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즐거움 2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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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2 02:50 | ![]() |
2009-09-21 19:58 |
◇유럽의 걷고 싶은 길/김남희 지음/미래인 《걸을 때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는 좁아진다. 걷는 동안 나는 세계의 관찰자가 아니라 세상의 일부가 된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 풍경이 된다. 걸을 때 내 몸은 진화한다. 걷다 보면 발이 절로 나아가는 순간이 온다. 내 의지로 몸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몸이 나를 이끌고 간다…몸과 마음, 육체와 영혼이 하나가 되어 조화롭다.》 |
저자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걸어서 세계를 여행하며 책을 써왔다. 책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으로 혼자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싱글 여행족(族)에게 용기를 준 데 이어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을 통해서는 여행을 통해 겨우 배운 나를 긍정하고 타인을 긍정하고 현재를 긍정하는 법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는 2007년 한 해 잠시 떠돌이 생활을 멈추고 스페인에 머물렀다. 스페인어 공부가 목적이었지만 공부만 하다보니 금세 발가락이 간질간질했다. 결국 다시 짐을 꾸려 석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났다. 이 책에는 그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와 돌로미테, 프랑스의 샤모니와 몽생미셸, 아일랜드의 위클로 웨이 등 유럽의 유명 도보 여행지를 걸은 기록이 담겨 있다.
부푼 마음에 여행을 떠났지만 대부분 가족끼리 여행하는 유럽에서 나 홀로 여행자가 겪는 외로움은 컸다. 그는 ‘인도와 네팔에서, 중동에서, 아프리카에서 나는 늘 혼자 여행하는 아시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는 했는데, 이곳에서는 누구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라고 썼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아일랜드의 위클로 웨이를 걷는 중에는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마주치는 첫 번째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선언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타고난 ‘길치’인 탓에 수시로 길을 잃었다. 스페인의 카필레리야에 가기 위해 수십 번 길을 물었지만 막상 도착한 곳은 카필레리야가 아니라 카필레이라였다. 그에게 차를 태워주겠다는 운전자도 있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걷기 여행’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가 계속 여행을 떠나는 것은 여행지의 경이로운 풍경, 맛있는 현지 음식, 여행지에서 마주치는 뜻밖의 벗들 때문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돌로미테 산자락을 트레킹하며 산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트레치메를 봤을 때의 경이로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트레치메의 저녁 얼굴을 만나기 위해 테라스로 나갔다. 듣던 대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해가 저무는 기울기에 따라 바위의 색깔이 점차 변해간다. 점점 더 붉게 달아올라 마침내는 장미꽃 봉오리로 피어난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의 숙소에서는 정원에서 갓 딴 야채로 만든 신선한 음식을 대접받았다. 레몬 후추 소금 드레싱을 뿌리고 고수를 얹은 샐러드, 마늘과 매운 고추를 얹어 구운 가지와 토마토 요리,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를 넣어 볶아 해바라기 씨를 뿌린 밥, 레몬 소스를 넣어 볶은 오징어, 수박 요구르트와 과일 셔벗, 이 지역에서 만든 와인이 저녁 한 끼였다. 정원에서 저녁을 먹은 뒤 촛불을 켜놓고 집 주인 부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자는 이를 ‘마법 같은 시간’으로 표현했다.
홀로 걷는 여행은 외롭지만 그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스코틀랜드 웨스트 하일랜드 웨이를 걸은 뒤 그는 이렇게 적었다.
‘끊임없이 길을 잃고, 반복적으로 위축되고, 자주 외로움에 흔들리면서도 계속 걷는 나. 마침내는 공포에 덜미를 잡히는 신세까지 됐지만 그래도 내일이면 다시 길 위에 설 것을 믿는다.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걷고 또 걷는 나. 어제의 나에 비해 얼마나 강해졌는지.’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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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뼈대로 불리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은 그 굵은 산줄기와 산이 낳은 물줄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백두대간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의 백두대간은 단순한 종주의 대상으로 전통적 지리 개념을 확인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다.”》
백두대간, 사연없는 골짝이 없네
일본인이 찾아낸 우리 옛길의 사연 우리 옛길을 답사한 저자는 일본인이다. 지도와 기차를 좋아해 고등학생일 때 일본 전국 철도 약 2만 km를 모두 승차했고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대학원 지리학과에 유학 중일 때엔 한국의 옛길에 심취해 영남대로(서울∼부산), 삼남대로(서울∼제주), 관동대로(서울∼울진 평해)를 모두 걸었다. 스물닷새에 걸친 답사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풀과 시멘트에 가려 사라지고 있는 우리 옛길의 따스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출발은 서울의 숭례문이다. 삼남대로는 영남대로와 마찬가지로 숭례문에서 시작된다. 춘향전에는 숭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옛길의 이름들이 노다지로 실려 있다. 서울 용산구 남영역 근처에는 옛 마을 ‘돌모루’가, 지금의 삼각지 근처에는 ‘밥전거리’(밥을 파는 음식점 거리)가 있었다. 삼각지는 교차로가 세모꼴이어서 일본이 붙인 이름이니 옛 이름인 ‘밥전거리’로 바꾸자는 저자의 제안을 접할 때는 ‘한국인보다 한국의 옛길을 더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저자의 답사여행을 따라가면 전국의 초등학교 터는 옛날 동헌(東軒·지금의 군청 같은 관공서)이었던 곳이 많음을 알게 된다. 경기 과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과천초등학교 교정 한구석에는 옛 과천현 동헌 객사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이는 조선시대 과천현의 중심부가 지금의 과천초등학교 부근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옛 마을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저자는 “한국의 도시 개발이 종전의 전통 마을을 남겨 두지 않고 모조리 부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조선 후기 김정호가 쓴 지리서 ‘대동지지’를 기초로 저자는 옛길을 하나하나 추적한다. 마을 사람들이 들려주는 옛 지명은 ‘살아있는 실마리’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인근에서 옛 지도상의 궁원(弓院)마을을 찾을 때 주민들이 들려준 ‘화란’이란 옛 명칭은 힌트가 됐다. ‘궁’이 ‘활’이므로 ‘활원’이 ‘화란’으로 변했으리라는 추측은 쉽다. 이몽룡이 서울로 가며 거쳤던 삼남도로의 옛 지명들을 외우며 옛길을 확인해 주던 마을 노인을 만났을 때, 저자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서울을 떠나 열하루째에 전라도로 들어선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에서는 다른 고을에서 거의 없어진 동헌을 만나고, 옛 주막촌이었던 전남 나주의 망월초 마을에서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주막에서 막걸리를 걸친다. 답사에 시골 인심의 푸근함이 빠질 수 없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의 ‘자고 가라’는 청을 나그네의 바쁜 사정으로 거절했더니 ‘그러면 고개 너머 배 과수원이 우리 것이니 가다가 마음껏 따 먹고 가라’는 정겨운 말씀이 돌아온다.” 옛길을 찾아 지도와 나침반만을 믿고 산을 오르는 고생도 마다하지 않은 저자는 마침내 ‘땅끝’(토말)에 도착해 그 옛날 제주로 가는 배가 떠났던 이진(梨津)에 선다. 천리 길 여행은 옛 제주읍성의 관덕정(觀德亭)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 잔과 함께 마친다. 저자는 그냥 걷지 않았다. 축적 2만5000분의 1 지도에 자신이 추정한 옛길을 정확히 옮겼다. 출발 때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이룬 셈이다. “한국의 대로들을 더 걸어야지…다 걸어야지…(그래서) 풀에 묻혀진 옛 사람들의 기억을 내 손으로 되살려야지….”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