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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의 벗 2014. 6. 16. 18:55

     

     

     

    오늘(16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께서 서울 동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종대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출판·판매·발행·복제·광고 등을 금지해 달라고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뉴스가 올라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책 저자의 논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연히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뉴스에 기사로 나온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내용 및 표현이 들어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 자신들의 행위가 매춘이며, 일본군의 동지였던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함으로써 대중들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만 전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은 피해를 입은 할머님들 입장에서 분노와 모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명예훼손으로 법적 대응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 확장을 위한 전쟁에 식민지 남성들과 여성들을 강제와 회유, (취업)사기, 협박 등의 방법으로 군인이나 위안부로, 혹은 전쟁물자 생산을 위한 징용 노동자로 동원했던 일제의 식민지인에 대한 착취와 수탈의 일환이며, 전쟁범죄입니다. 이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로 위안부들에 대한 강제, 혹은 사기에 의한 동원을 부정하고, 성노예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자발적 매춘이었다는 거짓 주장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이 친일파에게 그대로 권력을 이양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했던 (정신대 모집에도 앞장섰던) 전쟁 범죄자들이 처벌 받지 않고 그대로 국가를 인수하여 입법, 사법, 행정, 군, 경, 학계의 요직을 장악해왔고, 그 결과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으로 이어지는 장기 독재와 군사정권, 부정부패로 대다수 국민들이 고통을 겪어온 것이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에게 사과 받을 필요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 지명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사회 지도층이 식민사관을 버젓이 드러내고 뉴라이트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일본 역시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에 전범들이 처벌 받지 않고 그대로 권력을 장악하여 지금까지 일본 우익 세력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의 문제이며, 전쟁범죄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있어야 한일간의 화해와 새로운 미래도 가능합니다.

     

    여기까지는 이 문제와 관련한 저의 개인적인 관점이었고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박유하 교수와 박노자 교수 사이의 논쟁이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위안부"라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참고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박유하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참고로 박유하 교수의 이 글은 박노자 교수의 아래 글에 대한 반박글입니다.

    박노자 : 역사와 화해의 문제,

    박노자 교수의 위 글에 달린 댓글 하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싶어 옮겨봅니다.)

    hunterssjj 2014/06/10 00:54
      현재의 화해를 위해 과거의 악을 타협적으로 너그럽게 대하지 말라는 건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객관적 사실이라면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과거의 객관적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무조건 과거의 악과 타협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실제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란 책에서 주장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받아 들여야겠지요. 그걸 받아들인다고 '위안부'를 용납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 잘 모르겠지만) 위안부가 일종의 취업사기 형태였고 황군이 위안부를 성적착취만 하지 않고 한 구성원으로 보호까지 해준 것이 사실이라면, 그걸 인정한다 해도, 여전히 위안부는 용납할 수 없는 '악'이예요.

    그니까 '과거의 객관적 사실은 사실이고, 악은 여전히 악이다'라는 식으로 구분해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의 악을 정당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때문에 객관적 사실을 외면하자는 논리는 좀 이상합니다. 행복한 거짓보다는 불행한 진실이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

     

    Vladimir Tikhonov (박노자)선생님께

    출처: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894291997264382

     

    며칠전에 쓰신 비판을 이제야 봤습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 저에게 태그를 걸어 주셨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저에 대한 비판은 주로 제가 없는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듯 합니다.
    최근엔 한국여성사학회에서 저를 월례회에 초청하려다가 반대하는 이들이 있어 미루어지는일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연락했던 분은,그런 분들을 다시 설득해 가을 이후엔 성사시키고 싶다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쉬운 건 다른 이도 아닌 학자들이 대화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입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면 대화를 해야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대화없이 비판/비난/무시해온 태도가 한국의 학문의 왜소화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튼 저의 책 <제국의위안부>에 대해 다시 써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그 땐 제게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쓰실 시간이 없으실 수도 있으니 
    쓰신 글(지난 화요일에 페이스북 본문과 블로그에 쓰신 글)에 대해 일단 몇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대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제가 위안부문제의 범죄성을 인식하지 못한것처럼 쓰셨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셨는지요?
    또한 "파시스트적 범죄"라 하신 위안부문제를 제가 좋게 말한 부분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2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접근방식에 `국가의 개입`이 있었고 `야합`을 한다는 것으로 읽히는데 맞는지요. 맞다면 그렇게 쓰신 근거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3 선생님이 말씀하신,조선인 여성이 <강제적으로 성노예가 되었다> 는 인식을 대부분의 한국인은 물리적인 강제연행으로 간주합니다. 저는 다양한 케이스가 있었다고 썼고 어떤경우건 일본이 책임을 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인식과 다른 경우를 무시하는 건 매춘에 대한 차별의식이 시키는 일로 보이는군요. 선생님은 차별의식에 남달리 민감하신 분으로 아는데 그런 케이스들을 애써 무시하시는 이유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4 일본이 피해자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하셨는데, 아시아여성기금은 국가적 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보상이었다고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썼습니다. 기금에 담긴 일본정부와 '보통 일본인'의 마음과, 그 보상을 받은 60분의 할머니들의 선택이 무시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국가배상>요구가 어렵다고 한 이유는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범죄`로서 물을 “법”자체가 근대국가시스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물론 남성중심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니 한국이 '요구'하기 보다 일본이 주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5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변론”으로 간주하신 부분은 변론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과 `기억`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일본에 대해 익숙치 않은 사고와 방식으로 접근을 하면 면죄하는 걸로 생각하더군요. 해결해야 하는 주체가 일본인 이상 ,저의 방식은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 내는 일이고 20년 이상 해결이 되지 이유는 그런 노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른 기억`들은 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존재했음에도 잊혀졌던 기억들입니다. 무엇보다 그런 기억과 행위들은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일본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뛰는 일본인`들의 선조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 일본에 존재하는 그런 이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면 비인간적인 시스템속에서 그나마 인간적이려 노력했던 과거의 그들의 행위와 기억이 무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일들을 떠올리는 것은 면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와 폭력의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으로 용서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용서는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미움이라는 트라우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어떤 사죄가 있어도 `용서하려 하지 않는 담론`들은 존재하겠지요.
    대부분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런 담론을 필요로 하는 정치가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이 그런 쪽에 계시는 것은 아니겠지만 선생님의 생각이 그런 세력에 이용될 가능성은 많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그런 적대와 증오를 키우는 담론들을 넘어서야 하고 그게 제가 이 긴 글을 쓴 이유입니다.

     

    답장을 부탁드리기는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더 논쟁하지는 않겠습니다. 해결주체인 일본을 설득하는 것이 제게는 더 큰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는 조금씩 해나갈 생각이니 관심 있으시면 제 담벼락에 들러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하십사고 얼마전에 일본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에 대해 학생들이 남겨준 의견을 일부첨부해 둡니다. 이들이 받아들여준 방식으로 일본에서 제 얘기가 받아들여진다면 조만간 해결도 가능하지 않을까...생각합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우려는 안하셔도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다른사안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이 문제를 결부시키시는 식의 일반화는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똑같이 위안부'로 불려온 사람들 중에도 다른 케이스가 많고 그런 상황 하나하나를 고유성으로서 성실하게 대면하고 생각하는 것이 그분들을 존중해 드리는 일일테니까요.

     

    박유하 드림

    • Toshiharu Hirai, 오인태, Kazuki Isonaga님 외 120명이 좋아합니다.

     

     

     

     

    박노자 교수의 반박글

     

    "용서"라는 이름의 폭력
    만감: 일기장 2014/06/11 00:50

    출처: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67740

     

     

    지난 번 포스트에 대해서, 저는 며칠 전에 박유하 교수의 반박글 (https://www.facebook.com/parkyuha/posts/894291997264382)을 접했습니다. 이 반박글에서 박유하 교수가 제기하신 일부 문제 - 특히 박유하 교수의 책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된 문제 - 에 대해서는, 저는 차후,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차차 보다 상세한 답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일단 일반론부터 펴볼까 합니다. 즉, "위안부"라는 문제의 본질에 대해 한 번 사고해보고, 박유하 교수가 이야기하시는 "용서와 화해"의 이면에 얼마나 끔찍한 국가주의적, 폭력적 사고가 도사리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십니다: "제가 <국가배상>요구가 어렵다고 한 이유는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범죄`로서 물을 “법”자체가 근대국가시스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물론 남성중심의 시스템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릅니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위안부 징발의 형태는 조선에서처럼 주로 취업사기와 황군을 배경으로 하는 인신매매일 수가 있었으며, 비율빈 내지 중국처럼 노골적 납치일 수 있었으며 일본군 점령 시기 화란국령 인도네시아처럼 각종 압박과 회유, 그리고 직접적 강요의 조합일 수도 있었지만,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바로 국가 (군대: 국가의 하나의 조직체)에 의한 제도화된 여성에 대한 성폭력입니다. 말하자면 국가적인, 제도화된 강간이죠. 그러나, 전시 강간은 이미 17세기 이후로는 국제법에서 엄중하게 금지돼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의 연구자이신 박유하 교수는 이 문제의 문외한인 저보다 더 잘 아실 일입니다만, 이미 17세기의 화란국 국제법 창시자인 위고 그로티우스는 전시강간을 최악의 전쟁범죄로 다루었습니다. 그 다음에 제1차 제네바 협약 (1864년)과 해아 (헤이그) 협약 (1899년)의 내용을 보시면, 거기에서 "crimes against women's chastity and honour" (녀성의 정절과 명예에 대한 범죄) 등은 명시적으로 나옵니다. 물론 그 시대의 가부장적 언어지만, 좌우간 근대 법 체제로 봐서는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의 성노예화는 분명히 문자 그대로 "범죄" 맞습니다. 화란국이 일본이 점령한 인도네시아를 다시 되찾아 재점령했을 때에 위안소 설치에 책임 있었던 일본 장교들을 현지에서 전쟁범죄로 기소, 재판하여 실형을 준 전례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백인 녀성을 성노예화시킨 일본 장교들은 그 범죄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한데 비백인 점령지 녀성 (중국, 비율빈) 내지 비백인 식민지 녀성 (조선인)을 성노예화시킨 전범들은? 우리는 지금 최대한으로 요구하는 것도 사실 "책임자 처벌"도 아니고 "국가 특별법 제정", "국가 이름으로의 배상", "교육 등 재발 방지" 정도이지 않습니까? 아우슈비츠에서 잠깐이나마 근무한 적이 있는 나치 전범은, 아무리 백세의 고령자가 돼도 적발 즉시에 미국 등 사후적으로 취득한 미국 등의 국적이 취소되고 바로 재판소에 끌려갑니다. 원칙상 전범들에 대한 공소시효는 없습니다. 원칙상. 문제는, 비백인 녀성들에게 전쟁범죄를 저지른 선진국 (?) 일본 국적의 전범들에게 이 원칙은 사실상 적용되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우리는 참 나쁜 세계에서 살지 않습니까?
     
    참고로, 조선 녀성 위안부의 징발이 주로 인신매매 형태이었다면, 일본은 국제 여성 인신매매 방지 조약 (http://cil.nus.edu.sg/1947/1921-international-convention-for-the-suppression-of-the-traffic-in-women-and-children-as-amended-by-the-1947-protocol/) 에
    사인한 만큼, 알고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비준 당시 조선 등 식민지를 예외로 두는 교묘한 단서를 달았지만, 위안소는 조선/대만/요동이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위치한 이상, 아무리 교묘한 단서를 달았다고 해도 원칙상 비준을 한 만큼 책임도 져야 하지 않았을까요? 좌우간, 누가 어떻게 봐도 국제법 체제로는 일군의 행위는 공소시효가 없는 전범행위에 해당되는 건 맞습니다. 단, 사실상으로 식민지 여성에 대한 전쟁범죄가 처벌되어지지 않는, 극도로 불평등하고 위법적인 우리 세계 체제가 문제입니다.
     
    2.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십니다: "일본이 피해자의 요구를 거절했다고 하셨는데, 아시아여성기금은 국가적 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보상이었다고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서 썼습니다. 기금에 담긴 일본정부와 '보통 일본인'의 마음과, 그 보상을 받은 60분의 할머니들의 선택이 무시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주장은 위에서 이야기한 부분으로 비추어봤을 때에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위안부라는 이름의 일군 행각이 근대 국제법적 의미의 "국가의 전쟁범죄"라면 "관민 합동의 기금"을 가지고 그 어떤 "해결"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범죄"에 대한 진정한 해결방법은 본래 뭘까요? 비록 범인이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부재재판이라도 해서 "판결"이 나와야 범죄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까? 위안부 범죄는 과연 왜 달라야 할까요? 단 국가 범죄인 만큼, 여기에서는 과거 일본국의 범죄 행각에 대한 오늘날 일본국 수반 및 국회 등의 법적 판단이 있어야 될 것이고, "관민" 형태가 아닌 국가로부터의 배상이 필요합니다. 국가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결국 미래의 국가범죄가 또 저질러질 토양을 만들어내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세아녀성기금으로부터 보상금을 받으신 분들의 선택이야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어려운 조건에 처해진 개개인의 선택은 개개인의 선택이고, 국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3. 박유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십니다: "현대 일본에 존재하는 그런 이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면 비인간적인 시스템속에서 그나마 인간적이려 노력했던 과거의 그들의 행위와 기억이 무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런 일들을 떠올리는 것은 면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와 폭력의 기억을 떠올리는 한편으로 용서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 용서는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미움이라는 트라우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이지요."
     
    현재의 일본인이든 한국인이든 가장 득 볼 것은 범죄조직인 일본/한국 등 "국가"의 과거 깡패행각에 대한 법적인 엄중한 처리입니다. 왜냐하면, 한 번 그런 처리가 있은 다음에 국가 폭력 조직 (군대 등) 종사자들이 약간 버릇이 좋아져 다시 한 번 비슷한 류의 짓을 저지르기 전에 두 번 생각해본단 말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일본인에게도 한국인에게도 최악의 적은 바로 일본/한국 국가인 만큼 국가에 너그럽다는 것은 그 인민에 대한 가혹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드디어 "핵심 문제"로 도달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도대체 위안부 할머니나 우리 모두에게 누굴 "용서"하라 하십니까? 개개인으로서의 일본인을? 양심 있는 일본 분들이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시기도 하고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싸우기도 하고 하시는 것은 다들 아는 일이고, 위안부 할머니 분들은 개개인의 일본인에 대한 배상요구를 하시는 게 아니라는 점도 주지의 사실입니다. 개개인으로서의 일본인 및 한국인 사이는 "용서"할 일도 따로 없고, 서로 연대를 잘해서 양쪽 국가/기업과 싸우면 될 일이고, 이 문제와 관계 없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문제의 대상은 일본국이라는 "국가"죠. 일본국을 용서하라는 것입니까? 일본국이든 대한민국이든 비슷한 수준의 사실상의 깡패조직인데 그 조직을 "용서"하고, 그 조직과 "화해"한다는 건 도저히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알다가 모를 일입니다. 국가를 사랑하라 하면 분명히 당장에 국가주의로 판단이 나올 터인데, 국가를 사랑하라는 말이나 국가를 용서하라는 말이나, 과연 그렇게 다른가요?
     
    깡패조직이란 말이 지나치게 심한 걸로 느껴질 수 있지만, 대한민국도 일본국도 그 외부자적 피해자들에 대해 취해온 태도를 보면...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같으면, 그 군인들이 학살과 강도짓, 강간을 저지른 월남의 마을에서 지어진 증오비들을, 돈을 주면서 철거하라고 지금 은근히 요구하잖아요. 돈을 조금 줄테니까 용서를 하고 화해하라고. 월남 피해자들의 후손들이 그런 국가를 정말 용서할 일은 있을 것 같습니까? 일본국이 대한민국과 다른 점은? 돈은 훨씬 더 많고, 또 미국과 손잡아 저지른 범죄가 아니고 일시적으로 미국과 싸우면서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대한민국보다 발뺌하기가 조금 힘듭니다. 미국 등 상전 나라 여론도 주시해야 하고 해서요. 그러니까 "돈을 줄테니 증오비를 없애라, 이 동남아 새끼들아"보다 약간 고상한 (?) 모양을 취해보는 거죠. "기금" 만들고 "총리 편지"와 같은 격식을 차리는 척도 해보고, 돈도 보다 많이, 개인별로 주고...그러나 범죄를 범죄라고 부르지 않고 책임자 처벌 등을 아예 외면하고 국가적인 법적 해결을 회피하고, 그리고 계속해서 세계체제 주변부에 대한 각종 범죄행각을 밥먹듯이 하는 차원에서는...우리 대한민국과 일본국은 호형호제죠. 일란성쌍둥이. 깡패국가 일본국을 용서하라는 말은 결국 깡패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어떤 "긍정적 수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른 걸 몰라도 진보와는 아주 무관한 이야기죠.
     
    계속 횡포를 부리고 있는 강자를 "용서"하라고 약자에게 이야기하는 이상의 폭력이 있을까요? 제가 왜 박유하 교수의 주장에 도저히 전혀 동의할 수 없는지 박유하 교수님께서 잘 리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박노자 드림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 관련 기사

     

    ‘제국의 위안부’, 위안부 피해자 일본군 협력자로 매도

    위안부 피해자 “허위사실 기술로 명예훼손.. 배상해야”

    이미경 기자  |  balnews21@gmail.com

     

    촐처: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034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자신들을 ‘매춘부’나 ‘일본군의 협력자’로 매도했다며 관련 서적의 저자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15일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할머니 9명은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출판한 책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출판·판매·발행 등을 금지해달라며 16일 오전 11시 서울동부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한 사람에 3천만 원씩 총 2억 7천만 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내는 한편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박 교수와 출판사 대표를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하기로 했다.

     

       
     

     

    작년 8월 12일 출판된 ‘제국의 위안부’는 출판 직후부터 논란이 됐다. 박 교수는 책에서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를 대체한 존재였다”며 “조선인 위안부는 피해자이면서, 제국에 편입된 ‘식민지인’으로서 협력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된 지 20여 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없었다는 ‘한국인의 인식’에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대협의 주요한 요구인 일본의 법적 배상, 국회 결의를 통한 사죄와 배상은 사실상 실현 가능성이 없고 요구할 근거도 불충분하다면서 “반제국의 의미를 가졌던 저항이 그곳에서는 어느새 민족권력화되어 있었다”고 설명한 점도 논란을 낳았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 드러났음에도 이 책에서는 '일본인·조선인·대만인 '위안부'의 경우 노예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기술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할머니들은 “저자가 책에서 ‘한일간의 화해를 위해 자신들의 행위가 매춘이며, 일본군의 동지였던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함으로써 대중들에게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만 전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며 "허위사실을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줘 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군에게 성적 착취와 학대를 당한 명백한 피해자"라며 "일본군 성노예제도의 존재와 그 피해사실은 유엔 산하 인권위원회나 미국의회 등 국제사회에서도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앗!!!! 동접의 순간? 잘 지내시죵?
    궁굼해서리 올~만에 찾아왔답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길요^^

    앗!!! 동접 맞아요^^
    도요새님도 좋은 시간 보내세요^^^
    추천도 꾸욱 눌러주시고요..^^
    츄천 눌렀답니당 ㅋㅋ 이런 기사 꼭 올리시드라 ㅋㅋ

    용서라는 이름의 폭력을 싫어해서리..ㅋㅋ
    가만 보면 제가 열 받으면 잘 못 참는 성격인 것 같아요 ㅋㅋ
    저두 그래영~~
    불의보면 물인지 불인지 ㅋㅋㅋㅋㅋ
    잘 보내세용^^
    전 이 곳에 좀 머무르다가 물러가영^^

    그래서 저랑 잘 통하잖아요~~
    잘 머무르시다 가세영^^
    아~이런 문제는 지나치지 못하시는 벗님의
    정의감 넘치는 포스팅에 역시 친구는 나보다
    잘난 친구를 두어야 한다는 옛말에 동감!!!
    제국의 위안부라...제목까지 환상적이네요!!!ㅠㅠ;;;

    아~ 간만에 벗님 뵈니.. 넘 방가워요^^
    잘난 거 하나 없어요..
    벗님 같은 친구를 두어 제가 감사하죠!!!
    제목이 정말...ㅠㅠ;;;
    아까 잊고 갔던 튜텬 꾸~욱!!!!
    하였어효~옹~멋진 벗뉨하~앍~~~~~~~~^^*//////

    튜텬을 잊으셨다니~~ㅋㅋ
    귀여우셔요~옹~~~~^^*//////
    우리의 의식이 그 시절로 돌아가야만 정확한 이해가 되리라 봅니다,
    배고픔과 양반상놈의 철저한 구도
    모든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여필 종부의 시대
    나이어린 소녀들이야말로 핑크빛 꿈에 젖어 있을 ....
    속임수나 강제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증언들을 보면 취업사기 형태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준다는 식의 감언이설로 꼬셔서
    속아서 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군인들에게 몸을 파는 매춘이나
    성노예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간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말씀하신대로 속임수나 강제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시대였다고 봅니다.

    문제는 중간에 취업사기 형태로 알선을 한 자들이 일제에 협력하였던
    조선인 업자들이었다는 점을 들어, 일제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인데요.
    감금과 폭행 등 성노예의 형태를 띠었던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로서
    그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책임이 일제에 있고, 조선인 업자들은
    일제의 전쟁범죄에 협력했던 자들로서 그들 역시 처벌을 받아야했는데,
    해방 이후 친일파가 그대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했지요.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시대인식이죠
    효와 충
    가부장적이며 열녀를 칭송하는 풍토
    이런 시대 상황하에 성을 판다라는 것은 일반 가정에서는 바로 죽음을 의미 할 것입니다
    몇 십년 전까지도 시골 인심은 후했고 마음은 착했습니다 없으면 없는대로
    맑은 물에 바닥이 보이듯 ..........그것을 현대의 자로 들이댄다면 작의적이죠

    현대라면 그럴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어요 ...

    유교적이고 가부장적인 그 당시 시대인식과 상황하에서
    성을 판다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현대의 자로 당시의 상황을 재단하는 것은 작의적이란 말씀에 동의합니다.

    일제에 협력했던 조선인 업자들의 문제는 그들의 역할이 실제 어느 정도였는지
    잘 모르지만, 일제가 식민지배를 위해 조선의 친일파들을 양성하고 그들을 이용한 것처럼
    일본군 성노예 동원을 위해서도 당연히 중간 매개체로서 일제에 협력하는 조선인들을
    필요로 했고 그들을 이용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강제 연행의 경우든, 속임수를 통한
    인신매매의 경우든, 중간에 조선인 친일파의 매개가 있었더라도, 범죄의 시작점도 최종적 주체도
    일본군이었고, 일차적 책임이 일제에게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물며 북한공산당도 친일파단죄했거늘 어째
    자유대한민국은 친일파새끼들 단죄못하는가?
    부디 정권다운 정권이나와서 친일파후손놈들까지
    단죄했으면한다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친일파를 그대로 등용했는데,
    이승만 정권 역시 친일파와 손잡고 친일파 척결 운동을 탄압했으니까요.
    해방 이후 70년간 친일파가 정치 경제 군사 법조 언론 교육계를 장악해왔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친일 청산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뒤집을 날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