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나그네/맨발걷기 경험담

맨발나그네 2012. 9. 13. 22:02

 

아차산의 품에 안긴 맨발나그네

 

● 산 행 지 : 아차산( 서울 광진구, 경기 구리시 287m )

● 산행일시 : 2012년 9월 2일 (日)

● 누 구 랑 : 푸른나무 맨발산악회 회원들이랑

● 산행코스 : 아차산 둘레길

● 사진촬영 : 아드반, 본인

 

 

 

 

오늘도 걷기위해 집을 나선다.

오늘은 삼국(백제,고구려,신라)이 흠모한 산 아차산의 품에 안겨 볼 요량이다.

287m 밖에 안되는 아차산은 산을 오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산이라 부르기조차 남사스러울런지 모른다.

그러나 광교산을 조강지처 삼아 전국의 모든 산들을 연인삼아 그들이 내준 품에 잠시잠깐 안겼다 오는 이 맨발나그네에겐 그저 역사가 숨쉬고, 정겹기 그지 없는 여인(山)일 뿐이다.

그 정겨운 길을 맨발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그녀 아차산의 품에 안긴다.

 

 

아차산!

‘아차’는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무엇이 잘못되었거나 실수했음을 갑자기 깨달았을 때 내는 말’이라 풀어놓고 있다.

그 ‘아차’를 앞에 붙인 독특한 이름 탓에 아차산에 얽힌 사연이 없을 수 없으니 그 첫 번째 설화는 ‘서울 600년사’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명종 때 홍계관(洪繼寬)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점을 잘 치기로 유명하였다.

한번은 자기의 운명을 점쳤는데 아무 해 아무 날에 비명으로 죽을 운수였다.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 보니 용상 밑에 숨어 있어야만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이에 그런 뜻을 왕에게 올리고 그날 용상 밑에 숨어 있었다.

이 때에 마침 쥐 한 마리가 마루 밑으로 지나갔다. 왕은 홍계관에게

"마루 밑으로 지금 쥐가 지나갔는데 몇 마리였는지 점을 쳐보라."고 했다.

홍계관이 세 마리라고 아뢰자 왕은 그의 점이 허무맹랑하여 화를내며 형관을 불러서 사형에 처하도록 명령하였다.

홍계관은 도리없이 죄인의 사형장인 새남터로 끌려갔다.

형장에 도착한 홍계관은 다시 또 점을 쳐 보고서 형관에게

"잠깐 동안만 여유를 주면 내가 살길이 있겠으니 사정을 들어 주시오."

라 하니 형관도 불쌍히 여겨 잠시 기다리기로 하였다.

왕은 홍계관을 형장으로 보낸 뒤에 그 쥐를 잡아서 배를 갈라보니 그 배 속에 새끼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왕은 깜짝 놀라서 홍계관의 처형을 중지하라고 일렀다.

급히 말을 달려간 승지가 당마루(당현, 堂峴) 위에 올라가서 보니 막 형을 집행하려는 순간이었다.

승지는 처형을 중지하라고 크게 소리를 쳤으나 말소리는 그곳까지 들리지 않았다.

승지는 다시 손을 저어서 중지하라는 뜻을 보였으나 형관은 그것을 도리어 왜 속히 집행하지 않는가 하는 뜻으로 알고 곧 처형하였다.

승지가 그 사실을 임금께 보고하자 왕은 `아차!`하며 무척 애석해했다.

그리하여 그 고개 이름을 아차고개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아차고개가 있는 산을 아차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설화는 아차산의 이름이 이미 있은 후 산 이름과 연관하여 홍계관의 일화를 끌어 들인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이 아차 고개가 지금의 노량진동 사육신묘(死六臣墓)가 있는 마루턱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설화도 있으니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온달전’에 따르면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와 결혼한 온달은 공주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뒤 온달은 매년 3월 낙랑(樂浪)벌에서 열리는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에게 알려지게 돼 고구려 장수로 발탁됐다.

이후 북주(北周)의 군대가 침공해왔을 때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운다.

그후 온달 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긴 이 지역을 비롯한 죽령(竹嶺)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군과 싸우다가 이곳 아차산의 산성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戰死)하였다는 것이다.

이때 고구려 군이 온달 장군의 시신(屍身)을 평양으로 옮겨 가려 하였으나 장군의 한(恨)이 맺혔음인지 영구(靈柩)가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에 아내인 평강공주가 평양으로부터 와서 관(棺)을 어루만지며 “사생(死生)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 갑시다. ” 하자 관이 움직여 돌아가 장례를 치룰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이곳 주민들은 “아차! 온달 장군이 이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구나.”라는 의미로 이곳을 아차산이라 불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설화 역시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장소는 아차산이 아니라 훨씬 남쪽인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것이 현재로서 설득력 있는 학설이라하니 좀 더 지켜보아야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또다른 유래로는 이성계가 군사적 요충인 이 산성의 지도를 그릴 때 주민들에게 물으니 산 이름을 ‘해맞이 산’이라 불렀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 앞에는 한강이 흘러서 더 나아갈 수도 없던 인근 주민들이 새해 첫날 해맞이를 가려면 이 산에 올라갔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그 산세를 살피던 병졸들이 마모된 옛 비석을 탁본해 보니 그 탁본에는 아차(阿且)산이라 기록되어 그대로 답습하여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단(阿旦)산을 잘못 본 것으로 ‘해맞이산’을 한자로 적으면 아단(阿旦)산이 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몇 개의 아차산에 대한 설화가 더 전해지고 있는데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니 산이름 하나 갖고 너무 많은 지면을 써먹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마도 이곳쯤에서 장수왕이 한강을 바라보며 작전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아차산은 삼국사기에 286년(책계왕 원년)에 아차산성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으로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고대의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로서 396년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아차산성(광개토대왕비문 중 아단성을 함락했다는 내용을 이곳 아차산성으로 추정)을 함락시킨 이후 신라가 한강하류를 장악한 553년(진흥왕 14년)까지 삼국이 국운을 걸고 싸웠던 고대사의 현장이다.

475년에는 고구려 장수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산성을 점령했고 이때 백제 개로왕이 아차산성으로 압송되어 죽음을 당하게 되고 결국은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아차산 일대는 적의 동태를 살피고 방어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특히 한반도의 교역과 패권을 쥐고 있는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뛰어난 조망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발굴 복원된 제4보루에서의 조망)

 

이 성을 차지한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로부터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해 이곳에 수십 개의 보루를 설치했다.

그 보루들이 발굴되어 아차산 보루군, 용마산 보루군, 망우산 보루군, 수락보루 등 현재 확인된 것만 하여도 2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군사요새도 551년에 백제와 신라 연합군(나제동맹)에 의해 그 기능을 상실한채 오늘에 이르게 된다.

 

(아차산에서 바라 본 용마산, 본래 아차산의 최고 높은 봉우리였다고 한다)

 

(저멀리 북한산, 불암산, 수락산이 펼쳐져 있다)

 

역사학자들에게는 남한에서 귀한 고구려 유물이 대거 출토되어 역사적 가치를 논하는 장소가 되었지만, 오늘 이 길을 걷고 있는 맨발꾼들에게는 그저 가슴이 뻥 뚫린 듯한 조망과 탁 트인 전경을 내보이는 정겨운 산이고 길일 뿐이다.

 

 

 

 

그 길을 맨발이 되어 걷는다.

맨발로 걷기는 지구와 맨살로 만나는 일이다.

자연과 합일이 되는 일이다.

온 몸의 체중을 떠받치느라 고생한 발을 해방시켜 흙으로부터 살가운 애무를 받게하는 일이다.

맨발로 흙과 바위를 밟으며 발바닥에 느껴지는 시원한 촉감과 상쾌한 기분은 맨발꾼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맨발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숲과 하나가 되어 걷고 있노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정삿갓님으로 부터 아차산에 얽힌 유래를 듣고 있는 푸른나무맨발산악회 회원들)

 

인간의 유전자는 수백만년간 자연속에 사는 데 적합하게 진화되어 왔다.

인류가 직립보행을 한 역사 또한 수백만년인데 이 가운데 99%의 기간을 신발없이 생활해 왔으니 맨발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래서 맨발로 숲길을 걸을 때 몸 속의 유전자가 고향에 와 있는 듯 행복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맨발로 걷다보면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 있고, 자연히 몸과 마음은 건강해 질 것이다.

이것을 '자연치유'라 하는데 이를 영어로 누구는 'Natural Healig'이라 하기도 하고, 누구는 'Eco-Healing'이라고도 한다.(Eco-Healig은 Ecology(자연)과 Healing(치유)의 합성어이다)

 

자연과의 교감으로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을 추구하는 푸른나무맨발산악회와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댓글 들)

 

  • 개장수

    눈물겨운 설화를 두개나 읽고 갑니다. 맨발 나그네님의 산행기는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듯 기다려 집니다.
    안산하세요.
    2012.09.14 22:50

  • 할로윈

    나그네님은 그리 유서깊은산이 아닌데도 아주 특별한 산을 만드는 묘한 마력이 있어요.
    덕분에 산에 대해서 더친근감을 느끼고 가까히 하고 있답니다. 잘보고 가네요.
    2012.09.14 22:59

  • 부자되세요

    맨발님들이 많으네요. 뜻을 같이하는 분끼리 이렇게 산행을 하면 참 기분 좋겠어요.
    좋은 이야기 사진 즐감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2012.09.15 09:13

  • 뻐꾹46

    자연과 합일을 위해 아차산을 두루 자욱을 남기셨네요.
    잃어버린 역사까지 일깨우시고 가는곳마다 산행의 묘미를 알려주시는 나그네님의
    산행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잘보고 갑니다.
    2012.09.15 22:10

  • 제동이

    저 이런 이야기 정말 좋아하는데 외출하기 전에 잠깐 즐겁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2.09.16 20:13

  • 나이스보이

    저도 산행에서 맨발로 걷기 도전장을 내고 싶어요.
    좋은글 너무 재미있게 봅니다.
    2012.09.16 21:48

  • 싸이

    산행을 하면서 이런 재미난 얘기를 들으면서 간다면 너욱 산행의 재미를 느낄수 있을것 같아요.
    멋진산행기 즐감하네요.
    2012.09.17 09:03

  • 백구

    나그네님의 산행기 잘보고 잘일고 즐감하고 갑니다. 즐산하세요. 2012.09.17 23:40

  • 알럽감성

    아차산.에 대한 자세한 글 .
    정말 잘 쓰셨네요..
    감성이 수도없이 아차산에 가 보리라 ..다짐해놓고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
    정상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서울시내가 한눈에 보이는걸
    상상만 하여도 벅차는군요 ..
    지척에 두고도 못가본 산 . 꼭. 가야겠어요.
    이 가을이 다 가기전에 ......
    2012.09.18 1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