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평안함

태어남과 죽음, 신과 인간을 화두로 삼는...

02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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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깨달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 / 신타 내 의지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 의지를 받아들인 신의 의지에 따라 몸이 움직여지는 것이다 자유의지란 앞에 놓인 길 중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일 뿐 내가 길을 만들어 가는 게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내 뜻대로 이루어주심에 신에게 감사하는 것뿐이며 오로지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전부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고자 혼자서 헤맬 일이란 없으며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소망하는 바가 이루어진 모습에 다만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일 뿐

댓글 詩-깨달음 2022.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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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서 나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어디에도 없다 나는 분명 살아있지만, 또한 나는 어디에도 없다. 마찬가지로 신이 분명 살아있지만 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일찍이 니체는 이를 두고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우주 어느 한구석에서 반짝이는 금빛 의자에 앉아있는 신은 없다는 의미에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은 사실 없다. 우주 한 모퉁이든 한가운데든 어느 한 곳에 있는 신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관념적으로 신을 무소부재한 존재로 만들어놓고는, 금빛 보좌에 떡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기에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살아있듯이 신 또한 분명히 살아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일 뿐 살아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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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또는 수필 세속과 탈속

세속과 탈속 관념이란 결국 이성으로 이해되고 추론된 사실에 대한 추상적, 복합적 기억이다. 이러한 관념과 감각적 이미지 그리고 단순 기억을 합하여, 우리는 이를 지식 또는 앎이라고 이름한다. 또한 관념, 이미지, 단순 기억이 둘 이상 모여서 복합 기억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뇌 속에 있는 기억의 대부분은 복합 기억인 셈이다. 관념과 감각적 이미지의 결합이든지 또는 단순 기억과 이미지의 결합이든지 말이다. 그런데 보통의 지식 또는 앎을 세속적 지식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매우 적절치 않은 표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세속과 탈속으로 나누는 것은 옷 색깔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내면의 앎이 아니라, 옷이나 집 또는 주변 환경으로 그 사람의 앎을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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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서 삶이란 기억이다

삶이란 기억이다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이 순간의 색수상행식 色受相行識이 모두 신의 선물이다. 그리고 색수상행식에서 식이란, 인식과 기억을 뜻하며 이를 한 단어로 줄인다면 의식이 될 것이다. 즉 의식이란 인식이면서 동시에 인식한 대상에 대한 기억인데, 의식을 포함하여 이 모두를 다시 하나의 단어로 표현한다면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이 모든 것이며 기억이 뿌리가 되어, 의식이라는 새싹이 줄기가 되고 인식이라는 잎이 돋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인 시각에서 보면, 나무라는 커다란 기둥이 있고 거기서 가지가 자라고 뿌리가 뻗는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에서 보면 뿌리에서 나무 기둥이 자라는 것이다. 이처럼 기억이라는 뿌리에서 의식이 생기고 인식이 돋아나는 것이다. 즉 기억하지 못한다면 의식이 무슨 소용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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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서 내려놓음에서 내맡김까지

내려놓음에서 내맡김까지 삶이란 행복의 연속이다. 고해의 삶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의 연속일 뿐이다. 다만 이는 자신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깨달은 뒤에 가능한 느낌이기는 하다. 완전히 깨달은 뒤란, 견성을 출발점으로 해서 해탈에 이른 때를 말한다. 견성이란 깨달음의 시작점이고 해탈이란 견성의 종착점이다. 그런데 해탈이 견성의 종착점일 뿐 깨달음의 종착첨인 건 아니다. 해탈이란 끝이 없는 영원한 기쁨이다. 여기서 견성을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내려놓음이며 해탈은 내맡김이다. 나를 내려놓을 때 즉 아상에서 벗어날 때부터 자신에 대한 앎이 시작되며, 자신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고 난 다음 그러한 자신을 신에게 내맡기는게 바로 내맡김이다.

02 2022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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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서 구원과 해탈

구원과 해탈 과거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고해 苦海의 삶에서, 과거에 대한 만족과 미래에 대한 감사 속에서 신 神과 함께 하는 기쁨 충만한 삶으로의 전환! 이게 바로 구원이며 해탈이다. 구원과 해탈이란 죽은 뒤에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몸을 가지고 있는 지금 여기서 얻을 수 있고 또한, 지금 여기서 얻고자 우리는 몸을 가진 채 지구상에 애써 태어난 것이다. 수용 즉 받아들임이란 내게 다가오는 안 좋은 것을 거부하지 않음이며, 또한 내게 머물다가 사라지는 좋은 것을 붙잡지 않는 정신작용 (또는 마음)이다. 즉 회피와 집착이라는 현실 부정의 욕구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신의 사랑과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에서 나오는 정신작용이다. 이렇듯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나를 위한 신의 사랑과 축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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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나무 넝쿨 아래 홍연 紅緣

홍연 紅緣 / 김현희 너와 내가 있기에 만남의 인연이 있기에 사랑의 기쁨 넘쳐 흐르고 아픔과 슬픔조차 함께한다 고통 없는 세상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피하고자 하는 건 오히려 두려움 속으로 숨는 일일 뿐 처음 보았지만 알 수 없는 끌림, 홍연 슬픔이 있기에 기쁨이 있고 아픔이 있기에 사랑이 있다 나 아닌 게 없으며 모든 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너를 보내야 하는 슬픔조차 세월 지나고 나면 기쁨일 수 있음에 나는 이제서야 안다 사랑만이 사랑이 아님을 이별의 아픔까지도 깊은 우리 사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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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또는 수필 부모미생전 父母未生前

부모미생전 父母未生前 우리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갈 수 있을 뿐. 그러니 생각 이전, 태어남 이전, 존재 이전이니 하는 등의 말은 가당치도 않은 표현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각하고 있으며, 이미 태어나서 존재하고 있는데 생각 이전, 존재 이전을 누가 어떻게 감히 상상할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단 말인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공허한 관념일 뿐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와같이 정에서 반을 거쳐 합으로 가는 것이지, 반에서 다시 정으로 가거나 합에서 도로 반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오직 정반합의 순서대로 가는 것이며, 합은 또다시 정이 되어 계속 순환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생각 이전. 존재 이전. 부모미생전이니 하는, 말하는 본인조차 알지 못하는 공허한 표현일랑은 되도록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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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또는 수필 기억에 대한 기억

기억에 대한 기억 인식·이성·사유 등등 인간의 어떠한 정신 작용도 기억에 앞서 존재할 수는 없다. 정신 작용은 물론이며 심지어 신체적 움직임도 기억 위에서만 합리적으로 작용한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병증인 치매 환자의 예를 들어보면, 자신이 행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의 오류가 발생하곤 한다. 내가 간접 경험한 사례로는, 장롱 위에 돈을 놓아두고는 장롱 안 이불 사이에 넣어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게 바로 기억의 오류다. 그런데 이것이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행해지는데도 치매 환자는 계속 기억의 오류를 겪는 것이다. 환자의 딸인 보호자도 어머니인 치매 환자가 이불 사이에 넣어둔 돈을 누군가가 훔쳐 갔다는 하소연을 듣고는 이불을 다 꺼내어 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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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서 인간이 신에게 잘못 할 수 있을까?

인간이 신에게 잘못 할 수 있을까? 같은 인간에게야 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신에게도 인간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만약 인간이 신에게 잘못하는 게 있다면 도대체 무엇을 잘못하는 것일까? 더군다나 인간에게 범한 잘못을 신이 처벌한다면, 그건 어린아이 싸움에 어른이 나서서 어느 한 쪽을 처벌하는 것보다 더 치졸한 짓이 아닐까? 신이 인간의 행동에 화를 내고 분노하여 벌까지 내린다면, 그건 신이라고도 할 수 없는 전지전능은커녕 무능의 소치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개인이든 민족이든 어느 한 쪽 편을 들어 인간을 처벌한다면, 신이 인간과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인간은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처벌해주는 무소불위한 힘을 가진 존재 즉 신을 만들었다가, 남이 아닌 오히려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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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서 믿음의 굴레

믿음의 굴레 믿음이란 나를 구속하는 굴레일까? 그것은 굴레일 수도 있으며 오히려 굴레에서 벗어남일 수도 있다. 믿음이란 억압이 될 수도 있고 자유가 될 수도 있음이다. 그런데 그것이 억압인지 자유인지를 구분하는 방법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든지 관계없이 믿음이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면 그건 자유이며, 처음엔 편안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해진다면 그건 억압이다. 믿음이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굴레가 되어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여러 번 보아왔다. 한때 로마 대제국을 등에 업고 유일신을 부르짖던 기독교가 그러했으며, 한때 많은 지성인을 현혹시켰던 공산주의 사상이 그러했다. 다른 종교나 다른 사상을 허용하지 않는 유일신 신앙 또는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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