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철 블로그

아름다운 생활 공간, 활기찬 활동 공간

1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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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다랭이논

시 다랭이논 이 혜 숙 늦봄이면 산골에 구불구불 다랑논이 분주하다 늦은 모내기에 바쁘게 움직이는 아버지의 힘겨운 몸짓 자박자박 논물에 얼비치는 검게 그을린 당신의 얼굴 아픈 허리 억누르며 촘촘히 모를 심는 아버지 볼품없는 논은 아버지의 정성을 먹고 햇빛과 빗물을 마음껏 받아먹으며 가을을 기다린다 아버지의 고된 노동이 아프게 스며든 다랭이논 이제는 농사짓는 일손이 많이 모자란다. 그나마 젊은이는 거의 떠나고 노인들이 많다. 요즘은 그런 불편을 덜기 위해 이랑기라는 모내기 기계를 사용하지만 좁은 다랭이논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랭이논에서 늦은 모내기에 분주한 아버지의 몸짓, 촘촘히 모를 심는 아버지, 아버지의 정성을 먹고 가을을 기다리는 볼품없는 논, 고된 아버지 노동이 아프게 스며든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냥..

1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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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못 잊겠어요

시 못 잊겠어요 박 경 호(시인) 잊겠다는 말을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그대를 잊겠노라고 끝없이 되 뇌여 다짐하는데 푸른 바다위에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을 차마 막을 수 없어 그 파도에 몸을 던지고 싶다 죽더라도 그 숨소리도 한 알의 보석 같고 코끝에 스치는 그 향내는 내 숨통을 끊어 놓을 듯 가슴을 후벼 파는데 어찌 잊으리 차라리 죽으리라 그대를 잊으려니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이 잊는 것이다. 잊겠다는 건 고의적으로 잊을 결심을 하는 것이다. 한용운 시인은「나는 잊고저」에서「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잊고저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라고 표현하듯「파도처럼 끝없이 밀려오는/ 그리움을 차마 막을 수 없어/ 차라리 죽으리라 그대를 잊으려니」라고 고백하고 있다. 한용운 시인..

1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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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나에게 오는 봄

시 나에게 오는 봄 이 춘 명(시인) 겨울 외투를 빨다 추운 날 감싸주던 고마움 채곡채곡 개어 장롱 깊숙이 넣는다 장갑 목도리 털모자 바람 막아주던 따스함 곱게곱게 개어 다시 겨울을 기다린다 나를 감싸는 명함을 벗는다 이름 앞에 달린 명예 사진 밑에 깔린 프로필 발품으로 사들인 얼굴들 한겹 한겹 내려놓고 오로지 나였다 겨울이 가고 삼월 모종을 위해 화단 일구듯 다시 나로 돌아와 빈 땅에 서서 초심으로 모든 것에 답례하는 봄 봄을 맞는다. 두껍게 나를 감싸던 여러 가지 껍질을 벗는다. 겨울 외투, 장갑 목도리 털모자, 명함, 명예, 프로필, 얼굴을 내려놓는다. 다시 나로 돌아오는 봄이다. 추워도 더워도 나를 감싸는 많은 종류의 물건들이 없이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봄은 새로 시작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

1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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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연가(戀歌)

시 연가(戀歌) 박 근 원(시인) 어쩌다 생각나는 그 사람 생각에 아침이슬 마를 때가지 하느작거릴 줄이야 첫사랑이란 나뭇가지에 돋아났던 연둣빛 숨결 초록 이파리에 서리가 내릴 때까지 못 잊을 사람이었다면 들판에 뿌리박은 억새풀처럼 개울 물돌에 붙어사는 다슬기처럼 붙들고 보내지 말았어야지 머-언 먼데로 떠나버린 한겨울 입김처럼 살다 떠난 그 사람을 생각이 나면 아침이슬이 마를 때까지 느리고 가볍게 자꾸 흔들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봄날 연둣빛 숨결처럼 다가왔던 첫사랑을 추억의 갈피에서 꺼내 들여다보듯 하는 첫사랑이다. 경험도 없고 그저 처음 만났던 그 사람을 보냈다. 이제 와서 그리워한들 무슨 소용인가, 먼데로 떠나버린 것을, 어디에서 사는 지도 모를 그 사람이다. 다시 겨울을 보내고 봄이 온다. 그 사람..

1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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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마법의 눈

시 마법의 눈 박 숙 자(시인) 아침에 눈을 뜨니 창밖엔 소나무, 산수유 하얀 옷을 입고 웃는다 세상은 온통 순백으로 마술에 걸려 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세상 눈 꽃밭에서 마음껏 뒤놀며 천사처럼 곱디곱게 살고픈 데 마법에 걸린 세상은 잠시였다 오염되고 칙칙한 까아만 세상이 또 고개를 내민다. 세상은 대기오염으로 까맣게 뒤집어쓰고 있다. 그 맑던 공기마저 미세먼지가 가득하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나마 잠깐이지만 하얗게 까만 세상을 가려서 뽀얗게 만들어 주는 눈이 있어 다행이다. 깨끗하게 청소하면 좋으련만 그러하지는 못해도 안 보이는 동안 마술을 부린 것처럼 마음이 편할 수 있어 좋다. 순간을 맞이하면서 지나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다.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몰고 가서 ..

1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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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가을 풍경

가을 풍경 이선희(시인) 가을의 손짓은 내게도 함성이다 청자 빛 깊은 하늘 조각구름 빚어내고 나무마다 채색 옷 가득 널어놓고 향기 익은 꽃술에 취하듯 입 맞추는 넘실대는 들판 황혼녘 열매마다 얘깃거리 솔솔 단내 나고 어느 품에 안겨갈까 선잠 깨어있다 두 팔 크게 벌린 이 산과 저산 사이 바람이고 붉은 메아리 소리 노란 은행잎 색 빛바랜 코트에 가을 한 장 붙이고 걸어가면 길마다 바람이 낙엽들과 수다하고 주머니 속 추억들이 가을은 참 예쁘다는 수채화를 던지며 같이 걸어간다 가을이다. 다른 계절은 다가가서 부르고 싶지만 가을은 먼저 불러준다. 그냥 살그머니 속삭이듯 부르지 않고 함성을 지르듯 우리를 부른다. 하늘부터 들판의 나무, 꽃, 열매가 부른가 하면 이산과 저산까지 더 큰 몸짓으로 불러댄다. 노란 은행..

19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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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산책-시 빈 깡통

시 빈 깡통 최 동 현 빈 깡통을 무심코 발로 찼다 깡통은 아픈 소리를 내며 저만큼 굴러간다 나도 빈 깡통처럼 차여서 아픈 소리를 내며 저 멀리 굴러간 적이 있다 나에게 빈 깡통이 된 사람은 없을까 아픈 소리를 내며 아니 아픈 소리도 내지 못하고 멀리 굴러간 사람은 없을까 빈 깡통을 주워들고 한참을 귓가에 대어본다 빈 깡통처럼 길거리에 버려져 굴러다니는 존재를 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보이는 빈 깡통을 발로 찼다.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통을 호소하는 비명이나 신음을 내는 소리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지 않고는 들을 수도 없겠지만 그 아픔을 모른다. 차인다는 것은 약자다. 강자로 하여금 무시 받고 짓밟히는 순간의 존재감은 사정없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것이 인간의 모순된 행..

30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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