올법한 
상징적인 우체통이기에 더욱 우리를 감동시켜주고 있었다.

50여명이 이미 대피소에 도착하여 밥을 해먹고 있는 사람 그리고 피곤함을 잊기위해 잠시 나무밴취에 누워 쉬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처럼 한두명씩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안내방송에 따라 6시에 예약자를 먼저 입실시키고 침상이 남아있을때에 한하여 비예약자를 입실시키겠다고 한다.

이곳의 샘터는 대피소 아래쪽 60미터 떨어진 곳에 큰물통을 놓은후 수도꼭지를 메달아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수통에 물을 
담아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대충 얼굴과 발을 씻으니 그래도 좀 나은것 같았지만 다시 대피소로 올라오는 돌계단은 
왜 그리도 멀게만 느껴지는지..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려니 이곳에서는 팔지 않고 일반 라면만 판다하여 햇반과 김치통조림을 5천원에 구입하여 
주먹밥으로 싸온 찰밥과 복분자 한컵씩을 반주로 삼아 아내와 나눠 마시며 오늘의 무사산행과 내일의 성공산행을 다짐하며 
힘찬 건배를 하였다.

저녁6시가 되자 예약자만 대피소 중앙홀로 모이게 하더니 40대초반의 강한 경상도사투리 말씨의 산장지기로 부터 
10여분에 걸쳐 투숙자 주의사항을 들었는데 마치 군대에서 훈련병들을 앉혀놓고 일장연설하는 조교와 같아 보였다.

대피소 정원은 120명으로 목조건물이어서 불조심,금연,실내에서 음식 해먹으면 안되고,매점운영시간은 몇시고,밤9시면 
소등하고,샘터에서 세제나 치약질하면 안되고 물을 따로 떠서 숲속에 들어가 대충 씻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과태료 
50만원에 처하고,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가슴곰 만나면 먹을것 주지말고 양팔을 크게 벌리고 건들지 말아라,벌한테 쏘이면 
큰일나니 옅은화장만 하고 향수 뿌리지 마라,노란색 옷을 입지마라 등등..
에고 머리 아파..머리나쁜 사람은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당부사항이 수도 없다.

* 사실 하산길에 아내와 난 산장지기로부터 들었던 곰이 나타났을때 주의사항을 함께 들었는데 각기 달랐다.
난 곰이 나타났을때 양팔을 번쩍 드는 이유는 상대보다 몸집을 크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으로 들었는데 아내는 '이곳은  
내 영역이니 덤비지 마라'는 뜻으로 손을 올리라는 것이라기에 "미련한 곰탱이"가 손을 들었다고 영역을 어떻게  알아
차리겠느냐며  영역표시를 하려면 차라리 TV'동물의 왕국'에서 보았듯이 뒷발 들고 나뭇가지등에 소변을 깔겨대는 
것이라면서 우린 한바탕 웃음으로 잠시 고됨을 잊고 차후에 다시 확인 해보자며 언쟁 상황을 끝냈다*


대피소내는 남여구분의 마루판자로 침상이 만들어져 있으며 침상 머릿맡에는 침상번호가 붙여있어 배정받은 번호에서 
잠을 자야 했다.
사용료는 1인당 7천원이고 모포한장당 대여료는 천원이었는데 우린 추울까싶어 6장을 대여받았다.
밤8시가 못되었는데도  피곤한 탓인지 벌써부터 코를 고는 산객들도 있었다.
나 또한 잠을 청해보지만 잠자리가 바뀌면 잠못이루는 나쁜 이내 습성과 여기저기 높낮음으로 코를 고는 소리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영 잠을 
잘수 없었다.

새벽 3시쯤 화장실에 가기위해 밖을 나오니 차디찬 공기가 몸을 움추리게 하였다.
하늘을 보니 맑게 개인 가을하늘에 별들의 향연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었다.
 내 머리 바로위에서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듯,수북히 박혀있는 영롱한 별들이 와르르 한꺼번에  품안에 들어올 채비라도 
하려는듯 너무 가깝게 보이는것은 아마 스모그가 없는 공기맑은 화창함때문이리라.
어렸을적 한 여름밤 모깃불 지펴놓고 어머니의 몰랑몰랑한 허벅지살에  드러누워 촘촘히  새겨진 별들을 세어 보았던 옛 추억이 문득 떠 올랐다.
지리산의 10대 아름다운 풍경중에 벽소령에서의 둥근달 밤이나 별밤이 속해있다는 것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할 자 
아무도 없을것이다.
 
벽소령에서의 밤 공기는 너무 찬데도 대피소 처마밑 마루판자위에서는 하늘을 이불삼아 비닐속에 1인용 침낭을 펼치고  
잠을 자고 있는 두 사람을 볼수 있었다.
그나마 그들은 스트레오로 번갈아가며 코를 걸죽하게 골면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일명 '비박'이라고 하는 것이로구나.
다음날 세석대피소를 가는중에 서리도 내린것을 보았는데 말이다. 대단했다.
비닐 안에는 온통 김으로 서려있었다.

이렇게 지리산의 품안에 안긴 우리는 벽소령에서 하룻밤을 맞이 하였다.


# 2일차(벽소령대피소-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왕봉-백무동)18.9킬로미터 10시간50분소요
 

'05.9.9.06:10분 설친 잠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꾸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천왕봉을 향하여 2일차  발걸음을 시작하였다.

랜턴을 켜고 가야 될거라 생각하고 밖에 나왔는데 이미 날은  환하게 밝아 등산로를 걷는데는 지장이 없었으며 자켓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새벽공기는 차가웠다.

 

동쪽하늘은 금새라도 해가 솟아 오를것 같은 선홍빛 물결을 이루고 있어 일출을 보기 위해 조급히 산등성이를 향하였지만 결국

06:57분 선비샘(해발 1,491미터)에 도착해서야 숲속에서 오르고 있는 해만 바라보아야 했다.

선비샘의 유래는 옛날 천민으로 태어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고 살았던 사람이 선비대접 한번 받아보는것이 소원

이었는데 결국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 샘터위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후 등산객들이 물을 마실때마다

무릎을 꿇고 절을 하게 되어 결국 죽어서나마 대접을 받는다고 하는데 지금도 샘터위에는 봉분없는 무덤의 흔적이 있다.

 

비록 절은 안했지만 그 유래를 생각하며 이곳에서 쵸코파이 몇개로 조식을 떼우고 시원한 샘물로 목을 축였다.

아무리 먹어대도 배낭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그만큼 어제에 이어 산을 오르는데는 더욱 힘이 드는가 보다.

 

선비샘 저 아래에서 40대초반의 아주머니 한사람이 자기 몸짓보다 크게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힘겹게 올라오더니 이내

짐을 벗고서 샘터에 물을 받아 버럭 들여마시기에 어디서 오는 길이냐 물으니 어젯밤 세석대피소에서 1박하고 오늘 길이란다.

산이좋아 홀로 산행을 즐긴다는 말에 대단한 열정파라는 생각 하였다.

 

08:20분 칠선봉에 올라 아침 눈부신 햇살을 머금고 발산하는 오색의 단풍들이 빼곡히 박혀있는 지리능선의 풍광을 바라 보았다. 

온갖 세상이 우리만을 위하여 존해하는것 같았으며 계곡을 따라  피어오르는 운해는  지리의 수줍음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모습과도 같았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6.3밀로미터 구간으로 전날에 비하여 너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 힘이 들었다.

09:25분에 세석대피소(해발 1,560미터)에 도착하고 보니 남원 근무당시 일행 3명과 백무동에서 죽음의 계곡이라 일컫는 힘든

한신계곡을 거쳐 이곳 세석대피소를 오르며 나 혼자만 발병나 결국 천왕봉을 오르지 못하고 장터목대피소에 머물렀다 하산해야

했던 슬픈기억이 떠올랐다.

 

봄철이면 이곳 세석대피소가 있는 세석평전은 산철쭉으로 장관을 이루기에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세석평전의 철쭉이 아름다운데는 아이를 갖지 못한 한 여인의 슬픈 넋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다.

 

우린 대피소를 들르지 않고 곧장 세석평전 정상에 우뚝 선 촛대봉을 향했다.

09:47분 촛대봉(해발 1,703미터)에 올라보니 세찬 바람을 따라 운무가 잽싸게 몰아치는데 한기를 느껴 쉴 틈도 없이 한참을

내려온후 다시 다음 봉우리인 연하봉으로 갔다.

11:00 연하봉(해발 1,736미터)을 지나 산 기슭을 따라 내려오니 장터목대피소가 눈에 보였다.

 

이제 천왕봉까지는 얼마 안 남았다.시간상으로 한시간여의 거리기에..

11:18분 장터목 대피소(해발 1,750미터)에 도착하니 운무가 주변을  온통 가리고 있었으며 천왕봉과는 제일 가까운 곳이기에

백무동,중산리,뱀사골,성삼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로 다른 대피소에 비하여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장터목에서는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사천주민과 북쪽의 마천주민들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한 장터가 섰던 곳으로 지리산에 기대하고 삶을 영위했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생의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

 

천왕봉을 오른후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길은 다시 이곳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내의 옷배낭을 대피소에 잠시

놔두고 전열을 정비한후 천왕봉을 향했다.

천왕봉에 오르는 구간은 상당히 가파른 돌계단이 많아 등산객들이 힘들어 하는 코스다.

제석봉(해발 1,808미터)에 오르니 큰 나무들은 온데간데 없고 잡풀만 있으며 앙상하게 뼈만 남은 고사목들이 눈에 보이는데

50여년전 도벌꾼들이 흔적을 없애기 위해 산불을 놓아 이렇게 황폐해졌다는 안내판이 있어 등산객들로 하여금 산불조심의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었다.

 

제석봉은 산신의 제단인 제석단이 있는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다시 내리막길 돌계단과 철계단을 내려와 천왕봉을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지났다.

통천문은 천연석문으로 겨우 한사람 정도 지나갈수 있을 정도로 좁고 오르기 힘들어 아파트 계단처럼 철계단을 세워놓아

등산객들의 편리를 도모해주고 있었다.

옛부터 부정한 사람은 출입을 못하고 신선들도 이 문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에 오르지 못했다는 전설이 담겨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통천문을 지나 바로 앞 기암 봉우리가 보여 열심히 올라 천왕봉 정상인가 싶더니 또 하나의 봉우리가 운무에 희미하게 가린채

눈 앞에 펼쳐 보였다.

역시 천왕봉은 쉽게 오를수 없는 하늘로 오르는 길목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한걸음 한걸음,조심조심 정상을 향했다.

 

12:20분 드디어 한국인의 기상이 살아 숨쉬며 발원된곳 지리산 천왕봉(해발 1.915미터) 정상에 우뚝 섰다.

가슴이 뭉클했다. 지리의 품안에 안긴후 제일 높은 곳에 와 있다.

드넓게 펼쳐진 산 능선 능선에서 불타오르는 단풍 물결과 잠깐씩 천왕봉을 휘돌며 스쳐가는 운무는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수 없었다.

천왕봉 표지석을  중심삼아 기념사진을 몇장 찍고 우린 찬바람이 적게 부는 아랫쪽 기슭에 앉아 주먹밥으로 중식을

해결하고 하산길에 나섰다.

 

13:40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는 동안 내내 몸도 지칠대로 지쳐서인지 왼쪽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왔다.

연신 에어파스를 뿌려대고 무릎보호대로 감싸보지만 걷는데는 마찬가지..

14:00분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백무동까지는 5.8킬로미터 구간으로 하산길이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것, 발걸음은 점점

늦어지고 몇 번을 쉬었을까 .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하산객은 많았지만 우리가 따라잡은 하산객은 아무도 없었다.

망바위와 참샘을 지나 17:00분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하니 해는 어느덧 지리산 능선을 넘어 그림자만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내게는 버거운 1박2일간의 지리산 종주산행

영원히 기억에 남을 멋진 산행이었다.

 

나는 또 어느산을 오를것인가 기웃거리고 있다.

 

 

 

 

 

 

 

 

 

 

 

 

 

 

 

 

 

 

 

 

 

 

 

 

 

 

 

 

 

 

 

 

 

Scarborough Fair / Sarah Bright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