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속 고즈넉한 고택, 김용학 가옥

댓글 48

그곳에 가고싶다/아! 그리운 南道

2021. 1. 14.

  도시 속에 고택이 주는 느낌은 아주 색다르다.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연결 끈 같은 느낌이다.

아파트가 밀집되어 있는 공간과 100년이 넘는 고택이 서로 의지하며 공존한다.

매곡산 아래 하백 마을 안쪽에 김용학 가옥이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다.

2021. 1. 1

 

 

사랑채인 청풍헌

   김용학 가옥은 사랑채인 청풍헌, 연못 위 언덕에 하은정 荷隱亭과 연파정蓮坡亭, 2개의 정자가 있다.

사랑채 뒤로는 안채 등 살림집이 있다. 원래 안채는 2층 초가집이었으나 김용학이 양옥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후손인 김성중이 지금도 살고 있다. 사랑채인 청풍헌이다. 정면 7칸으로 일반적인 고택 사랑채 보다 규모가 조금 크다.

1917년 지었다고 하니 100년이 넘는다. 청풍헌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 현판 청풍헌

 

  고택 앞에는 연못이 있다. 사랑채와 두 정자에서 내려다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가운데에 둔덕을 만들어 배롱나무를 심고 연못엔 백연이 심어져 있다. 여름이면 배롱꽃과 연꽃이 피어 아름답다.

풍성함이 겨울보단 더 있다.

 

2018. 8월 전경

 

하은 김희수 시혜비

  하은 김희수 시혜비가 연못과 하은정 사이에 모셔져 있다.  하은 김희수는 김용학의 부친으로 조선 말기 문신이다.    철종 12년에 출생, 아버지는 김영덕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하은(荷隱)이다. 1879년(고종 1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출사, 1884년에는 다시 한림소시(翰林召試)에 선발되었다. 그 뒤 시강원 겸사서(侍講院兼司書)•시강원 필선(侍講院弼善)•이조참의•대사간 등을 두루 역임한 뒤, 갑오개혁 이후에는 탁지아문협판(度支衙門協辦)이 되었고 광무연간에는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과 궁 내부 특진관을 지냈다. 

 

하은정 대문 정향문

 

하은정

  하은정은 김용학이 아버지 하은 김희수를 위해 지은 정자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지어 붉은 벽돌 굴뚝이 정자 앞에 있다. 정자 바깥은 유리 덧문을 달았다. 정자 안쪽에는 2개의 온돌방이 있다고 하는데 유리 덧문이 잠가져 있어 볼 수 없다. 눈이 수북이 쌓여 운치가 있다.

 

 

 

하은정에서 연파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연파정

  연파정은 하은정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거나 안채, 사랑채에서 갈수 있다. 하은 김희수가 아버지 김영덕을 위해 1918년 지었으나 화재로 불타버렸다. 그후 하은정과 함께 1933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사면을 오동나무로 덧대 비바람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정자 안은 터진 마루로 돼있다고 한다. 오동나무 덧문이 잠겨져 이 또한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연파정에서 원림으로 나가는 문

 

  원림에서 본 연파정이다. 연파정에서 원림으로 나갈 수 있도록 대문이 있다. 원림에는 100년 넘는 벚나무 등이 심어져 봄이면 벚꽃이 피어 아름답다. 하백 마을은 도시 팽창으로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김용학 가옥 앞에는 지금 4층짜리 연립주택 공사가 한창이다.

 

아파트에 둘러쌓인 김용학 가옥

 

사랑채쪽에서 본 하은정

  우물이 김용학 가옥 뒤에 있다. 지금도 맑은 물이 솟아난다. 마을 공동우물로 사용 중이다.

지금은 먹지 않지만 물은 정말 깨끗하다. 새해 고택 탐사는 하백 마을 김용학 가옥이다.

 

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