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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역사 2010. 10. 13. 21:37

한글을 도입하려 했던 중국 초대 대통령 원세개


출처: http://cafe.daum.net/do92
한자(漢字)는 말소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배우기도 어려워서 한자(漢字)를 사용하는 중국의 고민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은 한자 대신에 표음문자(소리문자)를 도입하여 쓰려는 움직임이 계속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한글만 읽을 수 있으면 의사소통을 하는데에 문제가 없으나, 중국은 그 발음이 각 지방마다 모두 달라 그 발음기호를 로마자를 차용(借用)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옛말을 어떻게 발음했는가를 알아보려면, 우리나라의 훈민정음을 공부해야만 한다.
우리는 한글을 쉽게 쓰기 때문에 우리 옆의 중국과 일본의 고통을 알지 못하는데, 중국 사람들의 한자(漢字) 사용으로 인한 고통을 알게 되면, 우리의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더욱 더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청나라의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는 조선에 임오군란(1882년)이 발생하자 조선에 파견되어 조선의 내정을 간섭했던 인물이다. 1894년 청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는 여러 차례 조선에 파견되어 머물게 되었었는데, 조선에서 생활하던 중 한글이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신해혁명(1911년)이 발생하자, 청나라 황제를 퇴위시키고, 원세개(袁世凱)는 1913년 3월 중국(중화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 관리로부터 중국 사람들이 한자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글자를 깨우치지 못하여 문맹률이 높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그는 “조선의 한글을 중국인에게 가르쳐서 글자를 깨우치게 하자!” 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랫 사람들이 “망한 나라의 글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라고 만류(挽留)하여, 원세개(袁世凱)의 생각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후에 중국은 각지의 방언을 하나로 통합하고, 문맹을 퇴치하기 위하여, 1918년 “주음자모(注音字母)”를 공포하고, 1926년 “국어(國語) 로마자”가 제정되었다. 한자사용을 간단히 하고 간소화하기 위하여 중국은 1956년 “한자 간소화 방안”을 공포 하였고, 그 후 세 차례 보충을 하여 1964년 “간화자 총표”가 발표되었는데, 약 2400자의 간화 문자가 수록되어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로마자로 된 주음부호를 만들어 쓰고 있다. 주음부호는 음운(音韻)론적으로 본다면 역시 원시적인 발음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주음부호는 이렇게 로마자를 빌려다가 중국어의 발음 기호로 쓰면서, 초등학교에서는 한자보다 먼저 로마자로 된 자음부호를 배운다. 어쨌든 중국정부는 1900년대의 90%가 넘는 문맹률을 최근까지 50%로 줄여 왔는데 그래도 문맹률은 아프리카와 비슷하다. 아직도 세계최고 수준의 문맹률(文盲率)을 유지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옛날 한자를 실생활에 그대로 사용한다면 현재의 과학기술 향상과 경제운용은 불가능하다. 10만 자(字) 이상이 되는 한자를 평생 매달려서 공부해야 한다면 중국의 발전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컴퓨터의 사용은 한자 폐기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표음문자(소리글자)를 도입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컴퓨터의 보급과 정보화라는 새로운 문명 앞에서 한자 사용과 소리글자 사용이라는 두 상황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한자는 획수가 너무 많아 컴퓨터를 이용할 때의 자판 입력이 힘들고, 통신상 오류가 일어 날 확률이 매우 높다. 한자(漢字)를 없애고 소리글자를 새로 도입해야 하는 이런 상황은 중국이 당면한 가장 큰 고민인데, 단지 중화(中華)라는 그들의 자존심이 현재 결정을 늦추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초대 대통령 원세개(袁世凱)가 생각했듯이 한자를 없애고 한글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로마자를 선택하느냐 하는 결정 사항만 남아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