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평안함

태어남과 죽음, 신과 인간을 화두로 삼는...

나는 있는가 없는가

댓글 0

깨달음의 서

2021. 12. 2.


나는 있는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없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바로 그게 '나'다. 나라고 할 것은 없을지라도, 내가 없을 수는 없다. 무 無에서 유 有가 나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무가 바로 '나'다. 즉 나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있는 물상이 곧 나인 것은 아니다. 나로부터 생겨났다고 해서 그가 곧 나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부모로부터 자식이 태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식이 곧 부모는 아닌 것과 같다.

그렇다면 여기서「아무것도 없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지금까지 많은 선각자의 가르침에 오해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게, 물질적이며 감각적인 외부세계에서 아무것도 없다는 뜻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 세계에서의 감각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에 있는 무형의 관념조차 없다는 뜻이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의지하고 있는 믿음이나 사상 등과 같은, 관념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바로 아무것도 없음이요 '아무것도 없는 존재 상태'가 또한 바로 나인 것이다.

내면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 그 상태를 바로 나라고 일컫는 것이다. 나라는 게 유형의 무엇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형의 무엇도 아니다. 무형도 유형도 아닌, 아무것도 없음이 바로 나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유형의 형상은 그만두고서라도, 무형의 무엇이라도 붙잡고 싶어 한다. 지구라는 유형의 세계에 너무 익숙해진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구상에 있는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려니와, 정신적인 형이상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 無에서 나왔다. 무와 무형은 서로 다르다고 할 것이다. '무'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무형'이란 유형에 대한 상대적인 표현이다.

오감으로 감각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식조차 되지 않는 게 '무'라면, 감각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적어도 인식은 가능한 게 '무형'이다. 형이상의 정신적인 모든 게 곧 무형이다. 고로 나란,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형의 무엇도 아닌, 언어로 표현은 가능하지만 인식되지 않는 무엇이다.

유형의 대상에 매달리는 것을 두고는 미신이라고 비하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형의 이미지 또는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관념에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소위 고등종교에서조차 유형의 형상을 종교시설 안팎에 세워놓고 이를 신앙으로 착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나란, 아무것도 없음을 받아들이는 상태,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상태란 관념도 아니며 그렇다고 물질적 형태도 아닌, 존재 상태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존재 상태 즉 무 無가 바로 '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