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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 2012. 2. 26. 00:17

 

 

 

 

 

 

 

 

 

 

신언패

연산군이 자신을 비방하는 투서를 받고 난 후,  도성의 성문을 걸러 잠그고 범인을 색출하려 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10여일이 지난 후 성문을 열었으나, 많은 백성이 잠긴 성문으로 인하여 서로 교통하지 못하여
굶어 죽은 사람이 수백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산군은 이에는 관심이 없고, 한글(연산군은 언문이라 하여 한글을 업신 여겼음)로 된 모든 문서를 불살라 없애고 배우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사람들 목에 신언패를 달게 하여 백성들의 입조차 봉하고 자 하였습니다.

신언패(愼言牌)라는 것은 나무로 만든 패쪽인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었다.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
  폐구심장설
  안심처처뢰
  (입은 화를 가져오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어딜 가나 마음 편하리라.)

  이상과 같은 구절이 새겨져 있는 신언패를 누구나 모두 목에 걸고 다니게 했으니,

그것은 이를테면 지독한 함구령이었다. 현대 용어로 표현한다면 철저한 언론 봉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