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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상 2021. 6. 4. 17:13

작가시p.88

 

 

 

 

 

  ★  왕거미 ★

 

                                     강지혜

 

발안 사거리 복권방

천장에 인조 왕거미 한 마리 매달려 있다

공중에서 가부좌로 묵언 수행중이다

맑은 풍경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릴 때마다

왕거미는 곁눈질로 발걸음을 바삐 옮긴다

왼 쪽 오른 쪽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실낱에 의지한 몸이 허공에서 흔들거린다

 

저 허공에 매달린 구름 같은 삶

하늘은 항시 잡힐듯 잡히지 않는 안개 바다

막막한 또 하루가 떠밀려 간다

간절하게 움켜쥔 삶이 끊어질듯 위태위태하다

문 틈새 찬바람이 들이닥쳐

거미줄마저 매몰차게 걷어가 버리고

드문드문 얼굴 꺼먼 외국인 노동자들

한 번씩 왕거미의 몸짓에 촛점을 맞추고는

그리운 안개 바다를 가슴에 담는다

 

눈치로 알아채는 그들의 말

북북 끓는 밥솥에서 나는 달큰한 냄새가 배나온다

먼지로 쳐진 거미줄에 아슬아슬 얹혀진 사람들

파키스탄 아저씨도 방글라데시 아저씨도

한 줄 나란한 무지개빛 꿈

망망한 안개 바다에 출사표를 던진다

 

귀퉁이 자판기 백 원짜리 커피를 뽑아 들고

힘겨운 시간들을 따듯한 입김으로 날린다

사뿐히 복권방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허공속을 걸어가고 있다

발꺼풀에 날 선 바람이 또아리를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