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칸 한옥 김동수 명가名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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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싶다/한국의 고택

2016. 2. 19.

 

안채 대청

 

 

"한옥은 양옥이나 다른 건물과 달리 사람을 중시한다. 제대로 한옥의 멋과 맛을 느끼려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그 집에 사는 사람처럼 대청에 올라 먼산을 바라보기도 하고 방에 앉아 머름(문턱 보다 높은 창턱)에 팔을 얹고 마당도 봐야한다"라고 한다

전통한옥에서 부담없이 이런 행위들을 할수 있는 가옥이 정읍시 산외면에 있는 김동수 가옥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고택이나 오래된 가옥들을 좋아한다. 아내와 함께 설 연휴 마지막 날 이곳을 여행했다.

한옥과 어울어진 주변의  뛰어난 풍광뿐만 아니라 한옥의 아름다운 선, 집에 서린 주인의 성품과 정신 등을 느낄수 있어서다.

김동수 가옥은 대궐을 제외하고 현존하는 양반가 주택으로 99칸이 잘 보전된 곳 중 하나다.

호남의 대표적인 전통한옥으로 정읍 9경으로 꼽힐만큼 빼어나다. 하지만 밖에서는 그 아름다움을 잘 느낄수 없다.

가옥 안으로 들어서서 대청에 올라보기도 하고 머름에 앉아보기도 해야 진정한 매력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동진강둑 근처에서 본 연못과 김동수 가옥

 

큰 길가나 밖에서 보면 김동수 가옥은 한옥 마을중 한집이려니 생각할 만큼 시선을 붙잡지 않는다.

창하산(150m) 야트막한 산밑, 평평한 대지위에  99칸 가옥이 있으나 평면으로 보이고 전혀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99칸의 거대한 가옥이지만 마을 입구까지 와서도 그 규모를 가름하기 어려운 이유다

건축주인 김명관 金命寬(1755-1822)의 의지가 잘 담겨져 있다. 집이 앉은 곳이 오공蜈蚣리인데 오공은 지네를 뜻한다.

집 앞으로 동진강이 흐르고 있어 습한 곳을 좋아하는 지네의 습성을 잘 갖춘 곳이다. 지네는 다산다복을 상징한다.

주인장은 대대로 복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17세부터 10년간 집을 완성했다고 한다.

집을 지은 김명관은 이곳에서  12대까지 복을 누릴 곳이니 절대 집을 팔지 말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6호로 지정 된 이 집은 1784년 완공되어 지금은 7대손인 김용선씨가 관리하며 살고 있다.

김동수 가옥 옆으로 김명관의 둘째 아들이 지은 한옥에서 후손들이 살고 있다.

 

솟을대문과 호지집

 

솟을 매문 앞에는 밭이다. 그 밭에 나무를 배어낸 흔적인 거대한 뿌리들이 남아 있다.

집을 가리기 위해 숲을 조성한 흔적과 연못이 있다. 그리고 노비들이 살았던 초가인 호지집이 있다.

집 주변으로 노비들이 살았던 호지집이 8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두채만 남아 있다.

안채, 사랑채, 안사랑채, 행랑채, 안행랑채, 사당 등 99칸의 집이 잘 보전되고 있어 호남지역의 한옥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김동수 가옥 배치도

솟을대문

 

솟을대문은 행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낮아서 위압적이지 않다.

대문을 들어서면 담장이 있어 안채로 가는 시선을 차단한다.

오른쪽에 사랑채로 들어 가는 작은 문이 있다. 문 옆에는 오래된 향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사랑채 문

사랑채

 

사랑채며 집 전부가 깔끔하고 정갈하니 관리되고 있다. 대청마루는 반질 반질 윤이 나 있고 기둥은 고태가 흐른다.

대청에는 들어열개문(분합문, 문을 들어올려 천장이나 처마에 걸어 놓게 만든 문) 4개를 만들어 바람을 불러 들일수 있도록 했다.

겨울인데도 들어열개문을 열어놔 전혀 답답하지 않았다. 개방감과 시원함이 공존한다.

대청에 올라 보면 행랑채와 먼 산, 화단 등이 하나의 풍경이 된다.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함을 준다.

대청하고 방하고 연결된 곳도 들어열개문을 달아 개방감을 극대화 한 느낌이다.  마루 한켠은 가릿대를 대 등을 기댈수 있도록 했다

천장의 서까래 하나 하나 소나무의 무늬가 선명하니 아름답다. 행랑채에도 대청을 두어 청지기나 하인 등이 쉴수 있도록 아랫사람을 배려했다.

안방 머름에 손을 얹고 잠시 앉아 있으니 이댁 주인장이 된 느낌이다. " 이리 오너라" 라고 하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사랑채 대청에서 본 행랑채

행랑채

행랑채 곳간에 있는 농기구, 항아리, 작두, 덕석 등이 보관

안채(대청을 중심으로 좌측 시어머니 방, 우측 며느리방)

 

중문을 지나면 안채다. 중문에서 보면 안채는 ∩자형의 대칭형의 집이다. 안행랑채는 ∪자형으로 안채를 감싼다.

대청을 중심으로 시어머니 방과 며느리방이 마주본다. 대청마루는 금방 닦은 것 처럼 깨끗하고 윤기가 흘렀다. 방마다 많은 수납공간이 있다.

다락과 벽장이 많아 생활용품들을 잘 보관할 수 있도록 되있다. 벽장은 방에서 작은 문을 열고 드나들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벽장은 부엌위 공간을 활용해 만들고  집안의 중요한 물품들을 보관했다고 한다.

여자들의 섬세한 마음을 배려해 집을 짓지 않았나 쉽다. 12대까지 번성하라는 집주인의 의자가 담겨 있다.

 

 

맨위 사진은 안채대청마루, 그 아래는 며느리방의 모습 , 방에 또 하나의 작은 방, 우측 위는 부엌, 아래사진은 안방의 다락문, 벽장들

큰 방에서 부엌으로 연결된 문

시어머니 방, 부엌으로 연결된 문

 

부엌과 방으로 작은 문이 나 있다. 음식을 만들어 이 문을 통해 들여보내는 효율적인 구조다.

대청에는 사랑채 대청과 같이 들어열개문을 설치해 개방감을 극대화하고 시원한 바람을 불러 들이도록 돼있다.

안채 맞은편에 안행랑채가 있다. 안채 대청에서 보면 안행랑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인들의 일하는 모습이나 부름을 쉽게 할수 있는 구조다. 230년 전에 이렇게까지 고려했다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안채는 안 주인들이 지루하지 않게 살림할수 있도록 세심한 공간배치가 아주 돋보였다.

여타 호남의 고택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공간배치와 구조다. 사람중심의 한옥의 백미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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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에서 본 안행랑채

안 행랑채의 굽어진 기둥

지게, 맷돌, 덕석

안 행랑채 곳간의 항아리

나무를 깍아 만든 항아리 뚜껑

안채 대청

 

김동수 가옥의 항아리 덮개는 나무를 깍아 만들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항아리가 잘 깨지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나 쉽다.

 

아내도 안채가 맘에 드는지 한참을 마루에 앉아 행랑채를 바라 보았다.

 

또 하나 이 집의 특징은 사랑채에서 중문을 거치지 않고 안채로 드나들수 있도록 했다.

 

가옥구조에서 보듯 사랑채에서 사당 가는 쪽 공간으로 이동해 며느리방으로 가 사랑을 나눌수 있도록 배치했다. 

 

사당

안채와 안사랑채 뒤쪽에 있는 우물

 

안채 옆으로 사당이 있다. 작은 문을 통해 사당으로 갈수 있다. 안채와 안 사랑채 뒤쪽으로 우물과 장독대가 있고 넓은 밭이 있다.

채소와 반찬거리를 재배하는 밭을 여자들이 기거하는 집 뒤로 배치해 효율적으로 밭을 경작하도록 했다. 공간활용이 과학적이다.

우물은 물이 말라 있다. 안채 옆으로 6칸의 안 사랑채가 있다.  안주인들의 지인이 방문했을때 생활하는 공간이다.

또한 출가한 딸이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안 사랑채 앞에는 넓다란 정원이 있다. 

 

안사랑채

안사랑채 뜰에서 본 가옥 전경

 

창과 문이 만드는 무수한 풍경, 공간들이 문과 문으로 연결되고 공간의 끊김이 없다. 

자연을 끌어와 그 자연과 어울어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냈다.

여자를 배려한 많은 벽장, 하인 등 아랫사람까지 배려한 행랑채 대청 등 사람중심의 공간배치가 빼어났다.

잘 관리하는 사랑채, 안채 등 대부분의 집을 개방하여 방문객들이 부담없이 고택의 정취를 느낄수 있도록 했다.

흔히 보아온 호남 양반가와는 매우 다른 독특함과 효율적 공간 배치를 한 기품이 있는 김동수 가옥은 명가名家이다.

- 여행 : 2016. 2. 10 - 

 

 

 

김동수 가옥 옆으로 조성된 권번문화예술원(국악, 소리 등을 가르치는 사설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