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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상 2021. 6. 5. 10:34

“시골마을에 왜 도서관 열었냐고? 여기서 머스크 나올 수도 있잖아”입력 :2021-06-01 17:44ㅣ 수정 : 2021-06-02 02:03

입력 :2021-06-01 17:44ㅣ 수정 : 2021-06-02 02: 

[이 사람이 사는 법] ‘원자력 대부’서 ‘세종 전의마을 도서관장’ 변신한 前한국원자력연구원장 장인순

도서관은 시골 마을 산 중턱에 있었다. 지난달 5일 어린이날 이 조그만 도서관을 문 연 사람은 ‘한국 원자력의 대부’로 불리는 장인순(81)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다. 사람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은 오지 마을에 장 전 원장은 왜 도서관을 만들었을까. 문 연 지 20일이 지난 25일 1호선 국도를 타다 좁은 시골길과 산길을 거쳐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 ‘전의 마을 도서관’에 도착해 장 전 원장을 서울신문이 만났다. “시골에 도서관을 왜 만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대뜸 “여기서 일론 머스크나 빌 게이츠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느냐”며 “신도시에만 도서관이 많고 여기에는 없어 ‘아이들하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지난달 25일 자신이 만든 ‘전의 마을 도서관’의 아치형 입구 문에서 책을 펴 보이고 있다. 장 전 원장은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꿈을 키워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했다.

마침 10년 전부터 대전 자택 이웃으로 인연을 맺어 수양딸이 된 라연희 ㈜고려전통기술 사장이 회사 2층 150㎡ 정도의 공간을 내줬다. 도검을 만드는 회사로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칼도 이곳 것이라고 장 전 원장은 홍보했다.

장 전 원장은 지난해 팔순을 맞아 쓴 책 ‘여든의 서재’에 적은 ‘책은 세상이며 삶이며 우주이다’, ‘이 하루는 왜 이렇게 소중한가’, ‘나는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는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와 소크라테스 등이 말한 세 문장을 들면서 “젊었을 때는 못 느꼈던 것들인데 나이 80이 되니까 소중하게 다가온 말들”이라며 “도서관을 만든 것도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을 일찍 깨닫도록 해 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여든의 서재’ 인세 5000만원으로 도서관 책을 구입하고 인테리어 비용을 댔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어릴 적엔 학교에도 도서관이 없었고, 몽당연필에 침 묻혀 가며 글씨를 쓸 정도로 어렵게 공부했기 때문에 이곳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면서 “내 고향 마을이 아니어도 노년에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날마다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갓김치’로 유명한 전남 여수 돌산 섬마을이 고향이다.

●“책·필기도구 든 가방이 진짜 명품이지”

아치형 도서관 출입구 두 기둥에 ‘2021 왜?’, ‘2121 WHY?’라고 적혀 있다. 장 전 원장은 “‘왜’라는 질문이 인류 역사를 끌어왔다”며 “이 근원적 질문이 바탕인 교육이 백년(2021~2121년)대계여서 그리 썼다”고 설명했다. 벽에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야’라는 글도 있다. 그는 “박경리 선생이 소설 ‘토지’ 20권을 쓰는 데도 얼마나 책상에 앉아 있었겠나”라고 웃었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5~6칸 나란히 세워진 책장에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그 앞에 모양이 제각각인 책상이 놓여 있다.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태극 모형, 초승달 모형 등 모양이 다 다르다. 모두 30여명이 앉을 수 있다. 장 전 원장은 “학생들에게 다양성을 보여 주고 심어 주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다양성이 부족하고 존중하지도 않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의자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언제든 와서 책을 볼 수 있도록 연중 내내 24시간 개방한다. 장 전 원장은 “맘대로 책을 가져가고 낙서해도 된다. 그래서 대여기록도 하지 않는다”며 “정직성과 자율성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책 분리도 하지 않았다. 그는 “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고 서점처럼 책장 넘기며 책을 찾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 책장 앞에서 도서관을 만든 이유를 설명하는 장인순 전 원장.

시골 마을에 도서관이 생기자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 270여명이 다니는 인근 전의초·중학생이 주요 고객(?)이다. 다만 버스정류장이 1㎞도 넘게 있어 찾아오는 길이 편하지는 않다. 장 전 원장은 “버스정류장에서 택시 타고 오면 돌아가는 택시비까지 내가 다 대준다”며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고 소문이 덜 나서인지 지불한 택시비는 아직 10만원이 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조만간 도서관에서 수학과 물리도 가르치겠다는 장 전원장은 “사람들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네 다리 달린 책상보다 세 개짜리 책상이 비탈이든 어디든 세울 수 있는지 등 과학 및 수학의 원리를 알려주면 무척 재미있어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그는 “코로나19 시대에도 학생이 부모 손잡고 오면 그렇게 예쁘고 반가울 수가 없다”고 했다. 한번은 자녀와 함께 도서관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명품 가방이 뭔지 아느냐. 안에 책과 필기도구가 들어 있으면 그게 진짜 명품 가방이다”고 얘기하자 어머니는 “어머, 그런 말은 원장님한테서 처음 들었다”며 웃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장 전 원장은 “우리 어머니는 내가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불소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 가방에 태극기를 넣어줘 외국 생활 내내 힘이 됐다”면서 “그 어머니를 평생 한번 안아 드린 기억이 없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도서관에는 책 9000권이 있다. 인세 5000만원을 초등 필독서 2000권과 중고생 1000권 등 3000권을 구입하는 데 털어넣었다. 국립도서관에서 추천받은 것으로 소설, 수필, 위인전, 만화 등 다양하다. 2005년 원자력연구원장으로 퇴임한 뒤 구입해 읽은 책 4500권을 보탰다. 장 전 원장은 “그 기간이 가장 독서량이 많았을 때로 내가 좋아하는 로버트 프로스트 등 시집 1000여권도 있지만 인문학, 원자력 등 주로 어른 책”이라고 했다. 동네 한 아주머니가 200권을 기증했고, 교수들 여럿도 보내 줬다.

장 전 원장은 2004년 1월 자신이 원자력연구원장(당시는 연구소)으로 있을 때 만든 1호 연구소기업 한국콜마 공장이 전의면에도 있다고 인연을 강조하며 이곳에 도서관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원자력 개척 연구진답게 이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는 “요즘 문맹은 공부하지 않는 권력자와 공무원”이라며 “산유국도 원전을 만드는데 우리 정치인은 공부를 안 하니까 세상을 못 읽는다”고 꼬집었다. 장 전 원장은 “태양광은 하루의 절반은 빛이 없는 밤이고, 사막 모래바람 불으면 망가지기 때문에 중동 국왕이 ‘할아버지는 낙타 타고, 아버지는 자동차 타고, 나는 비행기 탔으니 아들은 우주선을 타야 하는데 다시 낙타 타게 생겼다’며 원전을 수입한다”고 했다.

장 전 원장은 “도대체 자기 나라는 탈원전하면서 수출이라니, 그 나라 원전을 사려는 국가가 얼마나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원전은 수명이 60년이어서 그동안 핵연료를 팔고, 거액 받고 수리해 주고, 기술자 1000명이 일자리를 얻는 등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다”면서 “그런데 탈원전하면 우수 학생이 원자력공학과를 가지 않아 원전 기술이 퇴보한다”고 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에 처음 20조원짜리 대용량 원자력을 수출한 뒤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스마트원자로 등 세 가지 원자로를 수출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고 장 전 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과학은 퇴보하는 법이 없고 더 안전해진다. 탈원전은 미스터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서관 옆에 화랑·劍박물관 열어 명소로”

장 전 원장은 매일 대전 집에서 직접 차를 몰아 오전 7시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왕복 100㎞ 거리다. 장 전 원장은 “아침 일찍 도서관에 오면 동네 등 하루 6㎞를 천천히 달리고 집에서 아령도 하며 건강을 관리해 먼 거리 차를 모는 것도 크게 힘들지 않다”고 했다.

도서관에 머물면서 회사 기술연구에 기술 조언도 한다. 도서관보다 더 넓은 옆 공간 벽에는 자신이 소장하던 것과 기증받은 미술품 30여점이 걸려 있다. 장 전 원장은 “손님을 기다리는 식당 주인처럼 어린 학생들을 기다리고 찾아오는 아이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다만 식당 손님과 반대로 여기에 더 오래 머물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 갔으면 좋겠다”며 “도서관 옆에 구상화·추상화가 섞였다고 이름 붙일 ‘비빔밥 화랑’과 전통 검 제작 회사의 특성을 살린 ‘검박물관’도 추가로 열어 명소로 만들자고 사장과 의기투합했다”고 웃었다.

글 사진 세종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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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상 2021. 5. 26. 17:53

[꿈을 캐는 마당]세종시 전의면 소재 어린이도서관

박사님 존경합니다!

"교육이 곧 국력… 여러분도 세계 바꿀 인재 될 수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책상에서 오래오래 공부하다 가세요.” 지난 20일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과 명예기자들이 태극모양 책상에 둘러앉았다. /세종=김종연 기자

세종특별시 전의면 꼬불꼬불한 숲길 끝에 어린이를 위한 작은 공간, '전의 마을 도서관'이 지난 5일 개관했다. 이곳을 마련한 건 '한국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인순(81)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사재(私財) 5000만 원을 털어 책 9000권을 들였다. 1년 365일 24시간 누구나 방문할 수 있지만 그가 가장 보고 싶은 손님은 어린이다. 별·달·자동차 모양의 책상과 귀여운 의자, 책을 읽다 지치면 누워 쉴 수 있는 소파까지 준비하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지난 20일 이 산골 도서관에 어린이조선일보 명예기자 나강민(세종 미르초 4) 군과 윤예슬(충남 아산초 4)·장지윤(충남 천안 희망초 3) 양이 방문했다. 장 전 원장이 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나라서도 일론 머스크 나올 수 있어

장 전 원장은 도서관 입구의 '왜' '와이(Why)'라는 글자 앞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는 '왜?'라는 물음이 이끌어 왔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인간은 유일하게 질문을 하는 존재거든.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모른다'는 거야. 모르면 질문을 하게 돼. 질문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적은 게 책이지. 인간이 쓴 책이 1억6000만 권이야. 귀중한 정보가 다 담겨 있어."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Q. 도서관을 만든 이유가 뭔가요?(강민)

"조그만 섬에서 자랐지. 그땐 집이 가난해서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면서 공부했어. 전깃불도 안 들어왔고. 그때를 떠올리면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했어. 전 세계 40국 넘게 돌아다니면서 보니 자원이 많은데 거지같이 사는 나라도 있고, 자원이 없는데도 잘사는 나라가 있어. 바로 '교육' 차이였어. 여러분 중에도 일론 머스크,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말란 법 없지. 지윤 학생이 훌륭한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될 수도 있잖아."

Q. 어떻게 과학을 공부하게 됐나요?(예슬)

"원래 수학자가 되고 싶었어. 인간은 유한(有限)한 삶을 살지만, 수학을 통해 무한(無限)을 다룰 수 있거든. 근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가난한 사람은 (순수 학문인) 수학을 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불소화학을 공부했어. 불소화학은 원자력을 만들 때 꼭 필요한데, 그때 한국에는 이걸 연구한 사람이 없었어. 작은 힘이지만 조국에 기여했기 때문에 화학 공부한 걸 후회하지 않아. 그래도 다시 태어나면 꼭 수학을 공부하고 싶어."


많은 어린이가 공부하고 쉬면서 오래 머물다가 돌아갔으면
시간은 '자산' 소중히 여겨야 매일 일기 쓰면서 하루 돌아보길

 ①(왼쪽부터) 장지윤, 윤예슬, 나강민 명예기자. ②장인순 전 원장은 교통편이 없어 도서관에 오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는 택시비를 지원한다.

"시간 부자인 어린이가 부럽습니다"

Q. 어릴 때 어떤 학생이었어요?(강민)

"내가 굉장히 소심한 사람인데 질문을 참 많이 했어. 대학에서도 항상 수업을 잘 듣고 질문을 하려고 교수님 코앞에 앉았어. 학생은 언제나 질문을 준비해야 해. 선생님이 가장 무서워하는 학생이 물어보는 학생이야. 많이 알면 알수록 질문을 하게 돼."

Q. 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지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엉덩이로 하는 거야. 문제를 쉽게 풀었을 때보다, 밤새도록 고민해서 한 문제를 겨우 해결했을 때 더 행복하다고. 나 같은 바보는 남들이 한 시간 걸리는 거 열 시간씩 해. 그런데 더 재밌어. 이 도서관이 화려하진 않지만, 아이들이 오래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Q.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예슬)

"나이 들수록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어린이로 돌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 학생들이 부러워. 나보다 부자잖아.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어. 돈은 잃어버리면 벌 수 있는데, 시간은 잃어버리면 못 찾아. 학생들은 매일을 소중히 여기고 꼭 일기를 썼으면 좋겠어. 그날 일어난 일을 적고, 내일은 뭘 할지를 써야 해. 다음 날 '어제 이런 생각을 했구나' 반성하고, 자기와의 약속도 지킬 줄 알아야 해."

툭하면 정전인 한국을 에너지 강국으로

미국에서 불소화학을 공부한 장 전 원장은 1979년 핵무기 개발을 위해 귀국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逝去)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이후 장 전 원장은 한평생을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발전에 헌신했다. 1970년대만 해도 한국은 정전(停電)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자랑한다. 여기에는 장 전 원장과 동료의 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 당시 원자력 선진국은 미국·독일이었다. 이들이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과학자에게 핵심 기술을 알려줄 리는 만무했다. 장 전 원장은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는 전략을 썼다. 독일 학자에게 “도대체 나보다 잘 아는 게 뭐냐”며 자극하자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단다. 독일의 핵 원료 공장에서는 눈과 손으로 기술을 가져왔다. 파이프의 굵기, 각도 등 시설물을 유심히 살펴보고 호텔로 돌아와 밤새 그림을 그렸다. 장 전 원장은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돈으로 원자력 자립(自立)을 이룬 나라”라고 자부했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에 20조 원짜리 원자로를 수출했다. “그날 계약서에 적힌 사인을 보면서 밤새도록 울며 글을 썼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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