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평안함

태어남과 죽음, 신과 인간을 화두로 삼는...

생명이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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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서

2022. 1. 10.

생명이란 기억이다


하나의 씨앗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싹이 튼다는 사실과 세포가 복제된다는 사실. 살아있는 모든 것의 형상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 이 모든 게 바로 기억의 힘입니다. 우주가 기억이고 기억이 곧 우주입니다. 기억이 곧 능력이자 신이며 나 자신이기도 합니다.

기억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이 기쁨에 기뻐하고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기억이 있어야 기쁨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 만일 기억은 없다면 기쁨 또는 고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고로 기억이 모든 것입니다. 기억이 곧 신이자 우리 자신이며 생명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자각해야 할 것은, 우리는 우리 자신인 기억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태어난 뒤 어느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일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기억되는 것일 뿐입니다.

기억력 향상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 아닌, 기억 자체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나 신 또는 생명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로 기억이란 유용한 생활 도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과 함께 생명 또는 신의 반열에 올라가야 할 알 수 없는 존재입니다.

생명이란 기억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억이란 단순히 어떤 사실에 대한 기억을 넘어서, 창조하는 방법이나 능력, 힘 등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생명만이 살아있는 게 아니라, 기억도 살아서 움직입니다. 생명이 기억이고 기억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의 섭리 또는 우주 법칙이 바로 기억입니다. 누군가가 있어 그 모두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섭리 또는 법칙 자체가 바로 기억입니다. 식물의 씨앗이 발아하고 동물 또는 인간이 탄생하는 것 즉 창조가 이루어지는 과정과 법칙이 바로 기억입니다.

인간 몸뿐만 아니라 자연 자체에 기억이 내장된 것입니다. 무생물인 쇳덩어리나 돌덩이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형의 관념인 이성과 기억 자체에도 생명의 법칙 또는 신의 섭리가 기억의 형태로 내장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신이란 기억된 능력 또는 기억 자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결코 기억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습니다. 기억은 기억 자체로서 존재합니다. 뇌세포에서 대상으로서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뇌세포 자체에도 주체로서의 기억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육체의 수명이 다한 다음에도 뇌세포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썩어 물이 되고 바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순환이 자연법칙 또는 신의 섭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기억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당할 것입니다. 기억이 전부이며 또한 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기억이 없다면 우주에는 아무것도 없는 셈이며, 우주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 셈입니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상으로서의 기억이 없어지는 것일 뿐, 주체로서의 기억은 없어질 수가 없습니다. 대상으로서의 기억이 아닌 주체로서의 기억이 바로 나 자신이며, 주체로서의 기억은 대상으로서의 기억을 포함하여 유형•무형의 우주 전체를 아우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수상행식 色受想行識에서 식이란, 앎과 기억을 뜻하며 이를 다시 한 단어로 줄인다면 앎이 될 것입니다. 즉 앎이란 관념이면서 동시에 관념에 대한 기억인데, 앎을 포함하여 이 모두를 다시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뿌리가 되어 앎이라는 새싹과 줄기가 나오고 관념이라는 잎이 돋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인 시각에서 보면, 나무라는 커다란 기둥이 있고 거기에서 가지가 자라나고 뿌리가 뻗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에서는 뿌리에서 나무 기둥이 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억이라는 뿌리에서 앎이 생기고 관념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즉 기억하지 못한다면 앎이 무슨 소용이며 관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고로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이라는 것도 기억에서 출발한 것으로 우리는 추론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기억이 곧 신입니다. 기억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을 비롯한 유형•무형의 모든 것이, 전부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과거의 기억 또는 미래의 상상에 대한 기억을, 현재라는 순간에 다시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