乘風破浪의 <낙∙서∙장>

- 世間事, 이런 생각도 해 봅시다 -

30 2021년 08월

30

나의 이야기 전체적 근본적 반성적 사고

흔히들 철학을 전체적(우주적), 근본적(궁극적), 반성적(성찰적) 사고라고 한다. 그런 사고만이 우주/자연/존재(사물/사건)의 실체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일상은 그와는 반대로 부분적(지엽적), 현상적(피상적), 습관적(관행적) 사고들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일상은 그래야 잘(?) 굴러가겠지만, 궁극적 실체와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였던가? 장자(BC369?~286)는 일찍이 “어째서 우주현상이 일어나는가(敢問何故)?”라는 전체적/우주적 의문을 제기했고, 하이데거(1889~1976)가 철학의 근본 문제로 “어째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궁극적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는 평소 부지불식간에 부분적/현상적/관행적 사고에 의해 살아간..

01 2021년 08월

01

나의 이야기 어느 노 교수의 질문

‘인생에는 왜 괴로운 일들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가?’ ‘이 꽃은 무엇이고 저 나무는 무엇인가?’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 수상, 영국 왕립학회 회원, 옥스퍼드대 생리학 명예교수, 나이 85세인 데니스 노블이 위 질문들을 안고 한국의 사찰(봉은사/통도사/실상사/백양사/미황사)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Noble Asks 제작팀/장원재/다산초당/2012) 소위 세계적 석학이라는 사람들이 노년에 이런 질문을 내놓는 걸 볼 때면 마음이 착잡해 진다. 1) 한 분야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람이 왜 늙어서까지 그런 질문을 해결치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 2) 왜 이런 질문을 철학 아닌 종교로 해결하려 하는 걸까 하는 생각, 3) 왜 스스로 해결치 못하고(않고) 남에게 의존하려고 ..

07 2021년 07월

07

나의 이야기 공자의 인격 형성 과정

2,500여 년 전, 공자(BC551~479)는 자신의 인격형성 과정을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자신감을 얻어 홀로 선 후, 마흔 살에 미혹에서 벗어났고, 쉰 살에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예순 살에 남의 말을 순순 듣게 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해도 법도를 넘지 않게 되었다. /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慾 不踰矩. / 論語 爲政篇 인간의 보편적 생애과업에 비춰보면 지금도 수긍이 가는 얘기다. 그러나 그의 행적에 비춰 보면 고개가 갸웃해 지는 면이 없지도 않다. 당시로선 늦은 나이인 56세에 모국(노나라)을 떠나, 14년 간이나 이웃나라를 방랑하면서 정치 야욕/포부(자신을 알아주는 임금을 만나 ..

07 2021년 05월

07

나의 이야기 오해/착각=> 왜곡

사물이나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오해다. 또 실제와 다르게 잘못 느끼거나 지각하는 것이 착각이다. 이런 오해와 착각은 삶을 왜곡시킴으로써 불행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오해/착각은 뭐니뭐니해도 앎/인식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앎(인식)의 질과 양이 곧 삶의 질과 양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자신이 안(인식한) 세상을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앎(인식)이 '우주 /자연/존재의 속성이나 원리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오해/착각해 왔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산이나 물이, 있는 그대로의 산이고 물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다. 그런데 프로타고라스, 플라톤, 데카르트, 칸트, 비트겐슈타인, 쿤 등의 철학자들이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혀 냈다. 즉, 1) 인간이..

20 2021년 04월

20

나의 이야기 의심없이 발전없다

예로부터 학계에 불문율처럼 전해져 오는 말이 하나 있다. “모든 학문의 귀결점은 철학이다/인간 일생일대 최상의 과업은 철학이다.”라는 것이다. 철학이 우주/자연/존재의 궁극적/근원적 원리와 의미를 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삶을 규제하는 경제/사회/정치/문화/교육/전통/관습/종교/과학/예술/이념/체제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철학을 어렵다고 한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반성적 사고를 거듭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전체적/근원적/반성적 사고를 계속하다보면 사물의 새로운 지평도 열 수 있는데 말이다.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달을 수 있는데도(大疑則有大悟)말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의심하다 보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예로부..

22 2021년 02월

22

나의 이야기 절묘한 행위예술-2

모든 예술의 콘텐츠는 일종의 허구이기도 하다. 예술의 역할이 비 실재를 통해 실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예술의 궁극 목표가 의식의 환기(喚起/어떤 감정이나 사실/주의 따위를 불러일으켜 느끼게 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느낌이나 의식 환기를 신체행위로 보여주는 것을 행위예술(happening/performance)이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면 의식의 환기를 통해 가르침을 편 불교의 방편(方便)이야말로 행위예술의 원조가 아닐까 싶다. 환기하고자(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기발하고 신선하고 재미있는 비유적 행위로 절묘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느 날 왕이 나가센 스님을 궁전으로 초대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 사자는 나가센에게 말했다. “스님, 왕께서 스님을 친히 ..

03 2020년 09월

03

나의 이야기 paraskevidekatriaphobia

미국서는 ‘파라스케비데카트리아포비아(paraskevidekatriaphobia/13일 금요일의 공포증/그리스어)'라는 것 때문에 1,700~2,100만 여명이 불안증을 비롯한 갖가지 생활의 불이익을 입는다고 한다. 또 활동범위 축소나 일정변경 등으로는 연 7억 5천여 만 달러의 금전적 손실도 입는다고 한다(행동과학자 도날드 도시). 논리적/합리적/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관련 연구 결과도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런던의 한 병원서 ‘6일과 13일 금요일에 들어 온 교통사고 환자 수’를 비교했다. 결과는 6일에 비해, 13일에 들어 온 교통사고 환자가 52% 더 많았다. 6일보다 13일이 도로 교통량이 적었음도 말이다. 그런데도 논문저자는 '13일 금요일은 불길한 날이다.' 그러..

27 2020년 08월

27

나의 이야기 글로벌리즘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심심풀이로 인터넷에 ‘글로벌리즘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올리자,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죽음’이라는 댓글이 달렸다고 한다. 이윤즉슨, 영국인인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죽은 나라는 프랑스였는데, 그가 타고 가다 사고가 난 차는 독일제였으며, 운전수는 벨기에 인이었으며, 동승자는 이집트인이었고, 사고원인을 제공한 파파라치는 이탈리아인이었으며, 파파라치가 타고 가던 오토바이는 일본제였으며, 다이애나를 수술한 의사는 미국인이었으며, 수술시 사용한 마취제는 남미 산이었고, 사후 배달된 조화는 네덜란드산이었으며, 이 기사가 뜬 모니터는 한국 제였고, 그 기사를 클릭해서 다운 받은 로지텍 마우스는 대만산이었으며, 이 기사를 쓴 사람은 캐나다 인이었기 때문이란다. 이런 우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