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맨발나그네 2012. 9. 10. 22:04

 

충남 가야산을 맨발나그네되어 걷다

 

● 산 행 지 : 가야산( 충남 서산, 예산 678m )

● 산행일시 : 2012년 9월 8일 (土)

● 누 구 랑 : 수원문화원 산악회

● 산행코스 : 한서대학교-가야산-큰고개-쉼터-남연군묘-상가리주차장

● 사진촬영 : 수원문화원 산악회 회원여러분

 

 

 

오늘은 수원문화원산악회 창립일이란다.

창립기념으로 충남에 있는 가야산을 찾아 창립 산제를 지낸다기에 따라 나선 길이다.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황봉에서 갈라진 금북정맥이 금강 이북 땅을 가로 지르며 서해로 내달려 오다가 세력을 다하기 전 남은 힘을 쏟아 예산과 서산 사이에 높이 솟아오른 산이 바로 가야산(伽倻山)이다.

백제시대에는 상왕산(象王山)으로 불렀으나 통일신라 이후 가야사를 짓고 가야산이라고 고쳤다고 한다.

조선의 대표적 실학자인 이중환은 그의 <택리지>에서

‘가야산 앞뒤에 있는 열 현을 내포라 한다.

지세가 한 구석에 막히어 끊기었고, 또 큰 길목이 아니므로 임진 병자년 두 차례의 난리에도 여기에는 적군이 들어오지 않았다.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생선과 소금이 넉넉해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해대교 덕으로 내포지방도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고장이 되었으니, 수원을 떠나 3시간 정도 지나니 들머리인 한서대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치고 한서대 정문 왼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시멘트 포장된 임도가 끝나고 갈림길부터 좁은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가야산 정상의 통신시설로 산행이 불편하여서 인지, 아니면 가야산의 도깨비불이라는 잦은 산불이 있어서인지 등산로 주변은 사람 키 만큼 자란 관목으로 덮혀있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하긴 가야산 산불은 1992년부터 시작하여 올해까지 50여차례에 달한다고 하니 도깨비의 소행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고 한다.

다행히 산길 바닥은 부드러운 흙길이고 낙엽이 많이 쌓여 그나마 맨발나그네의 발바닥에 위안을 주고 있다.

 

 

 

 

 

 

 

하지만 걷다가 쉼을 가질 수 있는 능선 쉼터마다의 조망은 일품이다.

어디서든 한서대학이 한눈에 들어오고,그 뒤쪽 연암산 너머로는 천수만과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눈을 조금 오른쪽으로 돌리면 해미쪽의 산수저수지와 황락저수지 너머 너른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그렇게 걷다보니 가야산 정상과 만나게 되는데 정상을 찾이하고 있는 통신시설 때문에 우회를 하여야 한다.

통신시설 오른쪽으로 우회를 하는데 등산로도 희미하고, 일부에는 녹슨 철조망이 널려있고, 깨진 맥주병도 나뒹굴고 있어 맨발나그네 뿐 아니라 같이 걷고 있는 일행들도 힘들어 한다.

 

 

 

 

 

더군다나 통신시설과 통하는 도로와 만나는 절개지에서는 산행대장인 송수복님이 온 몸으로 밧줄걸이가 되어 일행들이 안전하게 로프를 타고 내려갈 수 있도록 돕는다.

비록 힘들게 내려온 길이지만 그곳에서 좌측으로 원효봉과 원효봉 너머 내포평야와 옅은 안개로 아스라이 보이는 서해를 보고 있노라면 방금 힘들었던 것은 모두 잊고 탄성을 자아낸다.

더군다나 도로변에 산머루가 익어가고 있어 그것들을 한두알씩 나누어 먹으며 다시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통신시설 정문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맞는 쉼터에서 수원문화원산악회 창립산제를 지낸다.

나도 산행하기 좋은 날씨에 좋은 산을 선택하여 창립산제를 지낸 수원문화원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해본다.

수원문화원안의 동아리로 활동한다고 하니 기대하는 바 크다.

그냥 걷기만 하고 정상을 올랐다고 좋아만 하는 산악회가 아니라 문화와 역사가 숨쉬는 우리의 산하를 찾아 걸으며 숲에서 건강한 육체와 정신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산악회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각박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하나되어 에코힐링(Eco-Healing:자연치유)을 경험하는 산악회가 되었으면 한다.

 

 

다시 길을 떠난다.

가야산 정상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데크목으로 계단이 놓여있고 그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 전망대가 버티고 있다.

앞쪽으로 석문봉을 지나 일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멋들어지게 펼쳐져있고, 좌우로는 내포평야와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져 그동안 이곳까지 오느라 한 고생을 한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가야산이야 말로 막힘이 없는 내포지방 최고의 전망대라는 찬사를 들을 만하다.

가야봉과 석문봉사이의 큰고개 안부에서 석문봉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채 상가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한동안 너덜길이 계속되는데다가 어제밤 내린 비로 길위 돌덩어리들이 엉클어져 있어 이 맨발나그네의 맨발에 압박을 가해오지만 맨발로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맨발걷기를 계속한다.

계곡을 만나고 부터는 다시 산길은 넓고 부드러워 산책길이 따로 없다.

다만 밤가시가 많이 떨어져있어 그것을 피하느라 조금 신경을 쓰는 일 이외에는 걷기 좋은 길이다.

오른쪽 상가저수지 풍경도 한가롭다.

 

 

 

그렇게 내려오다 보니 남연군묘와 만난다.

남연군은 안동김씨의 세력에 밀린 야심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부친인 이구이다.

흥선군은 경기도 연천 남송정에 있던 부친의 묘를 이곳에 있던 가야사에 불을 지른후 이장을 한 후 그의 아들 고종이 철종의 뒤를이어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고종의 아들 순종이 고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니 지사(地師) 정만인이 말대로 2대에 걸쳐 임금이 나온다는 대명당임이 분명한듯 하다.

풍수에 문외한인 우리들이 보기에도 웅엄장대한 산세와 계곡이 중첩되어 있어 명당일 것 같다.

하긴 가야산 전체가 범상치 않은 산이니 각 골마다 개심사, 일락사, 보원사지, 마애삼존불등 수많은 불교유적과 사찰이 널려있는 불국토인 것이다.

 

 

불국토 가야산은 내포지방 최고의 전망대 이다.

그 가야산이 내준 품에 안긴 오늘도 행복하기 그지없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은 그의 저서 <걷기예찬>에서

'걷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모든 것과 다 손을 잡을 수 있는 마음으로 세상의 구불구불한 길을,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길을 더듬어 간다'고 했다.

세계 4대 생불로 추앙받으며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하는 베트남 출신 승려인 틱낫한은 그의 저서 <걷기명상>에서

'걷는다는 것은 고민과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계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라고 한다.

산새들과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들려주는 교향악을 들으며, 야생초들의 아름다움에 취하며, 나무들이 내뿜어주는 피톤치드에 감사하며 자연과 교감하며 걷다보면 일상에 쫓겨 소진된 심신에 에너지가 자동충전된다.

아니 숲길을 걷다보면 욕심, 미움과 분노와 같은 마음이 사라지고 상처받은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몸은 가벼워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오늘도 좋은 분들과 충남 가야산을 걸으며 행복으로의 초대를 받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