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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관(魯先寬) 시인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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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2020. 5. 17.

노선관(魯先寬) 시인을 생각한다

 

                                                                           

                                                                                                                                                                                          윤 제 철

 

1.들어가는 글

 

  노시인은 1939년 충남서산에서 태어나 공주사범학교를 졸업,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하셨다. 월간문학공간으로 문단에 데뷔하셔서 한국문인협회 회원, 공간시인협회, 서울교원문학회 지도위원,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셨다. 시집으로는산비둘기,천수만 이야기외 다수가 있다.

  자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장안 4동 현대아파트 12802호에 다년간 거주하셨다. 필자가 19833월에 장안2동 대명연립에 이사하여 19939월에 사당동으로 이사할 때 까지 10년을 산 동내여서 합석을 할 적엔 기억을 더듬어 떠올리곤 하였다.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의 영원한 지킴이로써 우경 노선관(魯先寬) 시인을 생각해본다.

 

2.함께 했던 시간들

 

  노시인과의 인연은 1995년 초부터였다. 199412월에 창립된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였으니 발기 회원과 얼마 차이가 없었다. 그후 1996년 서울교원문학회가 만들어지면서 동참하셨다. 성품이 올곧고 겸손하셔서 결코 자신을 앞세우거나 모가 나는 언행을 보여주시지 않았다. 모임에도 될 수 있는 한 참석하셨고 단체의 이익을 위한 많은 의견을 제시하셨다.

 

사랑방시낭송회 카페가 만들어졌던 200351일 당시 70회 때는 공식카페로 인정을 받지 못했었다. 일부 몇 분만 접수하셨고 거의 대부분은 시첩을 만드셨던 김건일 회장의 블로그로 접수되었다. 가능하면 개인 블로그 보다는 공식카페로 사용되기를 권고하셨고 이행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셨다. 결국 20063월에 112회 때부터 노시인은 시낭송회 내용을 카페에시낭송회스케치방을 만들어 올리기 시작하여 다년간 수고하셨다.

 

91회부터 백한이 시인이 회장으로 선임되어 일방적으로정동이야기지하 카페로 장소를 옮겨 진행했었다. 기존회원은 거의 불참하였고 백회장의 지인으로 존속되었을 때 노시인은 비로소 자신의 추천이 잘못되었던 것을 인식하고 끝까지 지켜야겠다는 의지를 비치시며 노시인과 필자는 시낭송회를 참석하였다.

100회째를 앞두고 백회장은 세계시인대회를 한국에서 유치를 면분으로 회장임기를 다하지 못하고 내놓았다. 그로인하여 100회를 다시 기존회원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하순명 시인이 회장으로 일하셨을 때 2018년 문학기행을 초대 받아 참석했던 자리에 노시인을 만났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단체모임을 하나씩 정리를 하고 있다는 말씀을 꺼내셨다. 그래서 필자는그러시다면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까지 정리하실 건가요?산행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 중에 한 내용이다. 대답대신 빙긋이 웃으셨다.


중환자실을 나와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이번 주에 집으로 모신다는 노시인의 뜻을 사모님께서 전하셨고 20191128일 아버님에 대한 염려에 감사하다는 것과 짧은 대화는 가능하다는 내용을 노시인의 따님이 문자로 보내온 소식을 보고 박수진 시인과 함께 아산병원 동관 1010335실로 찾아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동안 건강이 하락되어 휠체어로 산책중이시던 노시인께서 먼저 발견하시고 우리를 부르셨다. 따님에게 우리를 소개하시면서 반가워하셨다. 오래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따스한 정이 묻어나는 만남이었다.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낭송회 장소로 사용하던 초콜릿 카페가 용도변경으로 더 이상 사용이 어려워져 장소를 김봉균 총무님이 물색한 곳 중에 가장 나은 곳으로 정한 곳에 박수진 부회장, 이오례 운영위원장이 함께 찾은 날은 2020221일이었다. 50여석 되는 넓은 공간에 시간제한도 없어 만족하여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노시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필자는 전화를 통하여 평소의 다정다감하셨던 음성을 들었다. 안부를 여쭙고 두 분들과도 대화의 시간을 나누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냈던 그 순간이 이승에서 우리의 마지막 인연이었다

 

2020411일 오후 노선관 별세, 서울성모병원, 발인은 13일 오전으로 조선일보 부음란에 소식을 알렸음에도 헤아리지 못하고 장례 후 아드님을 통해 사망소식을 들었다. 불편을 드린다며 널리 알리지 마라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늦게 알려드려 송구하다는 말씀과 함께 알려왔다.

회원들은 단톡을 통하여 코로나19로 시낭송회도 못 열고 있던 차에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평소에도 늘 그러셨던 것처럼 오래도록 소통이 중단되었던 모두가 하나가되는 계기가 되었다. 몸은 비록 이곳을 떠나셨어도 우리와 함께 자리하시리라 믿는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노시인의 블러그가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에는 아들의 문을 닫는다는 인사말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추억의 끝자락에는 2019415일에 있었던 제281회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내용이 담겨있었다. 초콜릿 카페 맨 앞자리 소파에 앉은 자리에서 오른쪽에 박성순 시인, 왼쪽에 박숙자 시인이 함께 앉아 계셨다.

강경화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이 입후보 사절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당선되어 찾은 그 모임이었다. 말끔하게 정정을 하시고 시첩을 들고 시낭송에 임하셨던 모습을 담은 사진도 그날을 필자의 가슴에 담았다. 시낭송회 뒤풀이가 끝나고 촬영하였던 세종아케이드 단상에 회원들과 즐거운 한 때를 지켜보셨다




 3,나오는 글

 

  아직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늘 이웃집 아저씨 같고 가끔은 형님 같았던 노시인은 시낭송을 하시면서 시가 잘 안 돼서라며 겸언 적어하셨다. 그 때마다 좋은 시를 낭송해주셨다. 오랜 날들을 동행했던 문단의 길을 한편의 영화 속에서처럼 걸었던 순간들이 교차하는 아쉬움을 놓을 수가 없다.

  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 281회를 마지막으로 카페에 올려놓으신 시돋보기안경 너머로를 되새기며, 부디 새 세상에서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염원하시던 뜻 이루시고 지내시기 바라며 노시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필을 놓으려 한다.

 

20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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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안경 너머로



              노 선 관

 

이미 삭아버린

수수깡안경으로는

글자가 보이질 않아

돋보기를 걸치고 앉아

그대 '편지'를 읽습니다.

 

뻐꾸기 심란스럽게 울던 날

입 언저리 까맣도록

뽕나무 열매를 따먹으며

배실배실 웃던 옆집 순이가

보리밭 고랑으로 숨자고 다그치던

옆집 그 순이가

 

못 들은 척 도망치던 나를

얼마나 용렬하다고 생각했을까

 

지금껏 후회스러운

유년시절을

가슴 후둣해지는 그대 '편지'

읽습니다

 

돋보기안경 너머로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