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위에 칼럼>/>차이나^리포트

최종명작가 2007. 1. 17. 21:21

산동성(山东省)에서 가장 동쪽에 자리잡은 해안도시 룽청(荣成)은 우리나라 인천항과 평택항에서 배가 오고 가는 곳이다. 웨이하이(威海)와는 40분 거리이고 옌타이(烟台)와는 1시간30분, 칭다오(青岛)와는 약3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룽청에는 진시황이 다녀갔다는 청산터우(成山头)라고 하는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도 있고 온갖 동물들을 다 볼 수 있는 거대한 션디아오산(神雕山) 야생동물원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의미있는 관광지는 바로 청해진 대사 짱빠오가오(张保皋, 장보고) 기념관이 있는 츠산(赤山) 풍경구라 할 수 있다.

 

룽청에 자주 갔었지만 한번도 찾지 못한 것은 그동안 공사중이었기 때문. 이번 연초 출장에서 소원을 풀었다고나 할까.

 

 

산동반도 최동단에 위치한 츠산 풍경구는 약12.8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이곳은 한국,중국,일본 3국 문화교류의 현장이기도 하다. 중국 민간 신(神)인 츠산밍션(赤山明神)이 있고 일본 천태종의 고승인 위엔런(圆仁)이 순례 중 머문 곳이기도 하며, 한국의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는 곳이니 3국의 역사와 문화가 한 곳에 어우러져 있는 셈이다.

 

이 지역 기업체(斥山水产集团)이 3.2억위엔을 투자해 조성한 풍경구 입구이다. 아담한 산자락에 햇살도 많은 이곳 츠산 풍경구는 한겨울 날씨임에도 밝고 따뜻하다.

 

 

풍경구 입구 광장에 서있는 이동차량이 조용하게 서 있다. 연한 하늘색과 빛바랜 벽돌색이 잘 어울린다. 우리를 안내한 룽청방송국 아나운서가 관리사무실에 잠시 간 사이 이곳저곳 훑고 있는 중이다.  

 

 

관리사무실 건물 너머로 햇빛을 받은 험준한 산자락이 보인다. 광장 중심에 우뚝 선 나무 줄기도 겨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따스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서기 824년에 장보고가 세운 법화원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은 이 지역 최대 최초의 불교사원으로 유명하다. 장보고는 당시 신라 및 일본의 고승들에게도 많은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승려 위엔런(圆仁)은 구법순례(求法巡礼)를 위해 당나라에 온 이후 이곳 츠산(赤山)에 머물렀으며 법화원 뒤 위엔런 입당구법관(圆仁入唐求法馆)에 머물렀다 한다. 그는 일본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전하는데 그가 지은 저서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礼行记)는 동방3대여행기 중 하나(东方三大旅行记之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법화원 내 지장전이다. 여느 불교사원처럼 마당에 촛대가 있고 향이 피어오르고 있다.

 

 

법화원 한편에는 칭하이쩐(青海镇) 대사 장보고 공적비가 자리잡고 있다. 그 옆에는 공적비 건립추진위원회 회원 명단과 기념비 성금 회원 명단이 있는데, 모두 장(张)씨 성이어서 특이하다.

 

 

법화원 서편 츠산찬위엔(赤山禅院) 뒷쪽에는 거대한 관음 불상이 놓여 있다. 불상 주위에는 음악 분수가 있어 한 여름에는 물이 솟구치는 쇼를 벌인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규모도 놀랍지만 조각도 매우 섬세했다. 2800만위엔을 투자해 꾸몄다 하니 이 지역 최대이며 유일한 불교사원에 걸맞아 보인다.

 

 

불상 뒤편 벽에는 천수관음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아주 세심하게 기교를 부렸고 은은하게 묻어나는 단아한 모습이 중국의 여느 다른 곳에 자주 보기 힘든 인상을 남긴다.

 

츠산 풍경구에는 불교 천태종 사원과 당나라 시대의 역사, 그리고 장보고의 그림자가 길게 묻어나고 있다.  

 

 

저멀리 산 언덕에 츠산밍션(赤山明神)이 보인다. 중국이 세계 최대 단조 동상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높고 크다. 아담한 산 정상에 바다를 향해 웅장하게 서 있는 해신(海神) 조각상. 츠산 풍경구 어디서라도 그 자태가 보이는 츠상밍션에도 역사의 인물 장보고와 관련이 있다.

 

 

츠산밍션에는 3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진시황이 6국을 병합한 기원전 219년 천하를 순행하다가 동진해 이 지역에 이른다. 장생불로(长生不老) 약을 찾아 청산터우(成山头)에 이르는데 마침 병을 얻게 된다. 이에 승상 이사(李斯)는 말을 타고 이 츠산밍션을 참배한 후 처방을 구해 황제의 목슴을 살렸다고 전한다.

 

당나라 때 장보고는 공을 세워 성공한 후 이곳 츠산에 이르러 밍션의 비호 아래 한 중 일 삼국 해상무역을 장악해 '해상 무역왕'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아마도 지역 토속신인 츠산밍션에게 예를 올리며 민심을 등에 업고 자신의 해상 무역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것이니 이렇게 전해오는 것일 게다.

 

서기 847년, 당나라에 구법을 위해 왔던 일본 승려 위엔런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풍랑을 만났는데 돌연 츠산밍션이 나타나 설법을 하니 풍랑이 가라앉았다 한다. 위엔런이 귀국 후 입적하자 유언에 따라 제자들이 츠산찬위엔(赤山禅院)을 수건(修建)하고 츠산밍션에게 예를 갖추고 봉공했다고 전한다.

 

 

 

조각상의 높이는 33.8미터에 이른다. 조각상 바로 밑에서 거의 수직으로 올려다보며 찍었는데 막상 사진으로 보니 그렇게 높아보이지는 않는다. 제작비가 4500만위엔이 투자돼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 관광자료를 보니, <후한서>를 빌어 츠산밍션은 중국민간의 보호신일 뿐아니라 일본, 한국, 심지어 페르시아(波斯), 아라비아(阿拉伯) 등지의 수호신으로 소개한다.<他不仅是中国民间的保护神,也是日本、韩国,甚至波斯、大食(阿拉伯)等诸多国家民间的保护神> 우리나라에서 밍션을 섬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자료를 믿기 힘들다. 옛 고서가 실제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 알아볼 일이다.

 

 

츠산밍션 바로 밑에서 아래를 내려보면 가파른 수백개의 계단이 보인다. 양 사방이 다 확 뚫려 있어 시원하기 그지 없다.

 

 

츠산밍션 아래 네 구석에는 수호 장군들 조각상들이 있다. 삼국지의 짜오윈(赵云)과 꽌위(关于)가 떡 버티고 서 있다. 청룡언월도를 든 꽌위 뒤로 마을이 보이고 멀리 바다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츠산밍션에서 내려다본 장보고 전기관(传记馆)이다. 츠산 풍경구 곳곳에 장보고의 흔적이 깃들어 있지만 이곳이야말로 장보고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한눈에 보이는 기념관 모습이 참 아름답다. 회색과 붉은 단청색이 서로 어울리고 주위 초목과도 조화롭게 자리잡은 장보고 기념관으로 가볼 참이다.

 

 

'장보고 대사의 도전정신을 기리고 배우고자' 세운 한국청소년 연맹의 해상기행 방문기념비가 입구에 있다. 아마도 드라마의 영향이 '해신을 꿈꾸며'라고 했나 보다. 따지고보면 츠산밍션이 바로 바다의 신이 아닌가.

 

이 지방의 상징적인 신의 존재인 츠산밍션은 신화 속에 살아있고 바로 살아있는 신이야말로 바로 장보고가 아닌가 싶다. 우여곡절 끝에 당나라에 와서 성공하고 3국의 해상무역을 주도한 장보고를 '신'이라 부르는 것은 그의 영웅적 삶과 정신적 가치를 높히고자 하는 게 아닐까.

 

 

장보고 전기관, 그의 일생을 기념하는 곳이다. 그 입구 길은 아주 소박하다. 화려하지 않고 푸른 나무에 그저 둘러쌓인 건물이어서 마치 어느 한적한 시골 집을 다니러 간 느낌이 든다.

 

 

장보고 전기관 담벼락 역시 소담하다. 츠산밍션을 가릴 듯 말 듯 얼핏 햇살을 머금고 빛나는 나뭇가지들도 정겹다.

 

 

입구 맞은 편이다. 신화 속의 밍션(明神)은 복을 주고 사해(四海)를 보우하며 역사 속의 따스(大使) 장보고는 삼방(三邦)의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삼방이란 3국 한 중 일을 말함일 것이다.

 

 

 

장보고 전기관의 휘호가 참 부드러워 보인다. 화려하지 않고 아담하게 꾸민 소박한 집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든다.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인공호수가 있고 물고기 먹이를 1위엔에 팔고 있다.

 

 

드디어 아담한 집 마당에 들어서니 8미터 높이의 장보고 동상이 우뚝 서서(矗立) 반갑게 맞이 하고 있다. 햇살을 등지니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영웅의 풍모와 당당한 기품이 확연히 전해진다.

 

 

의젓하고 당차게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이다.

 

 

장보고전기관(张保皋传记馆)에는 장보고에 관한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는 곳이다. 그가 당나라로 온 배경이나 무녕군(武宁军)에 참전한 사실, 츠산 법화원을 건립했으며 칭하이쩐(清海镇)을 설립했고 해적을 소탕(扫平海盗)하고 노비 매매를 금지했으며 해상무역을 발전했다는 내용들이 설명돼 있다.

 

 

대체로 평이한 내용들이나 특이한 점은 '이사도의 난'을 평정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사도'는 산동반도에서 고구려 유민의 나라를 세운 이정기 가문의 후예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매우 곤혹스런 반역의 집단이겠지만 북방에서 내려온 고구려 민족에게는 스스로의 힘으로 무장하고 산동지역에 오랫동안 자신의 터전을 마련하고 지켜온 역사이기도 하다. 

 

신라인 장보고가 당시에 중국 무녕군에 참가해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것이 아이러니일지는 모르나 당시 장보고에게 오늘날의 민족의식이나 국가관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에서 기증한 장보고 인물화라고 한다.

 

장보고 동상 앞에 서니 그 큰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장보고의 정신과 출중한 능력과 지혜로부터 우리나라 역사의 한 장을 담당하고 있는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장보고 전기관에서 바라본 츠산밍션이다. 넘치는 햇살에 동상의 모습이 마치 신화처럼 흐릿하다.

 

 

살아있지 않은 신화와 살았던 인물이 서로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현실과 신화 속을 오가고 있다는 감상은 나만의 것인가. 밍션보다는 낮은 곳에 가깝게 뒷모습을 보여주는 장보고 동상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신을 봤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관광상품이겠지만 중국 땅에서 우리의 문화를 보면 문득 그리워진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그대로 담아가고 있는 우리나라가 말이다.  

 

 

장보고를 만나고 돌아나오는 길이다. 앞 쪽 두사람은 우리 일행이고 뒤에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은 중국인이다. 장보고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은 서로 다를 것이다. 생각해보고 알아보고자 하는 열정으로부터 기쁨을 느끼는 만큼 장보고는 각자에게 살아있을 것이다.

 

참 찾고 싶었던 곳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올 한해 기분 좋은 일이 많을 듯하다.

 

산동성 웨이하이(威海) 지역 룽청(荣成)에 전설로, 역사로, 인물로, 평화로 살아있는 장보고를 만나볼 것을 추천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금빛모래사장을 가진 웨이하이 국제만 해수욕장과 CCTV 어린이셋트장, 도교적 분위기의 섬 유공도, 야생동물원, 진시황의 청산터우(成山头)까지 3~4일 코스의 한여름 휴가코스로 나쁘지 않다.

 

웨이하이를 가게 되면 장보고를 잊지 말고 꼭 찾아보시길 바란다.

 

글|사진^여우위에 newonoff@한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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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원.... 이젠 짱깨놈들 장보고까지 지네들 인물이라고 왜곡하는 건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직 그렇게 심각하게 우려할 정도는 아닌 듯합니다.
흐음-;; 짱깨네땅은 별로업어요- - 그섹히들 삼국지도 완전히부풀려놓은거- - 위 촉 오- -
좆도안데요 십섹히들이- - 이제 독도도 지네땅이라 우기며 일본이랑 싸울듯- -
십섹기- - 저것들은 지들역사가 없으니깐 쪽팔려가지고 남의역사왜곡하네- -
위 촉 오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을 편향되게 부풀린 건 삼국지연의 라는 소설에서이겠지요.
독도문제! 에 대해서는 여전히 삼국의 양심적 인사들에게는 공동의 관심사이지요. 그건 근대역사에서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소행과 연관이 있으니,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전향적인 삼국의 노력이 필요하리라는 게 개인 생각입니다.....욕으로 대응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동북공정의 일환이지.. 장보고는 중국을 위해 싸웠으니, 중국인이라고 주장할 것이고...장보고를 통해 한국을 중국의 소국처럼 추급하려는 .....
중국이 여러 역사와 영토, 민족 관련 공정들을 통해 자신의 중화주의를 유지하려는 의도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릇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저도 제 블로그 글에서도 가끔 제 생각을 이야기했지만, 흥분할 일이 아니라 정부와 학자, 민간단체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 봅니다.
만약 중국정부나 (어용)역사가들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비과학적인 동북공정이라면 오히려 우리에게 더 유리합니다....후후
ㅅㅂㄻ 들이 해신까지 니네꺼여 아예 미국니네땅이라고하고 미국이랑 맞짱떠라
음~~~미국과 싸우기야 하겠어요? 대만문제라면 모를까!
아 중국 시퀴들 진짜 뒈질라고 환장 햇네 --
에구~참내...
한국족보 샹 깔본느거여? 청나라1� 조공몇번 바�다고 니네 속국이요? 짜장면이나 쳐먹고 짱박혀있어 중국 니마들 -- 우리는 단합민족 이거든? 알간???? 5천년 역사를 중국 짱께 느그들이 왜 뭉게냐고 --
음~
중국에 이런 역사의 흔적이 있었다니 어디 까지가 사실인지?? 아무튼 신라인 장보고라는 점에서는
자긍심이 느껴지네요 다시 한번 장보고란 인물에 대해서 해남의 해신 장보고와 중국의 장보고가 어
떻게 다른지 비교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것 아닐까요? 아무튼 수고 많으�습니다 ^-^
감사합니다. 중국에서의 장보고와 우리의 장보고에 어떤 다른 역사적 가치가 있을까? 저도 더 배우겠습니다.
잘 보고 퍼감다
감사합니다.
짱깨?악플을 달고 잇는 색히들은 다 초딩이다.미국이랑 맞짱뜨라고?그래도 미국이 좋은건 아나보네..쥐색히..미국이라면 똥도 좋다는 한국 색히들~@@@ 중국이나 맨날 욕하고 한국정말 좋앗는데.
이런사람들땜에 점점 비호감이다.~@@
악플이란 느낌까지는 아닙니다. 초등학생들이 제 글에 댓글을 단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릇된 역사인식, 세계인식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는 진취적인 공감 하나만 가져간다면 좋겠습니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배워가면서 커나갈 기대하지요. 욕하는 악플, 음~ 중요한 건 욕 그 자체가 아니라 욕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중요할 듯합니다. 부디 제대로 된 욕을 용기있게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_^
여름 방학때 갔었는데,, ㅋ 이곳만해도 엄청 넓어서 땀이삐질 ㅋ 아 그리고 이곳 잘다니다 보면 음악나오는 신기한 돌이 있던데..ㅋ 이곳 분수쇼는 정말 대단했어요 ㅋ 글죠? 중국인들 의외로 착하고 순박한것같아요 ㅋ 아 추억이 새록새록 ㅠ 그립다 그런데 중국이 역사 왜곡만 안하면 좋을탠데 중국 국민들은 착한것같은데 윗놈들이 왜그러는지 중국이랑 잘지내쓰면 싶은 소망이 ㅋ
여튼 산동성 여행 다시가보고 십당 ㅠㅠ
여름에 갔었군요. 땀 많이 흘렸겠군요. 그렇지만 정말 보람된 여행이었으리 생각합니다.
중국이랑 잘 지내야지요. 보통 중국사람들은 우리처럼 그저 평범합니다. 후후
감사합니다.
중국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아 여행하는 것은 공부하는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네~중국역사체험여행. 기회가 되면 꼭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해주면 좋겠지요. 물론 우리나라 역사체험 여행도 꼭 잊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_^
해신 장보고가 태어난 완도 청해진에도 이러한 기념관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중국과 한국을 잇는 가교역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사진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해신 장보고가 우리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수 있도록 좋은 여행기 부탁드리겠고.... 또 향후 21세기 중국과 일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한민족이 살아가야 할지 아니 살아남아야 할지... 과거 장보고의 활약 즉 한중일 삼각무역을 통해 국가를 번영시켰던 소중한 깨달음/가르침/정신을 이 나라 한국인들이 좀 더 보고 배우고 또 느꼈으면 합니다..
네~ 우리 아이들에게 보다 정확하고 살아있는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장보고가 지금 한민족에게 위대하게 보이는건..그시대에 국제..무역을 휘잡아 신라국 위상을 드높였다 이거겠죠..님이말씀하신대로..그당시 장보고에 역사 민족의식 무리라고 했으나..그건.장보고를 합당화 라밖에 생각안드네요..지송..이정기 장군은 고구려 유민후예로 ..그역시 당녹을먹고 있었으나 분명한건.당에 진심으로 충성하지않고 고구려..민족의식이 어느정도있었죠.. 그당시만봐도 발해와 평화곤계 교역을 지속적으로 지원했던점이..그렇고요.안타까운건 장보고..고선지 장군 이정기장군은 같이 당의녹을 먹고 성공한건 사실이나..이정기장군은 고구려 인이란걸 잊지않았고 역사적 행적을봐도그렇고 그러나 고선지 장군은 모함받고 죽을때까지.당에충성을 했던점이죠..장보고 도그렇구요 그리고 이정기장군및..발해 장문휴장군..이정기후예들..국민들이 잘모르는점이 안타깝죠 어찌보면 장보고나 고선지..행적이 뚜렸한건 당에게 충성했고 그기록을 유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거고 연개소문..이하 고구려 백제 ..장수들은..그흔적이 거의 없고.김부식의 기록도 거의 엉터리란점..역사는 승리한자 것이기때문에.생각 되지만 님말씀대로 그당시 정세로보아 장보고에 민족의식 요구는 무리라고 했으나 신라의 나당연합도 그렇고..그렇지만..님말대로 그랬다면 고구려 는 민족의식이없었으면 진작에 신라 백제를쳤을겁니다.. 그리고..어느정도 그당시민족의식이 있었기때문에 백제 고구려는 부여씨 삼한 핏줄이였기에 동맹을 맺었구요.. 결론으로 말하자면..장보고장군이 좀더 대장부였다면 ..신라와 겨루기보다..당에게 도전을했어야 하죠..장보고 장군이 나쁘다는게 아니라..좀더 슬기로웠다면..당이 처리못한 이정기 장군후예들 아니 고구려 장수들 1299여명넘게 왜죽였어야했을가요??아무리 민족의식이 없다지만 신라노예 비참함보고 사직한 그가 왜..그래야만했을까요 이정기는 고구려 멸망 후 당에 충성하며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들(고선지, 왕사레, 연남생, 연헌성)과 그 격이 달랐어요. 그는 고구려 멸망 100년 후에도 고구려 정신을 잊지 않았으며, 다른 고구려 유민들이 당에 충성하여 출세하고자 할 때 그는 고구려를 부활시키고자 하였거였어요

그의 정신과 노력은 고선지,왕사례와 비할 바 못된다고봐요. 오히려 이 점이 이정기 장군의 위대함이요 뛰어남이라고 봅니다..그러나 국민중 이정기아는 장군은 얼마나될까요..단지 당에반항 한 이정기이납이사도의난 으로만 기억할뿐...,,,.
영건님의 좋은 지적, 날카로운 문제 제기가 돋보입니다. 정말 소중한 의견입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장보고에 대해 평가한 점은 깊이 사고하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좀더 고구려의 후예들의 중국에서의 활동에 대해 논의하고 더 많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저도 학교 수학여행으로 작년 6월에 이곳에 다녀왔었는데 엄청난 크기의 동상과 규모 등에 압도당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될만큼 하나하나마다 크고 넓더군요. 그 음악분수도 봤는데 참 멋있었고, 그 상안에서 불길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정말 멋있고, 팔선구, 해저도시였나 그 수족관과 입구가 동물들 막 암벽에 조각되있던 동물원과 위해 그 부자들만 사는 깨끗한 도시였나 거기도 가보고.... 참 많은 것을 경험한것 같았습니다. 와족이라는 그 사람들도 봤구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더 가보고 싶네요..

p.s 그리고 제 블로그에 그 음악분수 공연과 불 뿜는 것들 동영상으로 있는데 혹시 필요하시면
가져가세요.. 사진 같은것들 도움이 된신다면요...
blog.naver.com/ksmking89 의 중국 수학여행 이라는 게시판에 있습니다.
정말 멋있지요?
미리내님 블로그에 공연동영상 재밌네요.....감사합니다. ^_^
저도 법화원 몇번 갔었는데요...옥의 티라면..
장보고 동상에 왼손에 칼을 들고있는데..
당근, 칼집을 잡고 있어야할텐데.....자루를 잡고 있더군요..
네 맞습니다...그런데 어떤 분 말씀이 그건 적의가 없음을 뜻한다고 그러더군요.....^_^
산동성 여러곳들을 가본적이 있는데 롱청은 못가봤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고 싶군요. 소중한 자료 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롱청과 웨이하이 부근 가볼만한 곳이 꽤 있습니다...
캐캐묵은 옛날이야기 정말 지겨워, 언제까지나 몇백년전 몇천년전 호랑이담배 피우는 이야기하고 자부심가지는가?
캐롤님, 지겨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_^
저의 학교 여기 산둥성으로 30만원주고 수학여행 다녀왔습니다..6월달에..
이사진 보니깐 다시 기억이 되살아나네요..ㅋㅋㅋ
저 싸이 홈피에 사진 있으니깐 보세요~
그렇군요. 싸이에서 어딘지 어떻게 찾죠? ㅎㅎㅎ 감사합니다. ^_^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