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맨발나그네 2009. 8. 3. 22:24


맨발나그네 되어 칠선계곡과의 만남

● 산행일시 : 2009년 8월 2일 (日)               

● 누 구 랑 : 수원 산정산악회에 끼어서

● 산행코스 : 추성동주차장-두지동-옛 칠선동마을터-선녀탕-옥녀탕-비선담-역순으로 회귀(약4시간)

● 사진은 ? : 따스한마음, 산죽, 소리새, 산사람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 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 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가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시라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오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님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이고 노래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다. 첫구절의 천왕봉 일출이야 지금으로부터 23년전 1986년 가을 삼대째 내리 적선하지 않았는데도 볼 수있는 영광을 누렸고, 그날 직장산악회(금호전기)와 여직원회 회원등 50여명의 대부대를 이끌고 칠선계곡으로 하산하는 바람에 칠선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을 눈에 담기는 고사하고 오르지 사고 없이 하산하여 그 다음날 무사히 회사 출근을 하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몽둥이 휘두르며 내려왔던 기억 밖에 남은게 없다. 그러던 차에 모두들 휴가라고 도심을 텅 비워 마음이 싱숭생숭했었는데 따듯한마음님 전화 한통화에 녹아 내린다. 칠선계곡을 가잔다. 물론 OK 사인을 보내놓고 매주 개나리 봇짐 둘러메고 집을 나서기가 조금은 미안하여 아이들한테 한마디 던진다. 같이 가자고... 물론 대답은 NO. 그래 이 애비 산바람이 단단히 난 맨발나그네여서 어쩔 수 없구나, 다녀오마 하고는 나선 길이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의 노랫말 속에서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가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라고 외쳤지만 어디 죄없기가 쉬운 일인가? 그래서 모든 죄는 점심 먹을 때 반야탕을 먹기 전 지리산 지신께 고시레 한잔으로 사해 받기로 하고 칠선계곡 선녀탕과 옥녀탕의 선녀와 옥녀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내 그동안 여러 여인(山)을 안아 보았지만 오늘은 하늘 나라에서 내려온 특별한 여인들을 만나는 그런 날이다. 그곳에 선녀도 있고 옥녀도 있다면 난 선녀를 선택해야 하나 옥녀를 선택해야 하나 하는 쓰잘때기 없는 망상에 그저 즐거울 뿐이다. 아니 옥황상제가 내 나이 많다고 늙고 추한 선녀나 옥녀만 목욕을 내려 보내면 그들이 벗어놓은 옷을 감추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고! 에고! 걱정이 지나치면 화가 된다고 하던데....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이라는 칠선계곡은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함안군 마천면 의탄까지 총 18km이며 7개의 폭포와 33개소의 소가 펼쳐지는 대자연의 파노라마라고 한다. 하지만 이 구간이 10여년간의 휴식년제가 작년에서야 풀렸고, 그나마도 추성동-비선담 구간은 자유롭게 산행할 수 있지만, 비선담통제소부터 천왕봉까지는 정해진 기간에 여러 까다로운 수속과 절차를 밟아야 한다니 그냥 그옛날 20여년전 어렵게 칠선계곡을 걸어 본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보다. 어째거나 2달여전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랬던 칠선계곡과의 만남이어서 약간은 흥분된다.

          

 

                

           


  의탄교에서 추성동 주차장까지는 길이 좁은데 여름 피서철을 맞이하여 차량으로 뒤덮여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어렵게 추성동주차장에 도착하여 행장을 가다듬고 출발이다. 칠선계곡 탐방에서 놓치기 십상이라는 용소를 우리는 뻔히 안내판을 보고도 나중에 하산할 때 시간이 되면 들르자며 그냥 지나친다. 결국은 시간에 쫒겨 들리지 못했지만 용소는 산신제를 지낼 때 산돼지를 집어 넣는 곳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조금 아쉽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느긋하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사색하며 걷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건만 그게 안된다. 시작부터 급경사로 모두들 헉헉댄다. 따가운 여름 햇살에 제법 난이도 있는 경사길이기 때문이다. 고개길를 올라 첫 쉼을 갖는다. 약간의 과일도 나누어 먹으며...

 

 

           

 

            


  다시 저 멀리 계곡을 바라보며 제법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정상교를 건너 1km 남짓 오르면 두지동이다. 동네의 지형이 쌀 뒤주를 닮았다고 해서 그 전라도 사투리인 두지동이라 불렸다는 설이 대세이긴 한데, 일부에서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이 이웃 국골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 식량창고로 사용하였기에 붙이진 이름이라는 이설도 있다고 한다. 어째거나 오래전 화전민들이 기거했던 산골마을이었다는데 지금은 담배건조장과 몇채의 집이 보일 뿐이다. 호두나무에는 탐스럽게 호도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담배건조장은 담쟁이 덩굴로 뒤덮여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그곳을 배경으로 카페(?)가 있다. 우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동동주 한잔씩을 걸치고 다시 선녀와 옥녀와의 조우를 위해 출발한다.

 

 

         


  두지교을 건너면 칠선계곡을 입산금지 할 때 대나무로 엮어 세워둔 출입문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대나무 숲을 지나자 꽃향기가 우리의 코를 간지럽힌다. 옆을 보니 하얗고 작은 꽃들이 반기는데 무슨 꽃인지 모르겠다. 역시 야생화나 들풀등에 박사이신 노루귀님이 ‘사위질빵’이라 알려준다. ‘사위질빵’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역시 박사님이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을 얻은 내력은 조금만 힘을 주어 잡아당기면 쉽게 끊어져 버리는 사위질빵의 줄기의 특성에 있단다. 오랬만에 처가에 온 사위가 뙤약볕에서 일하는 모습이 안스러운데 장모가 그렇다고 다들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사위만 쉬라고 하기도 그렇고 하여 꾀를 부려, 사위가 질 지게의 멜빵을 이것으로 만들어 주었단다. 사위질빵의 줄기가 약해서 조금만 무거운 짐을 지면 지게의 멜빵이 끊어져 버렸고, 이를 본 다른 일꾼들은 오래간만에 온 사위에게 무거운 짐만 지게 한다며 천천히 쉬어가며 하라고 가벼운 짐만 지어 주었단다. 이래서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이야기가 있는 건가 보다. 산과 들에 흔히 자란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아니 그동안 보아왔을테지만, 관심있게 보지 않았을 게다.

 

 

               

  

                 

            

 

   한참을 계곡이 안보이는 산길을 걷다보면 암반과 소가 어우러진 곳에 쇠다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게 출렁다리이리라. 추성동을 출발한지 오래만에 만나는 계곡이다. 계곡의 암반과 소들이 어우러져 멋을 맘껏 뽐내지만 그저 이름없는 암반이고 소이다. 이곳 칠선계곡에서는 명암을 못 내미는 그런 암반과 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더 경사진 도로를 어렵게 오르다 보면 마을터를 만나게 되는데 옛 칠선동마을터란다. 어스름히 집터 자국이 보이고, 집에서 키웠음직한 나무들이 아직도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그 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처럼 깊은 산골 오지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생명줄을 이어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려오는길 이마을 사람들은 선녀의 옷을 감추어 그들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들이 살던 그런 마을은 아니었을까 하는 괜한 상상을 해본다. 반야탕이 지나치면 꼭 이런 망상을 한다니까... ㅎㅎㅎ

 

          

 

          

 

           

           

 

  옛 칠선동마을터부터의 길은 험난한 산길이 기다린다. 추성동 기점 3.4km인 선녀탕까지 계속되는 길이다. 추성동을 출발하여 선녀탕에 이르는 길은 거의 계곡과 동떨어져 있다. 계곡이 깊고 험난하여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저 먼 발치에서 계곡을 바라보며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이다. 그래도 계곡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시원하여 서늘함을 느끼기에 그리 더운줄 모르고 오른다. 그렇게 제법 난코스를 헤치고 만난 선녀탕이다. 일곱 선녀가 이 곳에서 목욕하는 것을 본 곰이 선녀들이 하늘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옷을 훔쳐 바위 뒤에 숨겼다. 목욕을 마친 선녀들이 옷을 찿아 헤맬때 사향노루가 자기 뿔에 걸린 선녀들의 옷을 가져다 주었고, 선녀들은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미련한 곰이 바위뒤에 누워있던 노루의 뿔을 나뭇가지로 잘못 알고 선녀들의 옷을 숨겼던 것이다. 그 후 선녀들은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 살게하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 쫓아 버렸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는 선녀탕이 지금은 이런저런 홍수와 태풍피해로 모래와 돌로 메워져 그 옛날의 호화스러운 모습은 조금 퇴색되었지만, 아직도 선녀들의 목욕탕으로 손색이 없다.


 

 

 

 

  

 

 

 선녀탕에서 조금 더 위쪽으로 오르면 제법 큰 소와 암반을 만나게 되는데 이름하여 옥녀탕이다. 하늘을 뒤덮은 울창한 숲, 여기 저기 펼쳐진 작은 소들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받으며, 독주를 하는 그녀 옥녀탕이야 말로 장관이다. 속살이 모두 보일정도로 맑은옥류와 어우러진 대자연의 멋을 맘껏 뽐내는 것이 비경의 극치를 이룬다. 소리새님의 카메라에 잡힌 국화꽃향기님은 칠선계곡에서 사이즈가 맞는 나풀나풀한 옷이 없었거나 비상하다 떨어져서 속세에 머물고 있는게 본인일거란다.

  내 올해만 해도 설악의 십이선녀탕계곡을 걸어 보았고, 설악의 천불동 계곡의 비선대까지 걸어보았고, 지난주에는 아침가리골 계곡을 걸어 보았지만 이곳 선녀탕의 풍광 또한 한폭의 수채화요 동양화이다. 빼어난 계곡미를 감상하며, 지리산의 지기를 받으며, 지리산이 내뿜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맘껏 호흡하며, 맨발나그네가 되어 걷는 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다.

  떠나기전 선녀와 옥녀 사이에 우왕좌왕하던 내 마음을 그냥 한방에 날려버린다. 누가 뭐래도 난 옥녀와 데이트를 선택하련다.....ㅎㅎㅎ

 

         

 

        

         

        

 

  아쉽지만 조금 후 하산길에 다시 한번 만날 것을 약속하고 비선담으로 향한다. 조심스럽게 올라 도착한 비선담. 칠선계곡 전 구간을 걷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옥녀탕~비선담 구간은 계곡등반의 묘미를 한껏 우리에게 안겨준다. 흔들다리 비선교를 지나 목욕을 끝낸 선녀와 옥녀들이 하늘로 올랐다는 비선담이 펼쳐진다. 그 규모가 옥녀탕과 비슷하고 옥녀탕에 버금가는 풍광을 자랑한다.  물속에 들어가 좋아라 하던 초롱이님이 산죽님의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한다. 글쎄 하늘로 오르기전 선녀들의 모습이 저러 했을까?

 

 

          


  그곳 비선담에 점심을 먹기위해 자리를 편다. 오늘의 주메뉴는 제니님표 골뱅이 무침이다. 삶은 국수에서 각종 야채까지 꼼꼼하게 챙겨 오셔서 현장에서 무치는 골뱅이 무침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이다. 변산님이 준비한 참소라는 산행길에 좀 과하다 싶게 나를 반야탕(般若湯: 범어에서 반야는 Prajna로 지혜라는 뜻을 가진다, 그래서 반야탕, 즉 술은 '지혜의 물'인 셈이다)의 세계로 이끈다. 역시 산행후 좋은 산우들과의 맛있는 점심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래서 점점 같이하는 산행 바이러스에 걸려 내 조강지처 광교와 호젓하게 둘이하는 만남을 멀리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제 이곳부터는 금단의 땅이다. 이곳부터 천왕봉까지는 예약이 필수이고, 더군다나 정해진 날자에 안내인까지 함께하며 걸어야 한다니 다음을 기약 할 수 밖에 없다.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올라 올 때의 역순으로 추성동으로 향한다.

 

 

          

 

          

 

  내려오는 길 고개마루에서 저 멀리 2달여전 지리산둘레길걷기 때 들렸던 서암정사를 그냥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아주 큰 바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3주후 다시 지리산 뱀사골 계곡을 만나기 위해 올 것을 약속하며 귀경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