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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일상속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보는 블로그입니다.

6~70년대 워낭소리 울리던 옛날옛적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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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이야기

2015. 10. 18.

농촌에도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여름내 푸르던 들판은 이제 황금빛으로 물들고

간간히 들판에는 농기계소리만 들려옵니다.

농촌의 작은 시골마을,...

옛날에는 이맘때면 온 들판은 수많은 농부들이 가을추수를 위해

부산히 움직이며 일을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모습은 보이지않고 텅빈 들녘의 풍경입니다.

농촌의 들녘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옛생각이 절로납니다.

 

 

 

 

옛날 농촌생활은 이러했지요?

첫닭이 울면 집안의 나이드신 어른이 맨 먼저 일어나

마당에서 큰기침 한번하면 식구들이 선잠에서 깨어나

어머님은 밥을짓고 아버지는 들로났으며

아이들은 소먹일 꼴을베려 망테를메고 낫을갈아 들이나 산으로 나가

꼴망테를 가득채워 소를 먹이며 하루가 시작되었지요.

아리들은 아침을먹으면 책가방이 아닌 책보를 등에메고

까만고무신을 신고 학교로 갔으며,

그시각, 부모님은 지게에다 거름을 한가득 지고 밭으로 나가 일을했습니다.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어머님이 싸주신 꽁보리밥에 고구마를 으깬  도시락을 먹어도

불평불만 하나없이 공부를 했답니다.

 

 

 

 

학업을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시골아이들은 쉬지도못하고 자동으로 소를몰고 산으로가서

소 고삐를 목에돌려메고 아이들은 꼴을베어 해가지면 집으로 향했답니다.

때로는 소가 전혀 다른방향으로가버려

늦은시간까지 소를 찾다가 못찾으면그날은 혼쭐이 났던때가 생각납니다.

소 목에 워낭을 달았던 이유는?

이럴때를 대비에서 목에 워낭을 달아놓은 것이랍니다.

딸랑 딸랑~~~정겨운 워낭소리,

아무리들어도 워낭소리는 지겹지도않고 어찌그리 정겹게 들리는지요?

워낭소리때문에 잃었던 소도 찾을수 있었으며

워낭이 없었다면 드넓은 산에서 소를 찾기란 어려웠을텐데,..

옛날 어르신들의 지혜가 담겨있는 워낭이랍니다.

워낭은 듣기 좋으라고 달아놓은것이 아니며,

재산목록 1호였던 소를 귀하게 여겨 잃어버렸을때 소리를듣고

소의 위치를 알고 소를 찾기위해 달아놓은 워낭이랍니다.

 

 

 

 

소는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재산입니다.

소는 집안의 힘든일을 도맡아 했으며

온종일 논밭에서 쟁기를끌며 논밭을 일구는,

시골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귀중한 재산목록 1호였답니다.

그래서 소는 늙어 죽을때까지 도살을 하지 않았으며,

추운 겨울이되면 따뜻한 여물을 끓여 아침저녁으로 바칠 정도였답니다.

한끼라도 여물을 끓이지 않으면 집안 어른분들께 불호령이 떨어지므로

사람은 먹지않아도 소는 굶기는일이 없었습니다.

소의 건강상태가 안좋으면

장에나가 살아있는 싱싱한 낚지를 사와 소에게먹이곤 했답니다.

그당시는 사람도 먹기 힘든 낚지였지만

소에게만큼은 정말 각별했습니다.

자식이 아파도 약은 사주지않아도 소에게만큼은 약을 먹였으며

자식보다 더 잘해줬을 정도로 소를 귀히 여겼답니다.

 

 

 

 

그러면 시골아이들은 어떻했습닌까?

시골아이들은 먹는것 이상은 없었지요?

시골에서 먹을거라곤 기껏해야 고구마가 전부이며,

그나마 고구마는 간식이 아닌 주식의 일부였으니

결국은 시골아이들은 변변히 먹을것이 없었다보면 될것같습니다.

계절에 따라 나오는 곡물들을 별미로 먹으며,

어쩌다 고철이나 빈병이라도 주운날이면 엿장사가 올때까지 숨겨놓았다가

엿장사가오면 남에게 들킬까봐 한참을 따라가 몰래 바꿔 먹었으며

때로는 아이스케끼 장사가오면 빈병을주고바꿔,

귀한 아이스케끼가 아까워 아끼려고 서서히 먹다가

통째로 녹아 땅에 떨어뜨린 애들도 허다했답니다.

그중에서 조금 더 큰 형들은

통크게도 캄캄한 밤에 남의마을로 가서 닭을 훔쳐 가지고와

한밤중에 삶아 먹기도했으며,

그보다 더큰 형들은 돼지까지 잡아와 먹다가

돼지값을 물어주기도 했답니다.

소는 안잡았냐구요?

소는 재산목록 1호인데 그럴수는 없었답니다.

요즘같으면 용서가 되지않는 완전 도둑이지만 그땐 서리였답니다.

서리는 이것뿐만은 아니랍니다.

옥수수가 익어갈 무렵에는 옥수수 서리,..

수박이 익어갈무렵에는 수박서리,..

감이 익어가면 감서리,..

유자가 익어가면 유자서리,..

시골에선 그 어떤것도 서리의 대상이 되었지요.

 

 

 

 

옛날 시골에선 걸음마를 떼면

집안의 마당을 쓸어야할 정도였고,

국민학교를 다닐 나이면 지게를 의무적으로 져야했으며.

고등공민학교를 다닐 나이면 쟁기질을 해야 할 정도였답니다.

시골에선 엄살도 요령도 없었으며,

무조건 성장기에 따라 집안일을 거들어야 했습니다.

시골아이들이 가장 무서웠던 건, 바로 방학입니다.

방학중에 특히 여름방학은 정말 없었으면 하는 방학이였답니다.

방학기간에는 그야말로 상 머슴이 따로없을 정도로

혹독한 나날의 연속입니다.

농한기인 여름에 무슨 할일이 있겠냐 하시겠지만?

옛날 시골은 농한기가 없었답니다.

일년 열두달 내내 끊임없는 일의 연속이였지요.

시골은 아이들이라고 봐주는 일은 절대 없었으며

오히려 남의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일을 못하면 못한다고 야단이고,

잘했을때는 칭찬이라는것은 없었지요.

방학이 되면 맨 먼저 소, 그다음이 땔감,

방학기간동안 아이들의 하루는 어러했답니다.

동이트는 이른 아침이면 눈만 비비고 망테를 메고 들로 나갑니다.

한가득 망테에 풀을 베어와 소에게 아침 먹이를 주고,

보리밥 한그릇 먹고 이번에는 논둑을 있는 풀을베고,

벼가있는 논에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며,

점심을 먹고나면 바지게를지고 낫과 톱을 챙겨

소를몰고 산으로 향합니다.

소는 풀을뜯게하고 아이들은 제각기 흩어져 나무를합니다.

워낙 헐벗은 벌숭이 산은 풀조차 없을 정도였으나

어떻게하든 가득 한짐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루 이틀 나무를 하다보니 점점 나무가 있는곳은 멀어져가고

결국은 남의마을 산까지 침범하여 나무를하다

산주인에게 지게와 연장을 몽땅 뺏기는 일도 흔하답니다.

나무를 남보다 조금 적게 했을때는 마을앞을 지나가기가 무서웠으며

사람이 없을때를 피해 몰래 들어가곤했답니다.

그당시에는 지게를 한가득 채우지 못하고 집으로가면 

동네앞 마을사람들에게 흉이 되었답니다.

나무를 적게 한날은 일부러 짐을 부풀려 많아 보이게하여

마을앞을 지나가기도 했답니다.

 

 

 

 

가난한집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와집 5칸집, 거기에 행랑체에

머슴을 둘이나 두고 있는집도 예외없이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왜이리 일에만 집착했을까요?

먹고살수 있는 길은 오직 농사뿐이라고 생각을 했었을줄도 모릅니다.

옛날 시골이라해서 모두가 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내다볼줄 아신분들은 이와는 다릅니다.

아무리 집안이 힘들고 어려워도 자식들을 도시로 보내어

공부만을 할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는 부모도 있었답니다.

똑같이 시골에서 살아도 생각의 차이가 완전 달랐답니다.

그분들이 많이 배워서도 아닙니다.

뭔가 미래를 내다보고 자식들만은 같은 길을 걷지않도록 하기위해

허리띠 졸라메면서도 배움의 길을 택했답니다.

이러한 시골생활은

도심에서 나고자란분들은 어쩌면 이해하기 힘들수도 있습니다.

이건 먼나라 얘기가 아니고

6~70년대 우리나라 농촌의 얘기입니다.

시골에도 빈촌이있고 부촌이 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는 땅많은 내륙지방마을들이 부촌이였으나

지금은 내륙지방이 아닌 해안마을이 부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