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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엽 시인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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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2021. 7. 10.

                                                           황경엽 시인의 블로그 사진

황경엽 시인을 생각합니다

 

 황경엽 시인은 우리와 함께「광화문사랑방시낭송회」에 참여한 것은 2015년 6월 13일에 카페회원으로 가입한 이후부터였습니다. 부산 출생, 필명은 산지기,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시집으로는「산지기 움막에서」,「그 날의 기억이 없다」외 다수, 공저로는「바탕시 17집」,「광화문시인들 9집」이 있습니다.

 

 황경엽 시인은 항상 얼굴에 미소를 띠고 우리를 맞아주었고 명랑쾌할한 성격으로 위트와 유모가 넘쳤고 자상하여 모임에서는 분위기 메이커였으며 궂은일을 맡아하셨던 모습이 눈앞에 선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별명은 시낭송회 뒤풀이에서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타주던 황경엽시인을 우리는 즐겨 황 마담이라 불렀고, 정기 문학기행을 가면 주위 시인들을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에 앞장섰습니다.

 

 뿐만 아니라 건설회사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2018년 필자가 뵌 곳은 사당동 동네 아파트공사 현장이었는데 동료와 두루 살피는 성실한 직장인이었으며 또한 자상한 가장이었습니다. 2020년 1월 11일 290회 광화문사링방시낭송회에서 시인들의 고마운 마음을 감사패를 드렸습니다. 특히 이날은 광화문시인들 사화집 11집이 발간된 날이었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시낭송회가 열리기를 1년이 넘게 애타게 기다리며 코로나19가 잦아들기를 바랐지만 시낭송회 한 번 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암으로 고생하신다는 연락을 받고도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한 불찰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6월 29일 김봉균 총무님이 먼저 황시인 문병을 다녀와 병세가 안 좋아 댁으로 모셨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뵙자고 벼르다가 끝내 비보를 7월 9일 접하고 말았습니다.

 

 제4유행으로 하루 감염자가 1천3백명이 넘어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으니 결국 돌아가신 다음에도 조문조차 허락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고 안타까움은 더 말할 나위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삼가 고 황경엽 시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

 

2921년 7월 10일

윤 제 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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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엽 시인의 블로그에서 2020년 12월 13일 끝자락에 올린 시 한 편을 함께 읽겠습니다.

 

 

꼬마가 꼬마에게

 

황 경 엽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

또래들 만나서인지

낯가림도 없이 얼키고 설켜

찰지게 버물려지다가

 

​조금 큰 녀석이 키 작은 아이에게

은근하게 나이를 묻습니다

 

​답을 듣고서는 예상대로라며

그럼 내가 형이야

넌 동생이니 그냥 형이라 불러

아니 너는 여자니 오빠라 불러

그 옆에서는 자기 보고는

언니라 부르라는 그 아이 동생이 있고

 

​정말 한 식구인 것처럼

조심스레 손잡고 챙겨서

미끄럼틀 계단

달달하게 오르는 모습이 정겨워

나도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몇 살 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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