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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상 2021. 6. 4. 17:49

      원두커피

                  강지혜

                              

네가 품었던 

빨간 사랑의 씨앗은

지난 여름날의 빈 터

 

불길 건너던 어제의 아픔

불면이 내려앉은 어깨 위로

하얀 밤의 시간을 뜨겁게 피워 올리고

 

쓰라린 상처 빻아낸 가루는

달디단 향기로

시린 가슴에 꽃으로 피어

 

외로움에 뒤척일 때면 

손을 내미는 

늘 그리운 향

 

 

             한 밤의 커피

 

                                   강지혜

 

종일 생각의 늪에서 비틀대던 나를

가만히 책상에 앉힌다

심연의 골짜기 달이 스며

잠든 문장을 한 행씩 깨운다

비어 있던 마음을 천천히 젓는다

찻잔 속에 온밤이 통째로 녹아 있다

아, 둥근 달이 달다

달빛 사르르 앙가슴에 번져 온다

시린 삶속에 거칠어진 얼굴

발그라니 꽃 피는 건

또 다른 내 모습이 비치고 있기 때문일까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

함께 걷는 이가 어디 이 커피만 할까

코끝에 한 밤이 향긋하다

또 한 모금 꿈을 머금는다

 

시작노트:

늘 커피와 함께 하다보니 자연스레 커피시를 쓰게 됐다.

커피향으로 피어나는 일상,

오늘은 향기로운 시 한 편 쓸 수 있으려나,

눈 감고 잠시 커피향에 머물러 본다.

가만히 커피 향기를 따라가 본다

 

 

                찻잔속의 달

                              -강지혜

 

 

가로등 숨 멎은 골목

결 고운 밤 바람

친구 되어 흐르는데

보고픈 얼굴 그 속에 그려 보고

듣고픈 목소리

바람결에 들어 볼까

이 밤

또렷한 추억의 그림자 따라 가며

헤매는 발길

끝 없이 안으로

안으로 녹아 내리는

지난날의 기억

마음을 이토록 애태우는

그리움의 만삭

찻잔 속에 달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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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상 2021. 6. 4. 17:13

작가시p.88

 

 

 

 

 

  ★  왕거미 ★

 

                                     강지혜

 

발안 사거리 복권방

천장에 인조 왕거미 한 마리 매달려 있다

공중에서 가부좌로 묵언 수행중이다

맑은 풍경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릴 때마다

왕거미는 곁눈질로 발걸음을 바삐 옮긴다

왼 쪽 오른 쪽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실낱에 의지한 몸이 허공에서 흔들거린다

 

저 허공에 매달린 구름 같은 삶

하늘은 항시 잡힐듯 잡히지 않는 안개 바다

막막한 또 하루가 떠밀려 간다

간절하게 움켜쥔 삶이 끊어질듯 위태위태하다

문 틈새 찬바람이 들이닥쳐

거미줄마저 매몰차게 걷어가 버리고

드문드문 얼굴 꺼먼 외국인 노동자들

한 번씩 왕거미의 몸짓에 촛점을 맞추고는

그리운 안개 바다를 가슴에 담는다

 

눈치로 알아채는 그들의 말

북북 끓는 밥솥에서 나는 달큰한 냄새가 배나온다

먼지로 쳐진 거미줄에 아슬아슬 얹혀진 사람들

파키스탄 아저씨도 방글라데시 아저씨도

한 줄 나란한 무지개빛 꿈

망망한 안개 바다에 출사표를 던진다

 

귀퉁이 자판기 백 원짜리 커피를 뽑아 들고

힘겨운 시간들을 따듯한 입김으로 날린다

사뿐히 복권방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한 가닥 희망을 안고 허공속을 걸어가고 있다

발꺼풀에 날 선 바람이 또아리를 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