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맨발나그네 2010. 8. 2. 22:18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 건달산 ( )http://blog.daum.net/yooyh54/265)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2)> 칠보산 (   http://blog.daum.net/yooyh54/266)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3)> 동탄무봉산 (http://blog.daum.net/yooyh54/267)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4)> 삼봉산-지내산-태행산 ( http://blog.daum.net/yooyh54/280)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5)> 서봉지맥(태봉산-서봉산-천석산-주산봉)( )http://blog.daum.net/yooyh54/286)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6)> 남양무봉산(http://blog.daum.net/yooyh54/287)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7)> 유봉산-초록산(http://blog.daum.net/yooyh54/291)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8)> 서신 구봉산과 당성(http://blog.daum.net/yooyh54/306)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9)> 송산면 공룡알화석 산지 (http://blog.daum.net/yooyh54/307)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0)> 태안읍 융건능 (http://blog.daum.net/yooyh54/377)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1)> 철마산-서학산 (http://blog.daum.net/yooyh54/403)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2)> 오두산-천덕산-등고산 (http://blog.daum.net/yooyh54/412)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3)> 화성우리꽃식물원 (http://blog.daum.net/yooyh54/413)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4)> 왕자봉-남이장군묘-해망산(http://blog.daum.net/yooyh54/416)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5)> 잃어버린 오래전의 나를 찾은 건달산(http://blog.daum.net/yooyh54/452)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6)> 융건백설 (http://blog.daum.net/yooyh54/455)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7)> 태봉산-상방산-서봉산-명봉산 (http://blog.daum.net/yooyh54/467)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8)> 봉화산-함경산 ( http://blog.daum.net/yooyh54/468)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19)> 이봉산-승학산-와룡산 (http://blog.daum.net/yooyh54/470)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20)> 응봉산-천등산 (http://blog.daum.net/yooyh54/474)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21)> 쌍봉산~남산~꽃당산~신술산 (http://blog.daum.net/yooyh54/515)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22)> 청명산~해운산 (http://blog.daum.net/yooyh54/530)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8)>

타임머신을 타고 1500여년전으로 가 본 구봉산

 

● 산 행 지 : 화성시 서신면 구봉산(九峰山, 165.7m)

● 산행일시 : 2010년 8월 1일 (日)              

● 누 구 랑 : 나홀로

● 산행코스 : 주차장-우물터-서문지-망해루-주차장 

 

덥다.

이렇게 더운날이면 작년에 들렸던 아침가리골 생각이 간절하다.

아니 어디 오지의 계곡물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안내산악회 카페를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오가며 도로가 막혀 고생할 생각을 하니 그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오래간만에 화성의 산하와 사랑나누기에 나서 본다.

이열치열이라 아니 했던가?

 

 

 

 

구봉산은 남양반도 중앙부에서 서남쪽의 바다 방향으로 비스듬하고 길게 늘어서 있는데, 구봉산이란 산 이름도 길게 늘어선 산줄기의 봉우리가 9개인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해발 고도로 보면 그다지 높지 않지만 서해안 일대의 풍광이 잘 관찰될 뿐 아니라, 삼국시대의 당성(唐城)을 품고 있어 오래전 부터 한번 들려봐야 겠다고 생각해 오던 산이다.

구봉산은 폭염이 기승을 부려서 인지 한가하다.

구봉산 입구에는 당성을 관리하는 관리인 혼자 외롭게 지키고 있을 뿐이다.

주변에 대부도, 제부도, 궁평리 등이 있어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건만, 역사가 쉼쉬고 있는 이런 곳은 인기가 없나 보다.

오르는 길은 그리 힘들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넓고 경사도 급하지 않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복원된 성벽 위를 맨발나그네되어 걷고 있자니 1500여년전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삼국(백제,고구려, 신라)을 생각하게 한다.

당성의 첫 지배자는 백제였으며, 당시의 명칭은 당항성(黨項城)이었다 한다.

그러다 서기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진하여 이 일대는 고구려 영토가 되었으며, 이때 고구려가 명칭을 당항성에서 당성으로 바꾸었다.

555년에는 신라가 고구려를 몰아내고 당성의 주인이 되었으나, 삼국 간의 승부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백제의 의자왕은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이 성을 뺏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신라는 당성을 사수하기 위해 결사적이었고, 당성은 공략하기 쉽지 않은 천혜의 요새였다.

1500여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그들이 지르는 함성이 들리는듯 하다.

 신라는 5세기까지 삼국항쟁에 가장 뒤쳐진 국가였지만, 이때의 방어로 당성과 대당교통로를 확보했고, 이것이 삼국의 운명을 바꾸어 신라가 패권을 차지한 요인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후 당성은 6세기부터 신라가 멸망하는 10세기까지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이자 무역항으로 기능했다고 한다.

 

 

 

 

그렇게 1500여년전으로 돌아가 걷고 있자니 이내 추정 망해루지(望海樓址)에 도착이다.

허목의 문집에 <남양부 망해루기>가 실려 있으며, 당성에 대한 발굴 조사 때 망해루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있었다 한다.

그곳에서 또 한참을 머무른다.

바다바람 솔솔 불어와 이 맨발나그네의 땀방울을 식혀준다.

안내소에서 얻어온 당성(2009년, 경기문화재단)이란 자료집도 이리 저리 넘겨보며...

비록 <당성>이란 자료집에선 깊이 있게 다루진 않았지만, 원효와 의상이 당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 잠을 청했던 곳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평택시에서는 수도사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무왕(文武王) 1년(661)에 의상과 원효는 도반으로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위해 도착한 곳은 서해안 당주계(신라시대 지명에는 당항성, 당성)이며,그들은 배를 기다리다가 산중에 노숙하였다.

의상과 원효는 밤중에 갈증을 느껴 가까이 고인 물을 달게 마셨다.

원효는 아침에 일어나 어제 저녁에 마신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깨달아 "심생즉종종법생 심멸즉종종법멸"(心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이라 간파하였다.

즉" 마음이 있어야 온갖 사물과 형상을 인식하게 되고 마음이 없으면 이러한 것들도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오직 내 마음 이외 무슨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깨달음을 얻고 당나라로 가지 않고 신라로 되돌아와 무애행으로 불교 포교에 전념하였다.

물론 그 바람에 요석공주라는 미인인 부인도 얻었으며, 천재였던 아들 설총도 얻게 되었겠지만...

그런가하면 <당성>자료집에는 신라의 문호 최치원(879~?)에 대한 이야기와 시도 한 수 적혀있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한 수재였지만, 고국에 돌아와 봉사하려 했으나 현실은 따돌림을 당했던 모양이다.

그는 여생을 전국을 유랑하며 살았는데, 그 유랑시기의 어느날 당성에 왔다가 알고 지내던 악관(樂官)을 만난다.

그도 최치원처럼 따돌림을 당하다 당나라로 돌아가던 중이었고, 둘은 술자리를 벌였고, 악공이 두 어 곡을 연주하더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슬피 울기 시작하였다.

최치원은 그의 재주와 이런 인재가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버림 받는 현실이 안타까워 하는 심정을 담은 시를 지어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인생이란 성했다가도 쇠퇴하니

덧없는 인생이 참으로 서럽구나

글쎄, 저 천상의 곡을

뉘 알았으리, 이 해변에 와서 볼 줄이야

물가 궁전(안압지?)에서 꽃을 보며

서늘한 난간에서 달을 보며 불기도 했었지

선왕을 이제 뵈올 수 없으니

이 몸도 그대 더불어 눈물 줄줄 흘리네

                                   (동문선권9, 오언율시)

 

 이 시가 <당성> 자료집에 실려 있어 한번 큰 소리로 읊조려 본다.

그렇게 한 참을 옛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미복원구간에 난 소로길을 조금 더 걸어 본 뒤 뒤돌아 오던 길로 내려온다.

 

 

 

 

그리고 구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신흥사에 들른다.

마침 점심때여서 점심공양을 받으니 올해 들어 벌써 동탄 무봉산의 만의사, 남양 무봉산의 봉림사에 이어 세번째 절집에서의 점심공양이다.

  

 

2011신묘 새해에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좋은 한해가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