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철 블로그

아름다운 생활 공간, 활기찬 활동 공간

화유중개일(花有重開日) 인무갱소년(人無更少年)

댓글 0

문학과산첵-수필

2020. 7. 19.

수필

 

화유중개일(花有重開日) 인무갱소년(人無更少年)

이휴재(수필가)

 

꽃은 거듭 피는 날이 있으나 사람에게는 다시 소년이 오지 않는다고 옛 시인은 노래하였다. 젊었던 시절에는 별 무관심했던 말이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깊이 느껴지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진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도 한다. 나이 들었다고 시간을 허송할 수는 없다. 마음만 먹고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을 정리하고 계획을 세워 하나씩 실행에 옮겨야겠다.

경치 좋은 산수 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강산풍월주인(江山風月主人)이라고 자부한다. 나는 그곳에서는 살지 못하고, 지금 사는 곳이 인구 천만이 넘는 서울의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이지만, 비교적 조경이 잘된 아파트로 이사와 산지도 십 년이 넘었다. 사시절(四時節) 아파트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계절의 변화를 가끔씩은 놀라면서 바라기도 한다.

봄철이면 엷은 녹색과 고운 꽃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하였고, 여름에는 짙은 푸름으로 한껏 더위를 잊을 수 있게 하였는가 하면 가을엔 형형색색의 단풍을 멀리 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또 겨울 함박눈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꽁꽁 얼어붙은 나무들이 봄엔 어김없이 잎을 피우고, 전에 피운 똑같은 색깔의 꽃을 다시 피우는 것을 보면서 그 신비스러움에서 인생을 보기도 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아무에게서도 방해받지 않는 나의 자유재산이려니 생각하니 행복하다.

옛 시인은 아마도 이런 느낌을 만물정관개자득(萬物靜觀皆自得, 만물을 고요히 보고 있으니 다 나의 소유다) 사시가흥여인동(四時佳興與人同, 사시의 아름다운 흥을 남과 더불어 같이한다) 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자기의 아름다운 소유물, , 기쁨을 다른 사람과 같이 즐긴다는 것은 그 흥과 즐거움이 훨씬 배가 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반드시 좋은 친구가 있어야 한다.

무술년 한 해도 얼마 남겨지지 않은 오늘, 초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아침, 버릇처럼 창밖을 내다본다. 간밤에 떨어진 포도(鋪道) 위의 수북한 낙엽이 비에 젖고 있다. 고운 단풍이 퇴색하여 비에 젖는 모습은 쓸쓸함의 대상만이 아니다. 신록의 아름다움과 녹음으로, 또는 단풍의 예쁜 빛깔로 자기가 해야 할 임무를 충실히 마치고, 이제 흙으로 돌아가 새로운 잎을 피우려는 나무의 거름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참으로 위대한 생애를 마치려는 거룩한 희생의 순간으로 볼 일이다.

그러한 눈으로 낙엽을 보는 사람들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는 우리의 남겨진 계절이 결코 쓸쓸하거나 외롭다는 생각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회와 회환으로 남은 인생을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기간이다. 소년의 시절이 다시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갖지 않아도 된다. 수천 년 이어온 인간의 역사도 식물의 역사와 마찬가지이다. 단지 식물은 대개 일 년 만에 꽃을 다시 피우지만, 우리 인간은 그 순환기가 조금 늦을 뿐, 우리도 역시 부토가 되고 다시 피어나는 잎과 꽃後孫의 색깔을 더욱 아름답게 할 낙엽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죽음 또한 슬프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인무갱소년(人無更少年)이란 말, 더 멀리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