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품취재>/>중국발품취재

최종명작가 2007. 5. 1. 18:51

 

취재팀은 이른 아침을 먹고 사전 취재를 위해 먼저 떠난다고 한다. 파도 치는 바닷가까지 산책로가 있다. 살짝 내려가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맘껏 마셨다. 해산물이 대부분이던 어제 만찬과 달리 아침에는 죽도, 만두도 있다. 가볍게 커피까지 한잔 하고 얼른 취재차량에 탔다.

 

ⓒ 최종명 석도호텔 앞 바다

 

9시쯤 장보고기념관에 도착했다. 공식개관식이 한 시간 남았다. 행사에 동원된 듯한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데 그 모습들이 참으로 재미있다. 카메라와 캠코더에 그들의 모습을 담는 일이 흥이 생기기 시작했다. 각종 악기와 피리 소리로 천지가 떠나갈 듯하다. 행사장인 기념관 입구를 담으려고 언덕 위로 올랐다. 한 눈에 행사장과 장보고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 갑자기 휘날리던 풍선 하나가 머리를 퉁 치고 갔다. 안경도 떨어지고 하마터면 아래로 떨어질 뻔 하지 않았나. 끔찍했다. 옆의 한 아주머니가 안경을 찾아 건네줬는데 안경을 다시 쓰고 나서야 정신이 되돌아왔다.

 

 

ⓒ 최종명 장보고기념관 개관식 행사장 앞 분주한 모습

 

 

ⓒ 최종명 개관식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

 


ⓒ 최종명 깃발을 들고 선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

 


ⓒ 최종명 장보고 동상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

 

 

ⓒ 최종명 환하게 웃는 악대원

 

행사가 시작되고 기나긴 축사가 거듭된다. 게다가 매번 통역이 잇따르니 지루하기 그지 없다. 축사 중에 나온 이야기인데 원래 장보고기념관은 이미 3년 전에 개관이 되었다가 정부로부터 기념관으로 공식 허가를 받게 된 것이라 한다. 그것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념관, 특히 외국인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규정이 있다고 한다. ‘장보고’를 외국인, 즉 신라인으로서 취급했기에 그 동안 허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라니 그럼 이제는 중국인으로 대우하겠다는 이야기인지 애매한 측면이 있다. 물론 ‘장보고’ 외에도 외국인 기념관이 몇 개 더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행사가 끝나자 엄청난 축포가 귀를 따갑게 한다. 마치 전쟁영화에서나 봄 직한 소리다. 게다가 종이꽃가루도 폭설처럼 내린다. 온통 하늘을 가리고 떨어지는 꽃의 향연이 서서히 끝나고 모두들 기념관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이 장보고 동상 앞에서 예를 갖추는 동안 나는 아래쪽 마당에서 펼쳐지는 중국 전통공연과 서커스가 눈 길을 끌었다. 어제 열심히 연습하더니 정말 아기자기 하면서도 흥겨웠다. 
 


ⓒ 최종명 공연 준비 중인 아주머니의 환한 얼굴

 


ⓒ 최종명 사자춤 공연



ⓒ 최종명 서커스 공연

한참 공연을 취재하는데 멀리서 말로만 듣던 분수 쇼가 벌어지고 있다. 바로 법화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극락보살계이다. 저걸 놓칠 수 없다. 재빨리 뛰었다. 걸어가면 10분 가량 걸리는데 쇼가 10여분 정도란다. 가방 메고 카메라와 캠코더까지 들고 뛰니 땀이 솟는다.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많다. 거의 입구부터 발을 넣을 틈도 없다. 계속 ‘뿌하오이스’(不好意思)를 외치며 사람들을 헤집고 맨 앞에 이르렀다. 정말 엄청난 양의 물이 뿜어져 나온다. 게다가 보살 동상이 한 바퀴 돌기도 하고 그러면서 불꽃도 뿜는다. 그래서일까. 장보고기념관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 다 모였다.


ⓒ 최종명 극락보살계와 분수쇼 장면

 

보살계와 분수 쇼 장면 전체를 담으려고 위쪽으로 올라서 카메라를 들었다. 그런데 렌즈 앞 뚜껑이 보이지 않는다. 주머니를 다 뒤졌는데도 없다. 갔던 길을 되돌아 오며 땅을 훑었다. 이제 분수 쇼도 끝나서 사람들이 다 흩어진 곳을 여기저기 다 뒤지기 시작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해도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걸 다시 살 수도 없고 뚜껑 없이 6개월을 다닌다는 것은 영 렌즈에게 미안한데 어쩌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뛰었으니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다 떨어졌을 것인데. 그렇다면 분명 어딘가 떨어져 있을 것인데. 거의 포기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새까맣고 동그란 물체 하나가 보인다. 그 뚜껑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러고 보니 떨어져서는 아래로 굴렀나 보다. 


ⓒ 최종명 분수쇼를 보고 흩어지는 사람들

 

뚜껑을 찾아서 되돌아오는데 갑자기 우리 일행의 차량이 떠나고 있다. 아니 이건 또 뭔가. 또 뛰었다. 정확하게 몇 시에 출발할지 물어보지 않은 내가 잘못이다. 차를 세워서 또 ‘뿌하오이스’. 그래 이제 점심 먹겠지. 배 무지 고프네.

 

다시 호텔로 돌아와 같은 장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게다가 음식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매 끼니 나오는 그 비싼 전복요리야말로 기분 좋은 대접이다.

 


ⓒ 최종명 석도호텔의 요리

점심을 먹고 2시에 출발한다고 했다. 기념관 개관 행사가 끝난 후 주변 관광이 코스였다. 오후에는 중국의 동쪽 끝, 청산터우(成山)와 동물원을 간다니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한국에서 온 취재기자들은 마감 시간 때문에 늦게 출발하는가 보다. 나야 그런 부담이 없으니 2호 차에 탔다.

 

청산터우에 가까울수록 바람소리가 드세다. 바다가 보이는 절벽이며 중국에서 가장 먼저 태양을 보는 곳(看中第一太)이니 그 전망만큼이나 바람도 부쩍 날렵하다. 겨우 10분 머물고 떠난다고 한다. 아니 세상에나 얼마나 기대를 하고 왔는데 말이다. 삼각대 설치할 겨를도 없이 김태송씨를 불렀다. 간단히 멘트를 하고 최대한 빠른 속도로 여러 곳을 다 둘러봤다.


ⓒ 최종명 '중국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 표시

 

ⓒ 최종명 '天無盡頭'(하늘의 끝머리)라는 표시

 

청산터우는 삼면이 바다다. 해발 200미터이고 우리나라와는 불과 94해리, 17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지방(阳启升的地方)이니 중국사람들이 꽤 신비롭게 여겼을 것이다. 진시황도 청산터우에 두 번이나 순행해 불로초를 찾았다 전해진다. 진시황의 책사 이사(李斯)는 ‘하늘의 끝이요 진나라의 동쪽 문’(天尽头东门)이라고 직접 썼다. 그래서 이곳을 티엔진터우(天尽头)라 부르기도 한다.

 기원전 94년 한무제(武帝)도 순행 길에 들러 일출을 본 후 ‘청산관’(成山)을 세웠고 ‘적안가’(赤雁歌)를 지어 불렀다 한다. 건국 후에는 국가지도자 급으로 후야오팡(胡耀邦) 역시 ‘하늘 끝에 오니 마음이 격동한다’(天尽头,心潮澎湃)라고 일곱 글자를 남겼다. 이렇듯 중국 사람들에게 청산터우는 신비하고 독특한 장소로 일컬어 왔다. 중원 땅에야 바다가 있을 리 만무하니 당연한 일이겠다. 전국을 통일한 대가라 하겠다.

 

또 맨 나중에 버스에 올랐다. 국회의원을 비롯해 일행이 있는 데 조금 송구스럽긴 하다. 차는 재미난 야생동물원으로 이동했다. 예전에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 아주 즐거워했던 곳이다. 호랑이, 사자, 늑대, 표범을 비롯 야생동물과 각종 조류, 그리고 바다동물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큰 동물원이다. 이곳의 백미는 50위엔 짜리 닭을 사서 던지면 아래에서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야생이 남아있는 동물들이 쫓아온다. 닭은 마지막 몸부림을 하지만 금방 횡사한다. 다른 동물원에도 이런 모습이 있는 지 모르겠으나 이곳만의 볼거리라 하겠다. 산중턱에 동물원을 만들고 다리를 놓았으니 가능한 장면으로 보인다. 피 터지는 장면을 보고 계속 걸으면 아주 다양한 동물들을 보게 된다.


ⓒ 최종명 영성동물원의 호랑이가 닭을 기다리고 있다

절벽으로 올라가면 산양도 있고 원숭이 무리도 있다. 더 지나면 각종 조류도 있고 제일 마지막에는 해양동물들이 기다린다. 10위엔 한 접시에 대여섯 마리의 생선을 던져주면 물개가 아주 좋아하고 점프도 하고 온갖 재주를 부린다.


ⓒ 최종명 안정적인 자세로 물고기를 기다리는 물개

다시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는 한적한 해안도로를 달린다. 풍력발전을 위해 풍차가 줄줄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제주도인 듯 착각했다.


ⓒ 최종명 영성 해안도로의 풍차들

 

하루 종일 참 바쁘게 다녔다. 차에서 내려 호텔로 들어가는데 뭔가 또 허전했다. 글쎄 렌즈 뚜껑이 또 사라졌다. 기억을 되살려 버스로 가보니 기사가 청소 중이었고 동그랗고 까만 물건 못 봤냐 했더니 찾아준다. 아마도 6개월 내내 잃어버리지 말라고 미리 경고하는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